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n 스티브잡스 읽고 요약정리 및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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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에는 오로지 맥 사용자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었다. 2001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스티브는 청중들에게 외쳤다. “우리는 아이튠의 간편한 사용법이 더 많은 사람들을 디지털 음악 혁명에 끌어들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아이튠을 가지고 혁명에 동참했다. 그것은 애플 제품군과 호환되는 인터넷 서비스의 개시였으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애플과 함께’라는 스티브의 비전을 구체화한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단지 혁명에 동참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11. 아이포드, 아이튠, 데어포 아이앰 iPod, iTunes, Therefore I am
어느 날 하이테크 산업의 젊은 뜨내기 컨설턴트가 휴대용 음악 재생기(MP3)에 대한 기본 아이디어를 갖고 애플을 찾아왔다. 이것이 아이포드(iPod)의 탄생의 시작이었다. 스티브는 디자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칭 “예술가”이며, 동시에 첨단 기술을 가장 손쉽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애플의 정신이다. 아이포드는 이러한 잡스의 감각과 애플의 목표가 잘 결합된 작품이다. 2001년 10월 애플이 세상에 내놓은 아이포드는 애플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제품이다. 아이포드를 출시하며 스티브는 말했다. “이제 아이포드가 나온 이상 음악을 듣는 일은 예전과는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스티브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한 진실이 되었다.
애플의 세 번째 음악사업은 아이튠 뮤직스토어였다. 아이튠 뮤직스토어는 소니, 워너 등 대형음반사와 정식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음반업계의 축복 속에 탄생한 최초의 인터넷 음악 공급업체다. 스티브는 디지털 음악 공급이 음악의 판매와 배급 방식을 영구히 변화시킬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미래의 맥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아이튠 뮤직스토어는 순식간에 합법적인 음악 다운로드 시장의 70퍼센트를 차지했다. 1년 만에 무려 8,500만 곡의 판매 실적을 올렸고, <포춘> 선정 “2003년 히트 상품”에 뽑혔다. 음악 산업에 진출한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서 가장 텃새가 심한 영역에서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음악 산업의 특성을 바꿔 놓았고 그 분야를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켰다.
12. 거인들의 싸움
한 동안 긴밀한 제휴 관계를 유지해왔던 픽사와 권위주의적인 마이클 아이스너가 이끄는 디즈니는 자주 충돌했고 결국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운명이었다. 마침내 픽사는 디즈니와의 결별한 후 첫 작품으로 <인크레더블>을 제작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픽사의 운명이 걸린 작품이었다. 주말에 개봉된 <인크레더블>은 주말 흥행기록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인크레더블>의 성공으로 스티브는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제 픽사는 디즈니 없이도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이클 아이스너는 로이 디즈니와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디즈니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거인들의 충돌에서 양측은 모두 승리자이면서 패배자였다. 디즈니는 막대한 이익을 놓쳤고 픽사는 역사상 최고의 마케팅 파트너를 잃었다. 그러나 이제 스티브는 모두가 인정하는 영화계의 거물이 되었다.
아무리 엄청난 부와 명예도 보통사람에게 찾아오는 병마를 막아주지는 못한다. 2004년 8월 1일 일요일 스티브 잡스는 가족과 지인,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개인적인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저는 췌장에서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을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이 종류의 종양은 조기에 발견하면(제 경우가 그렇습니다만) 외과 수술로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 8월 한 달 동안 회복기간을 갖고 9월에는 업무에 복귀할 겁니다. (…) 9월에 여러분을 다시 만날 것을 고대합니다.”
스티브가 그처럼 일찍 복귀하려고 했던 이유는 몇 달만에 밝혀졌다. 애플은 아이포드의 성공을 잇는 신제품 개발에 나서면서 다시 잡스의 거창한 꿈을 맹렬히 좇기 시작했다. 그것은 빌 게이츠에게서 다시 컴퓨터 산업을 다시 찾아오려는 꿈이었다.
13. 쇼타임
2005년이 시작될 때 스티브 잡스는 세상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아이포드의 판매 실적은 이미 기대치를 웃돌았고, 췌장암도 깨끗이 물리쳤다. <인크레더블>은 막대한 흥행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부문의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잡스는 이제 겸손함의 미덕까지 갖춰서 그 해 시상식에서는 작가 겸 감독 브래드 버드에게 무대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역할을 양보하기까지 했다. 그의 명성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완벽하게 부활했다. 아니, 예전보다 더욱 훌륭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매킨토시를 처음으로 소개한 지 21년이 지난 2005년 1월 11일 맥월드 엑스포에서 스티브는 그간 개발한 신제품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한 지 82분만에 그 날 행사의 가장 중요한 제품을 선보였다. 키보드도 마우스도 모니터도 없는 조그만 컴퓨터, 맥 미니(Mac Mini)였다. 관객은 맥미니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잡스가 가격을 499달러에서 599달러 정도로 책정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자 장내가 떠나갈 듯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애플 역사상 가장 값싸고 부담 없는 매킨토시입니다.” 그것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강력한 도전장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쉰 살의 나이에 세 가지 산업에서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이제 막 시작한 사람처럼 행동하곤 한다. 그의 근본적인 기질은 변하지 않았다. 공격적이고 독단적인 태도가 여전했고 거의 불가능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밀어붙이는 태도 역시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중년이 되었다. 아이가 셋이나 되고 산전수전을 겪은 중년의 나이에 도달해 있었다. 좀더 따뜻한 사람, 좀 더 부유한 사람, 좀 더 용서하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예전 그대로의 스티브 잡스였다. 참을성은 우리가 스티브 잡스에게 기대할 만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숭배자들, 투자자들, 음악 애호가들, 영화 관객들, 그리고 새로운 디지털 세대는 모두 잡스가 다음 번엔 어떤 세계를 정복할지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 점에서는 잡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9.12.04
  • 저작시기2009.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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