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스미스, 리카도, 맬서스, 존 스튜어트 밀의 경제사상과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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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고전학파 역사적배경

Ⅲ. 고전학파 경제학사상의 철학

Ⅳ. 고전학파의 경제학자
1. 아담 스미스(1723~1790)
2. 아담 스미스의 사회경제사상
3. 경제인과 사회 및 경제적 자유주의
4. 아담 스미스의 경제정책

1.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
2. 데이비드 리카도의 경제사상

1. 토머스 맬서스(1766-1834)
2. 토마스 멜더스의 인구론

1.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2. 밀의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3. 정신적 위기와 그로 인한 변화

Ⅴ. 고전파 경제학의 해체

참고문헌

본문내용

, 김광수, 박광서 -경제학설사- 文英社 2000. P108-~109
2. 밀의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 공리주의 : 쾌락주의적 인생관에 근거-> 공리를 협의로 해석하고 있다. ->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부적합하고, 인간을 도구로 여기게 된다.
* 밀(Mill) : 인간을 자기를 개발하는 존재로 보는 자유주의적 인간관에 근거해 있다. -> 쾌락을 질적으로 차이나는 두 종류로 구별한다.
① 인간의 고차적 능력 (지성, 감성, 상상력) : 고차적 쾌락
② 인간의 저급한 능력 (자연적, 육체적 욕구) : 저급한 쾌락
=> 능력 개발의 수단과 기회가 있고, 예속이 없는 상황에서, 자유로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쾌락을, 공리를 극대화하여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다수자에 의한 소수자의 제한은 부당하다 => 자유주의 탄생.
3. 정신적 위기와 그로 인한 변화
벤담주의자였던 그가 인간관 및 방법론으로서 벤담주의에 수정을 가하게 되고, 벤담에게는 시시한 장난으로 밖에 취급되지 않았던 시와 문학에 열의를 보이게 된 것은 1826년 즉 그의 나이 21살에 겪은 신경쇠약 이후였다. “그것은 1826년 가을이었다. 나는 온 신경에 맥이 빠진 상태였다. ... ‘네 인생의 목적이 모두 실현되었다고 가정해 보라. 네가 추구하고 있는 제도와 사상의 변화가 지금 이 순간에 모두 이루어졌다고 가정해 보라. 이것이 네게 큰 기쁨이요, 행복이 되겠는가?’ 그리고 억누를 수 없는 자아의식은 이에 대하여 분명히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 내 모든 행복은 이 목적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데서만 찾을 수 있는 것, 이 목적이 이제는 그만 매력을 잃은 것이다.” (Autobiography)
밀이 ‘정신적 위기’라고 부른 이 좌절감은 지금까지 받아왔던 지나친 주지주의적 교육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마르몽테르의 《회상록》을 읽게 되었고, 그 책을 읽으면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자신에게도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또한 그를 구출하는 데 크게 작용하였던 것이 Wordsworth의 시였다. 그는 여기서 예술의 치유적 가치(인간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으로부터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그의 관점은 ‘What is poetry?’나 그의 ‘자서전’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하여 밀은 Bentham 과 그의 공리주의로부터 벗어나 시와 Wordsworth, Coleridge, Goethe, Carlyle 등과 접촉하게 되고, 그의 문학 비평가로서의 발언이 주목할 만한 것으로 남게 되었다.
4. 밀의 자유론
자유론의 의의와 성격
빅토리아 조 당시 자유의 지위향상은 이 시대가 이룩한 혁혁한 업적 중 하나이다.
영국은 여러모로 정치종교적 자유를 획득하였다. 그렇다면 왜 밀은 자유를 문제삼았을까?
-밀은 개성이 단지 정치적 독재나 완고한 종교에 의해서만 위협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터득하였다. 개성은 사회에서의 비순응자들에게 가해지는 중산계급의 인습에 의해서도 위협 당할 수 있다. 자유론의 궁극적 관심은 민주체제 속에서 개인의 예속 현상 방지이다. 전제적인 왕이나 독재자들에 대한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공격이 아니라 전제적 다수에 대한 공격이라 할 수 있다. 즉 개인이 국가나 교회 등의 제도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문학에서 청교도 규범을 무너뜨리는데 공헌한 후기 빅토리아조 소설인 하디(Thomas hardy)의 《Jude the Obscure》에서 여주인공이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론》을 인용하였다는 것에도 큰 의의가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국민이 자기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것, 즉 ‘국민 자치의 원칙’에 있다. 그러나 밀은 ‘국민’의 의지라는 것이 국민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인 ‘다수’가 행사하는 것이 지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 다수가 행사하는 권력이 어디까지 소수자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밀은 다수결의 원칙이 ‘다수의 횡포’로 바뀔 수 있음을 지적하고, 국민 개개인의 자유를 그 어떤 이유로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Ⅴ. 고전파 경제학의 해체
자유경쟁을 기초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가지는 모순들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고전파 경제학은 주기적인 공항과 농산물의 흉작, 정부의 화폐남발에 의한 화폐가치의 하락, 나폴레옹전쟁등 자본주의 경제 외적인 요인으로 해체시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위 공황은 과잉생산 공황은 아니었지만, 1825년의 공황은 전반적인 과잉생산 공황이었고, 이후 10년마다 있는 공황은 더욱더 범위가 확대되어 영국, 독일, 미국, 프랑스 등 당시 자본주의 세계가 모두 공항의 내습을 받았다.
자본주의 체제를 자연가격을 중심으로 하는 안정적인 자동 조절 기구로 생각했던 스미스와 리카도의 경제학은 이들 주기적 공황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멜더스와 시스몽디 정도가 과소소비론에 입각하여 일반적 과잉생산이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 정도였다.
고전파 경제학의 해체를 가져온 것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립과 투쟁이었다. 이미 19세기 초반에 기계제 공장생산과의 경쟁에서 소외된 소생산자와 노동자들의 기계파괴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났으며, 1820년대에는 각종 파업이 발생하였다. 또한 노동운동과 혁명운동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러한 현실과 고전파 경제학은 맥을 달리하여 고전파 경제학은 자본주의의 형성기에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데 활발한 역할을 했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확립된 이후 계급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해체기에 접어들었다. 이후 신고전파 경제학의 성립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마르크스 경제학의 형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변형윤, 권광식 [경제사상과 이론] 2002. p70~71.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참고문헌
- 아담스미스(1992), 국부론 上, 을유문화사
- 토드블크홀츠(옮김 이승환2002) 죽은 경제학자 살아있는 아이디어 - 김영사
- 변형윤, 권광식 공저(2002) 경제사상과 이론 -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 최상훈(2007), 경제학사 -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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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6.28
  • 저작시기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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