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중문화-국화와칼, 일본은없다1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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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국화와 칼

일본은 없다1

「국화와 칼」과「일본은 없다1」

- 참고문헌 -

본문내용

표할 만한 모집단이 충분히 대표성을 가졌는가에 대한 부분을 확인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편향된 시각의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또 두 책의 독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전여옥은 일본에 보란 듯이 책을 펴 낸 것일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국 독자를 중심으로,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 독자를 중심으로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것은 편향된 시각의 일본론이 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의 연구 방법이 재미있게도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전여옥이 일본을 직접 체험했다면 루스 베네딕트는 전시 상황으로 일본 사회 안에서 일본을 체험할 수는 없었다. 대신에 베네딕트는 현장조사를 할 수 없는 한계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보충할 다양한 방법을 이용함과 동시에 방대한 자료를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려는 분석을 시도했다. 이러한 루스 베네딕트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없이 전여옥은 오만이라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는 자신감 넘치는 개인의 주관으로 현상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문화를 단지 비정상적이고 특이한 현상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이처럼 전여옥이 체험을 바탕으로 타탕한 근거 없이 내린 결론이나 루스 베네딕트의 미국 내에서의 연구는 분명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여옥은 흥미를 끌만한 도발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면 루스 베네딕트는 우회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으며 연구 분야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여옥이 최근에 일어나는 현상을 중심으로 그녀가 겪은 이야기로 대부분을 일본의 여성과 민족성을 분야로 했다면 루스 베네딕트는 좀 더 총체적인 시각에서 일본인을 분석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루스 베네딕트의 결론도 결국은 민족성으로 향하고 있다.
결국 이 두 저서에서 일본이라는 한 나라는 균형 있게 다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얼마나 균형적인 시각을 가졌는가에 대해 어쩌면 민족성을 직접적으로 비꼬는 수위가 낮은 국화의 칼이 더 균형적인 시각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두 저서 모두 일본 문화론으로서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보여 진다. 전여옥은 저서에 우리나라가 우월하다는 의식으로 자신만의 감각의 제국을 펼쳐 놓았고 루스 베네딕트 역시 서구가 우월하며 그 우월함이 무엇인가를 구석구석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마치 달라 보이는 것은 루스 베네딕트가 미국과 일본의 두 문화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극복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과 달리 전여옥의 시각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둘은 일본은 모순성을 가진 일본국민의 집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화와 칼이라는 표현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여옥도 백조의 탈을 쓴 흑조라는 표현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에는 일본이란 이중성을 가진 민족이란 것이다. 세상 어느 인간이 이중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마는 그래서 당시 미국에서도 일본을 대함에 있어 조심해야하는 나라라고 말하고, 당시 한국에서는 비정상적인 민족이므로 절대 배울 것 없는 나라라고 말하면서 서로 자신의 나라가 미국이, 한국이 우월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일본이라는 나라와 비교하면서 그들의 민족성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분석하고 그로 인해 나의 나라에 대해서는 일본보다 우월함을 지닌 긍정적인 정상적인 나라이며 민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 시선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지만 두 저자는 일본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 인식의 결과가 어떻든 무관심보다는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류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자들이 다른 문화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다른 문화를 통해 자기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가면 그 문화는 자기에게 낯선 것이기 때문에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한경구,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일조각, 2000, p3-5면 참고.
비록 전여옥처럼 체험론으로만 끝날 수도 있지만 인류학은 모든 종류의 문화를 연구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실제로 현재 이 시대에 어떤 것이 선택되어 일어나는지를 찾는다. 나아가 인류학은 가능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방법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김광억, 『처음 만나는 문화 인류학』, 일조각, 2003, p289면 참고.
이는 세계화의 시대에서 각 나라의 각 문화가 만나는 기회가 예전에 비해 훨씬 많아진 상황과 맞물리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에도 다양성과 가능성에 대한 시각을 갖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다른 것, 비정상적인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어렵지만 편향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문화라는 기반 아래 어째서 다른 것으로 보이게 되는가를 바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 참고문헌 -
루스 베네딕트, 『문화의 패턴』, 까치글방, 1980, p302-303면 참고.
루스 베네딕트, 『문화의 패턴』, 까치글방, 1980, p306-309면 참고.
전여옥,「<일본은 없고 한국은 있는가> 에 대한 반론 : ' 일본처럼 되자 '는 논리 반박한다」, 한국논단, 1995, 150-157.
김용덕, 「체험적 일본비판론」,『창작과비평 85호 - 1994년 가을 』, 창작과 비평, 1994. 388-425.
사나다 히로꼬,「한국의 반일 담론과 일본의 국수주의,『창작과 비평 110호 2000.겨울 』, 창작과 비평, 2000.
조영남,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 』, 랜덤하우스중앙, 2005.
박유하,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 』, 사회평론, 2000.
서현섭, 『지금도 일본은 있다』, 고려원북스, 2004.
한경구,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일조각, 2000, p3-5면 참고.
김광억, 『처음 만나는 문화 인류학』, 일조각, 2003, p289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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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4.20
  • 저작시기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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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4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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