[독후감] 한국사(韓國史)속의 양봉장 고려 - 새로 쓴 5백년 고려사를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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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가. 들어가기
나. 考
3. 마치면서

본문내용

촌 지역으로 이주해서 개간을 하고 이곳에서 새로운 촌락인 신촌을 형성했다. 이러한 추제는 철기문화가 수용되어 한반도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는 4~6세기 이후부터 시작되어 고려 초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 6세기 이후 대량으로 증가한 신촌을 국가 차원에서 군현질서로 편입시키는 가운데 향·부곡과 같은 특수한 지방 행정단위가 형성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가 군현을 설치할 때 인구와 토지가 군이나 현이 될 수 없는 지역을 향이나 부곡으로 편성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4~6세기 신라 지역에 철기문화가 수용되면서 철제 농기구를 이용한 개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개간되어 주민이 정착한 촌락 즉 신촌을 정부가 향과 부곡이라는 군현의 하부조직으로 재편했던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다음의 경우가 위의 사실을 뒷받침하는 보다 더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우리나라의 군현 경계가 반듯하지 못해 한 군현의 촌락이 다른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기도 하고, 군현의 한가운데에 다른 군현 소속 촌락이 들어가있어 마치 어금니가 맞물려 있는 것처럼 일정한 구획으로 분할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처음부터 경계를 구획한 것이 아니고 까마귀나 짐승이 모인 것과 같이 촌락이 스스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정약용은 이같이 스스로 형성된 촌락을 부곡이라 했다.
다산의 지적과 같이 토지소유에서 배제된 농민들이 자구책으로 산간 오지나 벽지 지역에 들어가 개간한 새로운 촌락을 국가가 재편하는 과정에서 향과 부곡이 형성되었음을 알려 준다. 한편 기근이나 전쟁으로 생겨난 영세농민들이 자구책으로 군과 현의 경계를 넘어 산간 오지나 벽촌에 형성한 촌락, 즉 월경처가 향·부곡으로 형성되었다는 연구도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고려시대 군현제의 또 다른 영역인 부곡제는 이와 같은 농경지 개간이라는 추세 위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부곡제가 발생한 또 다른 경로는 후삼국 통합전쟁에서 반기를 든 지방세력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조선초기 실록에 따르면 고려 초기 역명자, 즉 반왕조적인 세력 집단을 향·부곡 지역에 편제시켜 각종 천역에 종사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향부곡은 이같이 반왕조적인 세력 집단적으로 편제하는 가운데 형성되기도 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통합전쟁 중에 왕조에 반기를 들었던 지역을 부곡제로 편성하여 국가 직속지나 왕실과 사원의 토지를 경작하게 하거나, 그곳의 주민을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금, 은, 철 등이 생산되는 생산지에 편제시켜 생산을 전담케 하였으며, 도자기, 먹, 종이 등 수공업 제품을 생산케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부곡제의 형성과정은 지역간 발전격차를 해소하는 일종의 사회적인 분업장치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향·소·부곡장처 등으로 구성된 부곡제 영역은 고려 초기 지방세력에 대한 재편, 그리고 삼국시대 이래 지속적인 개간과 새로운 촌락의 증가 현상이라는 사회경제적인 발전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곡제는 삼국시기 이래 우리나라 사회적 생산력 수준, 나아가 고려 초기 정치변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곡제와 군현제 영역으로 구성된 고려의 군현체제는 고려말부터 크게 변동되기 시작한다. 변화의 하나는 향·소·부곡 등의 부곡제 영역이 해체되기 시작하여, 조선 초기에는 군현제 영역만 남게 된다. 고려에서 조선왕조로의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이같이 군현체제의 일부인 부곡제 영역의 해체인 것이다. 그야말로 사회구조상의 커다란 변동이자, 고려와는 다른 조선왕조의 사회구조적 특성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군현제 영역 내부에도 일어난다. 주현과 속현 각각 130여 개와 390여 개로 구성된 군현제 영역은 대부분의 속현이 주현에 병합되어 330여 개의 군현으로 크게 축소되는 변화이다. 900여 개 단위의 부곡제 영역까지 해체되어 군현의 하부 촌락조직으로 편제된 사실을 감안하면, 조선 초기 군현개편은 매우 대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커다란 변화로 다원적인 고려의 사회구조는 결국 종말을 고하게 된다.
3. 마치면서
본 책을 읽을 때의 가장 유념해야할 점과 최종 결론은 고려사회는 ‘다원사회’라는 점이다. 다원 사회는 정치와 사회 부분에서 개방성과 역동성, 문화와 사상에서 다양성과 통일성을 특징으로 한다. 왕조를 도약시킬 능력 있는 인재라면, 지금의 표현대로 국적과 종족을 가리지 않고 관료로 등용한 고려왕조의 개방성과 역대 어느 왕조보다도 하층민의 활발한 이동에서 비롯된 역동성, 나아가 불교 유교 도교 풍수지리 도참사상 등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용인하고 공종하게 한 다양성과, 그로 인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체성을 일깨웠던 통일성을 지향한 문화와 사상의 저력이 고려왕조를 항상 개어있는 와조로서 끊임없이 자기 변모를 거듭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왕조를 장기 지속하게 하였다. 다원사회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점들이며, 그것은 또한 고려왕조의 특성이 된다.
본문을 써나갈 때에 정치사를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동시에 고려사회가 다원사회, 벌집구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요소를 선택하여 써나갔지만 분량의 한계로 담아내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특히 문화사 생활사의 내용도 함께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못한 내용들은 아쉬운대로 따로 공부를 하면서 정리하는 것으로 마음 먹었다.
역사를 도식화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점과 한계점이 분명히 있는 것이지만 고려시대를 도식화하여 살펴보자면 (도식화 기준은 다양하니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마치 생선의 머리, 몸통, 꼬리와 같이 선명하고 그리고 그 특징 또한 다른 것 같다. 이것은 고려사회가 그만큼 동적인 사회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현과 속현, 향·소·부곡가 그려내고 있는 벌집구조는 가장 인상깊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고려시대가 무엇인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종합적으로 고려시대는 내 역사공부의 흥미와 동기를 제공했다. 더불어 그 제공해준 중심의 본문의 문헌으로 쓰인 ‘새로 쓴 5백년 고려사’ 그리고 그 저자에게 감사를 전사는 바이다.
※ 참고문헌
새로 쓴 5백년 고려사, 박종기, 2010, 푸른역사
  • 가격2,5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2.01.25
  • 저작시기2011.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26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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