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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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논쟁점과 문제의식 제기
-영화 ‘몰락’, 위험하지 않은가?
Ⅱ.WHO
-주요인물들
Ⅲ.WHEN
-제2차세계대전
-최후의 14일
-주요한 사건들
Ⅳ.WHERE
-벙커 내부
Ⅴ.WHAT
-감독 올리버 히르비겔은?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가?
-언론사와의 인터뷰, 제작자 성명
Ⅵ.HOW
-갈등의 고조정도에 따른 전개
-영화적 촬영 기법
Ⅶ.WHY
-왜 융에의 시선인가?
-왜 마지막 14일인가?
--왜 이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는가?
-왜 독일인들은 울었을까?
Ⅷ.CONCLUSION
-제작자의 의도와 작품의 의의
-역효과과 한계점, 끝내며
Ⅸ.출처 및 참고문헌

본문내용

해석이 가능하다. 그 첫째는 바로 ‘연민’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우리와는 너무나도 다르고 먼, 소위 '악마'를 관객들은 예상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예상치 못하게 히틀러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항상 '위를 올려다 봐야 했던' 히틀러가 '옆을 보면 볼 수 있을' 정도로 상대적 위치가 변했음을 의미하며 비로소 그에 대해 느껴오던 독일인들의 감정이 ‘두려움과 경외’에서 '연민'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독일인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초등학교때부터 이뤄지는 역사교육은 독일인들이 죄의식에 시달릴 만큼 혹독하게 나치를 비판하도록 만들었다. 이렇듯 항상 자신들이 가해자라고 여겨 왔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정작 독일국민들이 지도부들에 의해 버림을 받고 전쟁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전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에서 그동안 그들이 느껴온 복합적 감정이 눈물로 표출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Ⅷ.CONCLUSION
-제작자의 의도와 작품의 의의
발표가 되기도 전부터 뜨거운 정치적 논쟁과 이슈의 중점에 있었던 영화 ‘몰락’. 감독과 제작자는 ‘히틀러를 악마로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독일인의 관점에서 나치스를 재조명할 때가 됐다’ 라는 인식을 토대로 기존의 금기를 깨고 히틀러의 인간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파격적 시도는 히틀러를 악마로만 규정했을 때 나치에게 면죄부를 줘버릴 수도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선한’ 대중들이 ‘악마’와 같은 히틀러 일당에게 속아 넘어가 홀로코스트와 같은 미증유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논리가 가능한데, 이러한 기존의 시각이 지닌 부작용을 차단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 영화는 본질이 無이기에 발악으로써만 존재를 증명하려는 나치스의 공허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히틀러도 결국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폭로를 통해 역으로 우리 스스로가 내면에 야수적 잠재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 지 되돌아 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역효과와 한계점
하지만 영화가 발표된 이후 신나치세력의 영향력과 극우정당의 득표율이 갑자기 상승한다던가, 실제로 제 3제국에 향수를 품고 있는 이들이 영화에 출현한다던가 하는 현상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외려 과거와 현재, 영화 속 환상과 실제적 실체가 모종의 연관성을 지닐 수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의 특정 부분만을 강조하거나 실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묘사한 흔적이 발견되는데 그 저의가 상당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영화속에서 전쟁 희생자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차 보이는 인간적인 의사 쉔크는 사실 유대인 생체 실험을 통해 의학적 업적을 이룬 인물이다. 주어진 명령에 끝까지 복종하는 명예로운 군인으로 묘사된 몬케는 사실 미국인 포로를 무차별하게 학살한 비인도주의적 인물이다. 트라우들 융에는, 피터와 함께 무사히 소련군 진지를 지나온 것처럼 묘사되지만 소련군에게 수차례 강간을 당했음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한계는 자칫 나치의 행적과 관련해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 위험성이 있다. 더불어, 이 영화는 기존의 ‘독일 vs 유태인, 기타 전쟁 피해자’의 구도가 아니라 ‘나치스 vs 독일국민’의 가해자-피해자 구도를 생성함으로써 독일인들이 ‘우리도 사실은 피해자였다’ 라는 반론을 제기할 가능성을 열어줬다. 이러한 경향은 나치스를 미화하거나 나치스와 홀로코스트의 상호연관성을 흐릿하게 할 문제점이 있다. 게다가 영화가 내세우고 있는 완벽에 가까운 고증과 사실적 재현은 우리가 보아야 할 히틀러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해석이 들어갈 공간이 없는 이 영화는 어딘가가 부족해 보인다. 역사가 한스 몸젠은 ‘단순한 사실만의 재구성으로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의 일생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놓는다고 해서 의미있는 역사적 진술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Deutschlandradio Berlin, 2004년 9월 16일자
라고 말하며 이 점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인과 권총자살을 하고 유해를 철저히 없애버리라는 히틀러의 선택이 나치 수뇌부의 철저한 몰락, 독일 국민의 몰락과 더불어 제 3제국의 신화를 지키기 위한 ‘미리 고안된 계획의 일부’ 였다면. 그렇다면 ‘왜 히틀러는 신화를 남기려고 했을까’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채 ‘그를 있는 그대로 그렸다’ 라는 말을 하며 만족해 하는 영화 ‘몰락’은 오히려 ‘히틀러와 나치의 신화’가 더 존속하는데 기여한다는 치명적 아이러니를 지닌다.
-끝내며
결국 우리는 제작자와 의도와 동기를 순진하게 받아들이고 그 창으로만 영화를 감상하는데 그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설사 그 동기가 순수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대중적 영향력과 파급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때로는 역효과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 활동에는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기 마련이며 그만의 독특한 재현방식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역사’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의 경우 더더욱 그 본질을 세심하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역사란 스스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항상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 케이스 젠킨스, 최용찬 옮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혜안, 1999, p.12
이란 명제를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Ⅸ.출처 및 참고문헌
<서적 및 논문>
요하임 페스트, 안인희 옮김, 히틀러최후의 14일, 교양인, 2006
하네스 모슬러, 히틀러의 망령과 악수하다, 독일영화 <몰락>, 씨네 21, 2004
송충기, “몰락(Der Untergang)”, 서양사연구, 2004
조수진, “완전한 파괴를 위한 열망”, 현대영화연구, 2004
트라우들 융에, 문은숙 옮김, 히틀러, 여비서와 함께 한 마지막 3년, 한국경제 신문, 2005
데이비드 웰시, 최용찬 옮김, 독일 제3제국의 선전정책, 혜안, 2001
케이스 젠킨스, 최용찬 옮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혜안, 1999

http://www.naver.com
http://www.wikipedia.org

키워드

히틀러,   영화,   몰락,   언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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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4.04
  • 저작시기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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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3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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