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부 - 왜 공부론인가
공부론이란
조선의 문화와 공부론
공부론, 교육의 새로운 대안
제2부 - 화담 서경덕의 무위적 경향
퇴계 이황의 일상과 ‘경’공부
남명 조식의 초월과 관여
교산 허균의 미학적 지식
순암 안정복의 형상과 하학 개념
다산 정약용의 견문지와 덕성지
공부론이란
조선의 문화와 공부론
공부론, 교육의 새로운 대안
제2부 - 화담 서경덕의 무위적 경향
퇴계 이황의 일상과 ‘경’공부
남명 조식의 초월과 관여
교산 허균의 미학적 지식
순암 안정복의 형상과 하학 개념
다산 정약용의 견문지와 덕성지
본문내용
시에 지금까지의 학문과 공부에 대한 반성적 자각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 땅에서 서학西學을 통해 천주교가 밀려들자, 당시의 지식인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사상의 전환기적 과도기에 전통적인 유학의 정신과 개념으로 서학에 강력히 대응한 중심인물이 바로 순암 안정복安鼎福(1712-1791)이다.
순암의 서학에 대한 견해는 기존의 유학적 전통에 붙박여 있지만, 그가 지난 유학적 합리성으로는 서학에서 강조하는 사후 꺼1계에서의 ‘별’이나 ‘복’은 너무나 납득하기 어려운 종교적 제안이다. 그는 성리학과 서학을 조선후기의 유자들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 것이다. 그는 퇴계가 정립한 심학적 공부론에서 출발하여 도구적 이성에 근거한 실학적 공부론으로의 전환을 과감히 시도하였다.
순암에 따르면 추상화되고 허문虛文화 된 성리학적 공부론은 마치 기생이 『예경』을 외우는 것과 같다. 퇴계의 시대에는 도의 근원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형이상학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였으나, 그의 시대에는 오히려 남명이 “손으로 청소하고 시중을 들어야 하는 것은 모르고 입으로 천리天理만 말한다.” 하고 비판한 것이 적실한 세태였음을 주장한다.
남명의 하학공부는 일상에서 리理의 유행을 찾으려는 것이지, 리의 근원성과 궁극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순암의 공부론에서는 상달의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진술이 발견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순암은 퇴계의 사유체계로부터 일정한 이탈을 보인다. 그러나 순암은 일상에서 궁극적 실체나 본질을 찾고자 하기 보다는, 일상을 규정짓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 혹은 그 관계에 최선의 질서를 부여하는 문제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과연 순암은 성리학적 공부론을 완전히 폐기하고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성리학적 공부론에 동의한다.
순암이 하학을 ‘형상’이 있는 세계로 한정하고자 한 것은 분명 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도전이 그가 해결할 시대적 과제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공부론에는 고공비행을 하던 성리철학을 지상으로 안전하게 연착륙시키려는 지적 노력이 담겨 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후일 다산의 생각에서 좀더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결실을 맺는다.
다산 정약용의 견문지와 덕성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그는 성리학이라는 두꺼운 껍질을 벗어젖혔다. 다산의 이름이는 언제나 실학자라는 호칭이 따라 붙는다. 실학자로 자리하는 다산은 과연 무엇을, 왜, 어떻게 공부하였던가? 그는 도대체 어떤 인간형을 길러내고자 했던가?
우선 다산이 기존의 성리학적 공부론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주목해 보자. 물론 다산도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이라는 유가의 일반적 공부 방법에는 동의한다. 다산은 말한다. 하학은 도문학의 영역이며, 상달은 존덕성의 영역임을. 그는 이 하학과 상달의 이원적인 구분을 의도적으로 시도한다. 다산은 하학의 범위를 ‘객관적인 경험과 수량화가 가능한 일상세계’로 한정한다. 하학의 세계를 견문지의 영역으로 제한한 다음, 본체론적 심성론과 분리코자 하였다.
성리학에서는 산 · 강 · 나무 등 물리적 대상뿐 아니라, 청각·시각·증오·희노 등의 성리적性理的 ·심리적 현상까지도 포괄하여 ‘기氣’ 라는 개념으로 이것들을 설명하고 이해하려 한다. 즉 기라는 보편자적 개념을 가지고 개별자를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그러나 다산은 참다운 앎이란 먼저 가시적이며 경험 가능한 현상세계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이기理氣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밝혔다. 다산은 내재적이며 동시에 초월적인 리理의 실체를 부인한다. 그가 이해한 리의 원래 의미는 자연계 안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물들의 속성인 조리條理로서의 리理이다.
현재의 우리는 성리학적 공부론의 질문 체계와 실학자들의 공부론이 상호 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순암과 다산의 공부론에는 피폐한 조선후기 사회를 소생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안이 과연 덕의 근원성과 시원성站原性을 문제시한 성리학의 경敬 공부론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극복하였는지는 의문이다.
다산의 성기호론이나 덕德에 대한 재해석은 그의 독창성과 총명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 중 하나이다. 그의 성기호설은 성리학의 중심 명제인 성즉리性郞理설을과감하게 벗어 던지는 출발점이다. 그는 성즉리설을 바탕으로 하여 마음의 본체를 찾아가는 성리학의 공부론을 극복하고자 한다.
다산은 본성을 리理가 아닌 기호嗜好로 이해한다. 기호란 무엇을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즉다산에게 본성이란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산은 자주 인간을 신형묘합神形妙合의 존재로 설명한다. 인간의 육신과 거기에서 연유하는 욕망에 대해 소극적인 평가를 하였던 전대 성리학자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산은 인간이 가진 욕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욕망 없는 인간은 아무런 행사行事도 이룰 수 없는 죽은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욕망론은 결코 무한질주를 하지 않는다. 선악의 분기점은 욕망을 조절하는 것에 있음을 밝힌다. 다산은 마음에는 욕欲의 요소와 성性의 요소가 함께 들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인간에게 하늘은 ‘자주지권自主之權’ 을 부여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선을 행하고 싶으면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고 싶으면 악을 행하게 하는 재량권을 주었다는 것이다. 다산의 이러한 자주지권의 강조는 스스로 주체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근대적 인간개념을 창출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산의 공부론이 탈 성리학적 해석을 통해 덕성에 대한 전혀 새로운 해석지평을 열어 주고 있음은 명백하다. 다산이 파악하기에 당시의 성리학자들은 덕을 형이상학적 질서에 가두어둠으로써 그 실천력이 급격히 상실되고, 종국적으로는 사회적인 통합력도 소진해버릴 것으로 이해하였다. 조선후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다산의 이러한 평가는 지극히 정당하다. 각 개체적 인간의 주체적 결단을 중요시하고, 홀로 있을 때 삼가면서 상제의 현존을 느끼고, 공동체의 윤리적 연대성을 보장 받으려는 다산의 사상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순암의 서학에 대한 견해는 기존의 유학적 전통에 붙박여 있지만, 그가 지난 유학적 합리성으로는 서학에서 강조하는 사후 꺼1계에서의 ‘별’이나 ‘복’은 너무나 납득하기 어려운 종교적 제안이다. 그는 성리학과 서학을 조선후기의 유자들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 것이다. 그는 퇴계가 정립한 심학적 공부론에서 출발하여 도구적 이성에 근거한 실학적 공부론으로의 전환을 과감히 시도하였다.
순암에 따르면 추상화되고 허문虛文화 된 성리학적 공부론은 마치 기생이 『예경』을 외우는 것과 같다. 퇴계의 시대에는 도의 근원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형이상학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였으나, 그의 시대에는 오히려 남명이 “손으로 청소하고 시중을 들어야 하는 것은 모르고 입으로 천리天理만 말한다.” 하고 비판한 것이 적실한 세태였음을 주장한다.
남명의 하학공부는 일상에서 리理의 유행을 찾으려는 것이지, 리의 근원성과 궁극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순암의 공부론에서는 상달의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진술이 발견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순암은 퇴계의 사유체계로부터 일정한 이탈을 보인다. 그러나 순암은 일상에서 궁극적 실체나 본질을 찾고자 하기 보다는, 일상을 규정짓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 혹은 그 관계에 최선의 질서를 부여하는 문제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과연 순암은 성리학적 공부론을 완전히 폐기하고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성리학적 공부론에 동의한다.
순암이 하학을 ‘형상’이 있는 세계로 한정하고자 한 것은 분명 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도전이 그가 해결할 시대적 과제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공부론에는 고공비행을 하던 성리철학을 지상으로 안전하게 연착륙시키려는 지적 노력이 담겨 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후일 다산의 생각에서 좀더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결실을 맺는다.
다산 정약용의 견문지와 덕성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그는 성리학이라는 두꺼운 껍질을 벗어젖혔다. 다산의 이름이는 언제나 실학자라는 호칭이 따라 붙는다. 실학자로 자리하는 다산은 과연 무엇을, 왜, 어떻게 공부하였던가? 그는 도대체 어떤 인간형을 길러내고자 했던가?
우선 다산이 기존의 성리학적 공부론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주목해 보자. 물론 다산도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이라는 유가의 일반적 공부 방법에는 동의한다. 다산은 말한다. 하학은 도문학의 영역이며, 상달은 존덕성의 영역임을. 그는 이 하학과 상달의 이원적인 구분을 의도적으로 시도한다. 다산은 하학의 범위를 ‘객관적인 경험과 수량화가 가능한 일상세계’로 한정한다. 하학의 세계를 견문지의 영역으로 제한한 다음, 본체론적 심성론과 분리코자 하였다.
성리학에서는 산 · 강 · 나무 등 물리적 대상뿐 아니라, 청각·시각·증오·희노 등의 성리적性理的 ·심리적 현상까지도 포괄하여 ‘기氣’ 라는 개념으로 이것들을 설명하고 이해하려 한다. 즉 기라는 보편자적 개념을 가지고 개별자를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그러나 다산은 참다운 앎이란 먼저 가시적이며 경험 가능한 현상세계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이기理氣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밝혔다. 다산은 내재적이며 동시에 초월적인 리理의 실체를 부인한다. 그가 이해한 리의 원래 의미는 자연계 안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물들의 속성인 조리條理로서의 리理이다.
현재의 우리는 성리학적 공부론의 질문 체계와 실학자들의 공부론이 상호 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순암과 다산의 공부론에는 피폐한 조선후기 사회를 소생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안이 과연 덕의 근원성과 시원성站原性을 문제시한 성리학의 경敬 공부론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극복하였는지는 의문이다.
다산의 성기호론이나 덕德에 대한 재해석은 그의 독창성과 총명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 중 하나이다. 그의 성기호설은 성리학의 중심 명제인 성즉리性郞理설을과감하게 벗어 던지는 출발점이다. 그는 성즉리설을 바탕으로 하여 마음의 본체를 찾아가는 성리학의 공부론을 극복하고자 한다.
다산은 본성을 리理가 아닌 기호嗜好로 이해한다. 기호란 무엇을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즉다산에게 본성이란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산은 자주 인간을 신형묘합神形妙合의 존재로 설명한다. 인간의 육신과 거기에서 연유하는 욕망에 대해 소극적인 평가를 하였던 전대 성리학자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산은 인간이 가진 욕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욕망 없는 인간은 아무런 행사行事도 이룰 수 없는 죽은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욕망론은 결코 무한질주를 하지 않는다. 선악의 분기점은 욕망을 조절하는 것에 있음을 밝힌다. 다산은 마음에는 욕欲의 요소와 성性의 요소가 함께 들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인간에게 하늘은 ‘자주지권自主之權’ 을 부여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선을 행하고 싶으면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고 싶으면 악을 행하게 하는 재량권을 주었다는 것이다. 다산의 이러한 자주지권의 강조는 스스로 주체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근대적 인간개념을 창출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산의 공부론이 탈 성리학적 해석을 통해 덕성에 대한 전혀 새로운 해석지평을 열어 주고 있음은 명백하다. 다산이 파악하기에 당시의 성리학자들은 덕을 형이상학적 질서에 가두어둠으로써 그 실천력이 급격히 상실되고, 종국적으로는 사회적인 통합력도 소진해버릴 것으로 이해하였다. 조선후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다산의 이러한 평가는 지극히 정당하다. 각 개체적 인간의 주체적 결단을 중요시하고, 홀로 있을 때 삼가면서 상제의 현존을 느끼고, 공동체의 윤리적 연대성을 보장 받으려는 다산의 사상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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