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간 역사 갈등 -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중국 간의 역사 갈등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과 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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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중일간 역사 갈등 -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중국 간의 역사 갈등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과 그 진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과 그 진실
역사해석의 아전인수(我田引水), 일본.
청일, 러일 전쟁에 대한 일본의 주장. 그리고 진실
종군위안부는 언제나 있어왔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일본, 진정한 자존심 회복을 바란다면
중국, 역사를 다시 쓰려하다
동북공정의 총체적 이해를 위한 도표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측 반론
동북공정의 숨은 목적, 그리고 그 대응방안
끝마치며.

본문내용

가, 신형식·최규성, 도서출판 백산자료원, 2004년 5월 21일, p.180~p.182
이렇듯, 명백한 역사적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신들만의 논리로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 중 하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 멸망이후 유민들이 중국으로 유입, 한족(漢族)으로 융합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자. 고구려는 원래 인구가 70여만 명이었는데 그 중에 30만 명이 중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 나머지는 신라에 대략 10만, 발해에 10만 이상, 북방돌궐 등으로 도망한 사람이 만여 명, 전쟁 중에 죽은 사람을 고려해 넣으면 대략 고구려 원래 인구와 비슷하다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는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허구의 계산이다. 고구려의 인구는 668년 69만 7천호였는데 669년(총장 2년) 5월에 당(唐)이 고려의 호(戶) 2만8천200을 옮겨갔다고 한다. 이에 대해 20여만 명을 당으로 옮겼다고 하는 견해가 있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계산이 나왔는지 알 수 없다. 645년 요동성, 개모성, 백암성 등 10여 성에서 7만여 명을 당나라로 옮겼다고 하나, 이는 인구 통계가 기록된 668년보다 23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당으로 옮겨진 인구가 69만 7천호에 포함되었는지 알 수 없다. 또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男生)의 묘지에는 연남생이 국내성 등 6성의 10만호를 이끌고 망명했다고 한다. 10만호의 숫자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당으로 옮겨진 호구는 약 13만호이다. 69만호 가운데 56만호는 그들의 거주지에 살거나 신라로 옮겨갔다. 그들의 거주지에 살던 사람들은 발해의 주민이 되었다가 발해가 망한 후에, 압록강 이남의 주민들은 고려에 편입되었고, 압록강이북의 발해유민들도 상당수 고려로 투항해왔다. 내투하지 않은 사람은 거란이나 여진족에 흡수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고구려인 중에 한족(漢族)으로 들어간 숫자가 한민족(韓民族)에 들어간 숫자보다 많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적은 부분의 고구려인이 한족(漢族)으로 융합되었다고 하여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설사, 중국으로 간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중국으로 유입된 사람들은 한족이나 만주족에 동화되어 그 존재를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대신에 한반도에는 고구려를 구성했던 민족이 7천만 명이나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사는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의 역사이어야 하는가, 그 존재가 분명한 7천만의 역사이어야 하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고구려는 중국사인가, 신형식·최규성, 도서출판 백산자료원, 2004년 5월 21일, p.221~p.223
동북공정의 숨은 목적. 그리고 그 대응방안.

국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것인가? 단순히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포함시키기 위해서 긴 시간과 많은 돈과 인력을 소비하고 있는 것 일까? 국내 학자들은 동북공정의 1차적 과제가 고구려사의 중국사의 편입이기 때문에, 현재 드러나고 있는 부분은 동북공정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전문가들은 남북통일 이후, 간도 영유권에 대한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라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한·중 국경선은 1909년 일본과 청의 간도협약 때 굳어진 것으로 중국은 이를 불안한 국경선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선 포항공대 교수는 "동북공정에서 27개 과제가 1차적으로 공개 선정되었는데 그중 12개 과제가 간도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고구려사 문제는 2개 과제에 불과하다. 12개의 과제들은 모두 간도가 중국 땅이라는 논리를 영원히 고착시키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학술연구이다. 2차로 공개 설정된 15개 과제 중에는 7개가 한.중 변경문제와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다.
동북공정을 단순히 고구려사의 중국사로의 편입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반도가 통일된 후에도 간도의 영유권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목적인 것이다. 고구려는 중국사인가, 신형식·최규성, 도서출판 백산자료원, 2004년 5월 21일, p.326~p.328
더 나아가 간도지방을 본보기로 하여 여러 소수민족에 대한 귀속력을 높이려는 속셈이 그 바닥에 깔려 있는 것 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어떠한 시각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그 출발점은 동북공정의 숨은 목적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고구려사의 왜곡이라는 주제에 함몰되어 앞으로 중국이 취하게 될 자세를 미리 예상하지 못하다면, 현재 간도와 같은 상황이 또다시 연출 될 것이고 그로인해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좀 더 넓은 시각으로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끝마치며.

번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역사'라는 학문에 대해서 한번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같은 사건을 가지고도 서로의 입장에 따라서 엄청난 시각 차이를 보이는 것을 보고 역사란 단순히 과거사실의 나열만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라는 Edward Hallett Carr의 역사에 대한 비유는 정말 적합한 표현이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이번 학기동안 배운 역사에 대한 지식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참고자료의 내용들만을 나열하여 보고서가 지나치게 길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이번 보고서의 주제에 대해 조사를 하다 보니 역사를 바라보는 각국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네들의 입장에서 주장한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 우리의 주장만 펼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공허한 외침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제넘게 역사에 대해 정의를 내려 본다면 나는 역사란 ‘현재를 움직이는 과거의 손길.’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지나간 과거사실이지만 현재 국가의 정책이나 교육관등 많은 부분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를 죽은 과거사실로 볼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학문으로 인식하여 그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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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8.03
  • 저작시기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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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6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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