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머리말
*영화를 이해한다는 건
**서론
*카우프만은
-소개
-작품
-평가
*카우프만을
-주목한 이유
**본론
*관련 인물, 인터뷰로 보는 카우프만
-스파이크 존즈, 미셀 공드리
-인터뷰 내용들
*카우프만의
-특징
*관객, 배우와 카우프만
-배우, 감독, 각본 의 세계
-비슷한 류의 다른 작품들
*카우프만의 이야기는
**결론
*한 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은
*영화를 이해한다는 건
**서론
*카우프만은
-소개
-작품
-평가
*카우프만을
-주목한 이유
**본론
*관련 인물, 인터뷰로 보는 카우프만
-스파이크 존즈, 미셀 공드리
-인터뷰 내용들
*카우프만의
-특징
*관객, 배우와 카우프만
-배우, 감독, 각본 의 세계
-비슷한 류의 다른 작품들
*카우프만의 이야기는
**결론
*한 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은
본문내용
나면서 특별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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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한 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은
어렵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 할 얘기가 많은 또 한명의 개인이다. 나는 내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산다고 확신한다. 예전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그것은 단순한 입으로 하는 대화일 수도 있고, 때로는 노래일 수도 있다. 때로는 글이기도 하며, 때로는 그림이기도 하고 영상, 혹은 조각, 혹은 내 행위 자체 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듣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행해 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을 고양시킨다. 우리가 발전되고 나은 모습으로 살려면, 우리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그것도 단 시간 안에 그렇게 하는 것은 더더욱 힘이 든다. 인생에 비해, 삶에 비해 아주 짧은 영화의 상영시간은 아마도 부족함이 있다. 존 말코비치 안으로 들어가 아에 자신이 없어지면서 까지 타인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가능 하다 할지라도, 존 말코비치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시네도키,뉴욕>의 연극속의 연극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되돌아봐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끝 없이 비관적이고, 의지하고 싶어 하고, 혼란스럽고, 이기적이며, 집착한다. 그렇게 끝없이 자기 자신을 이야기 속에 그대로 넣는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해 하나의 플롯을 따라 그 결핍된 개인을 기묘한 세상 속에 집어넣어서 혼란스러운, 불안정한 현대인들, 복잡한 이해 관계에 빠져있는 개인들 그래서 어쩌면 이해할 수도, 이해 할 필요도 없을 만한 이야기 들을 쏟아 낸다.
영화라는 매체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든지 간에.. 결론적으로 우리네 이야기라는 점에서 보자면 이야기속의 주인공은 바로 관객들 하나 하나가 된다. 카우프만은 그것을 아주 잘 이용하여 관객과 소통한다. 그가 그 자신을 주인공으로 놓는다.든가, 하는 방식은 영화 속 주인공(배우들), 멀리 봐서 관객(우리들), 글을 쓴 자신(카우프만)을 모두 한데 묶어 우르르 몰려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늙은 사람들’처럼 하나의 의식속에 자신도, 우리도, 배우도 집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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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한 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은
어렵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 할 얘기가 많은 또 한명의 개인이다. 나는 내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산다고 확신한다. 예전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그것은 단순한 입으로 하는 대화일 수도 있고, 때로는 노래일 수도 있다. 때로는 글이기도 하며, 때로는 그림이기도 하고 영상, 혹은 조각, 혹은 내 행위 자체 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듣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행해 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을 고양시킨다. 우리가 발전되고 나은 모습으로 살려면, 우리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그것도 단 시간 안에 그렇게 하는 것은 더더욱 힘이 든다. 인생에 비해, 삶에 비해 아주 짧은 영화의 상영시간은 아마도 부족함이 있다. 존 말코비치 안으로 들어가 아에 자신이 없어지면서 까지 타인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가능 하다 할지라도, 존 말코비치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시네도키,뉴욕>의 연극속의 연극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되돌아봐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끝 없이 비관적이고, 의지하고 싶어 하고, 혼란스럽고, 이기적이며, 집착한다. 그렇게 끝없이 자기 자신을 이야기 속에 그대로 넣는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해 하나의 플롯을 따라 그 결핍된 개인을 기묘한 세상 속에 집어넣어서 혼란스러운, 불안정한 현대인들, 복잡한 이해 관계에 빠져있는 개인들 그래서 어쩌면 이해할 수도, 이해 할 필요도 없을 만한 이야기 들을 쏟아 낸다.
영화라는 매체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든지 간에.. 결론적으로 우리네 이야기라는 점에서 보자면 이야기속의 주인공은 바로 관객들 하나 하나가 된다. 카우프만은 그것을 아주 잘 이용하여 관객과 소통한다. 그가 그 자신을 주인공으로 놓는다.든가, 하는 방식은 영화 속 주인공(배우들), 멀리 봐서 관객(우리들), 글을 쓴 자신(카우프만)을 모두 한데 묶어 우르르 몰려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늙은 사람들’처럼 하나의 의식속에 자신도, 우리도, 배우도 집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