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이해]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한 세가지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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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문


Ⅱ.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한
세 가지 해독

1. 중독(中毒) _ 사대주의사관
2. 왜독(倭毒) _ 식민주의사관
3. 양독(洋毒) _ 실증주의사관


Ⅲ. 끝으로

*참고문헌 및 사이트

본문내용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박사는 말년에 건강이 나빴는데, 어느 날 병실에 찾아갔더니 죽기 전에 옳은 소리를 하겠다며 단군을 실존인물로 인정했어요. 그 사실을 후학들이 모르고 이박사의 기존학설에만 매달려 온 것입니다. 그리고 한민족이면 누구나 어린아이 때부터 배웠던 ‘동몽선습’이나 ‘세종실록’ 등 각 고전에도 단군기록이 나옵니다. 수백년전 기록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역사기록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판소리할 때도 그 긴 내용을 한자도 바꾸지 않고 노래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역사기록은 더욱 정확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3. 양독(洋毒) _ 실증주의사관
양독은 서양에서 들어온 실증주의 역사학의 해독을 말한다. 이는 “주관적인 판단 없이 역사적 사실을 원래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의 관점을 밑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계열의 역사학자들은, 오직 유적과 유물에 의해 실증된 역사적 사실만을 인정하는 반면, 문헌을 연구하는 사학은 비판한다. 그래서 대표적인 고대사 자료인 『환단고기』 등의 서적을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는 철학, 인류학, 언어학, 서지학, 연대기학, 고고학 등의 복합 학문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과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방법론을 통해서 역사적 사실은 증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학은 19세기 잠시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했던 방법론인 실증주의에 의한 역사방법만을 고집하고 있다.
해방 후 국사학계는 1930∼40년대 초기의 학풍을 그대로 물려받은 데다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납북되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다양한 국사연구 학풍이 실증주의 학풍으로 단일화되면서 실증주의 사학자들이 우리나라 국사학계의 핵심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역사가 짧은 나라에서는 가능한 방법론이다. 5천년이 넘는 우리나라와 같은 나라에서 역사를 유물만으로 인정하는 이러한 역사 증명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본다.  
우리의 민족혼 속에는 서양식의 근대적인 과학주의 역사관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깊은 잠재적 사상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유적과 유물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의식 무의식 속에 살아 숨 쉬는 민족혼이야말로 역사의 실체를 찾아가는 단초일 것이다.
Ⅲ. 끝으로
지금까지 우리 역사의 참모습은 후세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였다. 중국과 일본의 잦은 침략의 전화(戰禍) 속에서 수많은 사서(史書)가 불타 없어져 버렸고, 또한 그들의 왜곡된 역사기록으로 인해 역사의 맥이 단절되고 뿌리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재야사학자와 민족사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왜곡된 이유로 '삼독(三毒)'을 들고 있다. 즉, '사대주의사관'에 의한 중독(中毒), '식민주의사관'에 의한 왜독(倭毒), 그리고 지금 역사 연구의 주류를 이루는 '실증주의사관'(랑케사학이라고도 한다)에 의한 양독(洋毒)의 피해에 의해서 우리 역사가 왜곡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삼독의 왜곡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정신은 극심하게 오염되었고, 수많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젖게 되었다. 스스로를 한없이 작게 보는 마음, 그리고 무조건 서구를 지향하는 경향도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역사가 왜 왜곡되었는가? 왜적이 침범해서 역사책을 불태우고, 내란이 일어나서 우리 역사책을 불태워서 왜곡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역사가들에 의해서 왜곡되었다”고 하였다.
안호상 박사는, 고대 역사서들이 입증하고 있던 사실을 후대에서 중국과 일본의 사가들이 이 사실을 왜곡 변조했으며, 식민사관에 물든 우리의 역사학자들이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여기에 기초해 국정교과서들이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지적했었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선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그들의 가치관을 바로 정립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 할 수 있다. 그 후에야 다른 모든 대응책들도 실행이 되고 효과를 볼 것이며 나아가 우리 국민 모두가 역사를 제대로 인지해, 왜곡된 우리의 안타까운 역사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는 하나의 형태이나, 역사는 그 민족의 혼이다. 그 민족이 살아온 흔적인 것이다. 이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이우성 외, 『한국의 역사인식』하, 창작과 비평사, 1979.
정운영·김삼웅, 『친일파』2, 학민사, 1992.
세계일보 1992년 10월 6일자
1999년 3월 1일자
조선일보 1985년 10월 4일자
1986년 10월 9일자
주간조선 2003년 8월 7일자
문화일보 2000년 1월 3일자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http://blog.naver.com/haseliebe94?Redirect=Log&logNo=140022944116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1&eid=JT2Br4Syzipac9/pqAK10khupiNUceUW&qb=7Jet7IKsIOyZnOqzoSAz64yAIOyalOqwlQ==&enc=utf8&pid=flVBDdoi5TVssZTWl8Rsss--396897&sid=SgpXizI5CkoAADKRJh8
http://cafe.naver.com/coreavision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1&eid=n8Cnh0F6AlUcisDWmDUgzFiX3pBESTZQ&qb=67aI6rWQ7JeQIOydmO2VnCDsl63sgqwg7Jmc6rOh&enc=utf8&pid=flrZbwoi5Ulssc%2BGkowsss--344268&sid=SgpXizI5CkoAADKRJh8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1&eid=j613YF1IYOhoHjzR7Hn4TO2bZfjzSz2Y&qb=v6q75yC/1rDuIDO06yC/5LCt&enc=euc-kr&pid=flVBDdoi5TVssZTWl8Rsss--396897&sid=SgpXizI5CkoAADKRJ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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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5.18
  • 저작시기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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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47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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