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과 조선의 공론정치 문화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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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문제의식

2. 성리학과 군신관계

3. 성리학과 공론정치

4. 공론정치에 대한 식민사관과 붕당정치론의 시각

5.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하는 사림계의 붕당정치는 그 나름의 단점도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정치에서 공도의 실현을 위해 현실적으로 강구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 하였다. 이태진, 16세기 후반 이후의 정치형태 당쟁의 성격, 한국군제사, 육군본부, 1977 인용
필자는 붕당정치는 거칠게 보아 공론정치 과정에서 형성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한다. 붕당정치 운영원리의 핵심은 결국 공론을 중시하는 정치시스템이며, 대간 등의 구체적인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성리학의 이념을 공유하고 있으나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이상사회 건설에 대한 방법론적 차이에 의해 공론정치에서 붕당 간 대립이 발생한 것이며, 물론 후일 붕당 간의 격쟁이 조선쇠퇴의 원인을 제공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붕당과 공론정치 자체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시스템의 운용과정에서 파생된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붕당의 대립은 식민사관이 해석하는 것처럼 단순한 정쟁이 아니라, 그 바탕에 주자학을 해석하는 차이 내지는 그 인식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5. 결론
조선왕조 시기에 성리학은 지배적인 정치이념으로 확고히 착근하였다. 성리학에서 규정하는 군신관계는 이상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동도자’로서 군주의 전제정치는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를 현실적으로 규율한 것이 공론정치이다. 공론정치는 성리학을 이론적 토대로, 삼사 등 언관기관을 통해 보장되었고 공론정치는 조선왕조의 정치사의 성격을 규정짓는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이상사회 구현을 위해 공론이 중요했던 만큼 공론정치에서 공론을 같이하는 집단들이 학연을 기초로 붕당을 형성하고 이것이 붕당정치로 전이되었다고 사료된다. 붕당정치에 대해 식민사관의 당파성론이 가한 원색적인 비난은 이태진의 붕당정치론이 주장하듯이 명백히 왜곡된 것으로 공론정치와 붕당의 관계를 통해 건전하게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 조선조 성리학적 군신관계(君臣關係)의 권력구조 연구, 최한규, 한국행정사학지, 2009
- 성학집요를 통해 본 성인의 학문과 정치, 이기용, 한국사상과 문화, 2005
- 이희환, 조선 후기 붕당사림정치론의 재검토, 전남사학, 2008
- 김인걸, 「조선후기 여론과 정치: ‘공론정치’의 지속과 단절」『조선의 정치와 사회』, 집문당, 2002.
- 이태진, 조선시대정치사의 재조명, 태학사, 2003
- 이태진, 16세기 후반 이후의 정치형태 당쟁의 성격, 한국군제사, 육군본부,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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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2.04.20
  • 저작시기2012.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4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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