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banese Diaspora(레바논 디아스포라) 역사와 규모, 특징, 이주요인, 해외이주정책, 경제적 효과, 경영, 마케팅 조사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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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레바논은?

2-1. 레바논의 역사

2-2. 레바논과 대한민국

3. Lebanese Diaspora

4. 유명한 레바논인 디아스포라

5. 맺는말

본문내용

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2007년 포츈지에서 레바논 디아스포라들의 자손들이 중남미 국가에서 손에 꼽히는 부를 축적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기독교계 레바논 디아스포라들은 미국에서는 Lebanese American community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브라질의 레바논 디아스포라의 규모가 가장 크며 60~70만 정도가 레바논 디아스포라들의 자식들이다.
레바논 디아스포라의 거대한 규모는 그들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전통을 통해 일정부분 설명이 가능하다. 과거 그들은 유럽과 중동을 이어주는 관문(Gate Way)의 역할을 했었다. 이것은 레바논인들의 조상인 페니키아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레바논인들이 바다를 통해 항해하고 여행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습성을 가진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레바논인들은 경제적인 번영을 위해 이민하는 것을 전혀 거리낌 없이 수행해 왔다. 더 나아가 레바논인들은 지 난 두세기 동안의 인종청소와 대이동을 잘 견뎌왔다. 이러한 사실들은 레바논 디아스포라의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리아의 점령 하에 있는 동안 베이루트에서는 레바논 디아스포라의 후손들이 자동적으로 레바논 시민권을 얻게 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 또한 많은 디아스포라를 낳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레바논 디아스포라들은 본국에서의 선거에 해외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켐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켐페인은 의회에서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2013년 선거부터 그들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렇게 레바논의 선거권이 확대된다면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증가될 것인데 그 이유는 레바논 디아스포라들의 대다수가 기독교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다수의 레바논 디아스포라들은 레바논 내전 당시에(1975~90) 해외로 흩어졌다. 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왔다 하더라도 이 시기의 디아스포라의 움직임은 레바논의 인구증가와 불안한 정치, 경제적 요인들을 만들었다. 또 다른 전쟁의 결과는 다시금 레바논인 디아스포라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남부의 시아파 조직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8년, 1982년과 1996년의 이스라엘의 남부 레바논 침공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도 대규모 이민의 물결을 초래한다. 추가적으로 1982년부터 2000년대까지의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감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많은 시아파 디아스포라들은 베이루트에서 급격히 슬럼가를 만들었으며 소위 “belt of misery”라고 이름 지어졌다. 전쟁 후에 시리아의 가혹한 압제 속에서 기독교계 레바논 인들은 극심한 차별을 느끼게 되었고 이들의 이민은 가속화 되었다.
거주국가
추정 인구수
거주국가
추정 인구수
브라질
10000000
미국
3300000
아르헨티나
1500000
콜롬비아
840000
오스트레일리아
500000
케나다
449000
맥시코
400000
베네수엘라
340000
프랑스
250000
사우디 아라비아
120000
에콰도르
100000
중동국가
100000
칠레
90000
영국
90000
우루과이
70000
코트디부아르
60000
독일
50000
뉴질랜드
47200
세네갈
40000
그리스
30000
덴마크
23500
사이럽스
20000
남아프리카 공화국
20000
스웨덴
20000
자메이카
20000
스페인
14500
라이베리아
10000
나이지리아
30000
시에라리온
10000
쿠웨이트
10000
이집트
7500
벨기에
70000
가나
6700
스위스
5800
이탈리아
3860
앙골라
3300
불가리아
3000
<2011년 5월 자료>
4. 유명한 레바논인 디아스포라
1) Julio Teodoro Salem : 리오밤바 태생의 Julio Teodoro Salem는 레바논 출신의 에콰도르 정치인이다. Julio Teodoro Salem는 Liberal Radical Party의 당원이었으며 1934년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 Abdala Bucaram : 에콰도르의 정치가이자 변호사이다. 1996년 10월부터 1997년 2열까지 짧은 기간 동안 에콰도르의 대통령직에 앉았었다.
3) Alberto Dahik : 레바논인 에콰도르의 정치인이다. 프린스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재정장관을 지냈었고 88년부터 92년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다.
4) Jamil Mahuad : 에콰도르의 변호사이자 정치가로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51대 대통령을 지냈다.
5) Jacobo Majluta Azar : 도미니카 공화국의 1세대 정치가이다.
6) Julio Cesar Turbay : 콜롬비아의 정치가로 Colombian Liberal Party의 당원이었다. 1978년부터 1982년까지 콜롬비아의 대통령을 지냈다.
7) Alberto Abdala : 우루과이의 정치가로 1967년부터 1972년까지 부통령으로 재임했다.
8) George J. Mitchell : 미국의 정치가이자 평화 사절
9) Ralph Nader : 2004년과 2005년에 대통령 후보직에 올랐었다.
5. 맺는말
레바논 디아스포라는 레바논인이 가진 특성으로 인해 생겨났다. 유럽과 중동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지역인 레바논이 자유로운 왕래와 무역에 대해 일찌감치 눈을 뜨고 있었음은 두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수성을 통해 레바논인들만의 특성이 만들어졌고 이것으로 디아스포라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레바논 디아스포라에게 항상 봄날만은 없었던 듯하다. 레바논에서의 내전과 이스라엘과의 분쟁 때문에 레바논인들은 모국을 떠나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전쟁을 통해 큰 아픔을 간직한 채로 모국을 떠나야만 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레바논인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외국에서 자신들의 사업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다른 종교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그들만의 집단을 형성했으며 모국과 끝없이 관계를 맺으려 했다. 결국 그들은 선거권을 따내는 것까지 성공했다. 어쩌면 레바논인 디아스포라가 진정 State-Linked Diaspora의 성공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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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5.09
  • 저작시기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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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64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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