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패권이전(13세기 세계체제) 재닛 아부-루고드 줄거리 요약, 내용 요약, 감상문, 독후감, 느낀점, 나의 소감, 나의 견해 총체적 조사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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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달리 다수의 공존하던 중핵세력들이 분쟁과 협력의 관계를 거치면서 13-14세기 전반기 동안에 통합이 점점 강화되었으며 어느 단일한 패권국도 생산과 교역의 조건들을 타자에게 강제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위계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지리적 실체도 중심에 위치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때문에 세계체제를 조직하는 원리들의 가변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체제들은 원리들의 변화에 따라서 재편성된다고 저자는 강변한다.
또한 약 2천년 전에 13세기 세계체제에 참여하고 있던(북유럽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포괄한 아주 이른 최초의 세계체제가 존재했으며 지리적으로는 그 형태가 13세기의 것과 유사했으나 정치적으로는 좀 더 제국적인 성향에 따라서 구조화되어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각 부분들이 잘 통합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 체제는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한 제국의 통일이 좌절된 후에 붕괴했으며 결국 이슬람세계의 융성과 동방으로의 확장을 통해서 비로소 재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추적했던 13세기 세계체제에서 최종적으로 정점에 이르렀던 것은 바로 그 재조직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따라서 세계체제들의 융성과 쇠퇴는 민족, 제국, 문명의 성쇠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세계체제는 통합이 강화되면 융성하고, 오랜 통상로들을 따라 이루어지는 접속이 감소하면 쇠퇴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일정한 역동적인 통합의 활기가 사라질 때에 세계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어설픈 것이고 오랜 부분들이 계속 살아남아 그로부터 재구성이 진전되는 재료들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분수령이 된 16세기를 북유럽이 대서양으로 진출했던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평하고 그 당시의 팽창과 역동성의 지역으로 대표되는 대서양을 대신하고 있는 태평양에 이와 유사한 변화가 현재 일어나고 있고 재구성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서양의 융성'과 '동양의 쇠퇴'를 설명하기 위해 기존에 끌어왔던 것과는 다른, 체제상의 변화를 더 적합하게 설명하는 이론들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가설들의 개요를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생각해봅시다>
1. 저자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세계체제'라는 용어는 16세기 이후에 발달했던 특수한 위계적 조직구조와 융합되어있다고 본다. 이는 세계체제에 대해서 결코 생산적이지 않은 논쟁들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하나의 체계는 단순하게 "어떤 기획에 따라서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부분들로 구성된 집합체"라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렇지만 그 기획자체가 특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각 부분들의 역할이 중심적이든 주변적이든 상관없이, 각 부분들이 다른 부분들과 대등하게 서로 결합된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어떤 세계체계도 전지구적이지는 않다고 설명한다.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전지구적으로 통합되어있는 오늘날도 세계는 주요권역(북대서양 체제, 환태평양권, 중국, 북아프리카-서아시아 아랍 세계 등)이나 하위체제들로 나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세계는 꼭 하나의 체제로 설명 가능해야만 하는가? 세계는 꼭 결합되어야만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2. '중요한 것은 미래와 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비교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적용하면 과거에 비해 이 책은 '제국'을 분석단위로 설정하지 않고 '도시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비교적 다양한 관점과 성과를 담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대도시들이 배후지들의 부를 고갈시키고, 농촌지역 뿐만 아니라 위성국가의 수도들로부터도 잉여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패권주의'적인 행위들에 대해 눈감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과 '서울'이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3. 13세기 세계체제의 융성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디테일한 전개에 비하면 동방의 쇠퇴나16세기 이후 유럽이 패권을 쥐게 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많이 아쉽다. 유럽이 패권을 갖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4. 쇠퇴가 융성보다 분석하기 어렵다는 윌러스틴의 지적(p439)이 있긴 했지만 현재의 세계체제를 쇠퇴라고 보고 분석해보자. 유럽과 미국의 패권 이후는?
<별첨>
십자군(라틴어: croisade)은 교황의 호소로 조직된 기독교적인 성향을 강하게 띤 군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감행된 중세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이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 대항하여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행해진 대규모의 군사 원정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는 직접적으로 성지와는 관계없는 레콩키스타나 동유럽에 파견된 동방십자군, 발트해 연안의 여러 나라에 원정을 감행한 북방십자군, 이단에 대한 알비 십자군 등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 취지와는 다르게 십자군측이 예루살렘을 확보한 기간은 1099년 ~ 1187년 및 1229년 ~ 1244년뿐이었다. 이후 20세기까지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게 된다.
당시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십자군은 의로운 군대로 이 전투는 성전이 되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세계의 여러 나라들뿐만 아니라 같은 기독교 문화권이었던 동방정교회의 나라들까지 공격해 들어간 침략군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십자군 운동은 처음의 순수한 열정과는 달리 점차 정치적·경제적 이권에 따라 움직이면서 순수함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교황은 교황권 강화를, 영주들은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등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성향이 반영된 전쟁이었다. 사자심왕 리처드 등 서유럽의 대표적인 세 나라의 군주들이 함께 참가한 제3차 십자군(1189-1192)이 가장 유명하고, 그 절정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켜 같은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 제국을 몰아내고 라틴 제국을 세운 제4차 십자군(1202-1204)이었다.
이 전쟁에서 약탈되어 온 유물, 서적들은 당시 암흑시대를 지내고 있던 중세에 큰 영향을 끼처 훗날 르네상스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를 방문하여 과거 십자군에 의한 침략과 학살, 약탈행위 등에 대해서 정식으로 사과했다.(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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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7.13
  • 저작시기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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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6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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