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형랑과 도화녀』설화 인간과 귀신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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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형랑과 도화녀』설화 인간과 귀신의 사랑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전하지 않는 점으로 미뤄볼 때 비형랑, 즉 김용춘은 나이가 들어 어느 정도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⑵ 민속사적 의미 : 신라 무속의 변화
종교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비형랑과 도화녀』설화는 상당부분 불교와 민중신앙의 결합을 내포하는 내용이 많다.
진지왕과 도화녀의 결합은 불교와 귀신 신앙의 결합을 의미(강영경) 강영경, “고대 한국 무속의 역사적 전개.”, 『한국무속학』, 제10집, 2005, p.57~58.;
논문에 따르면 필자는 도화녀의 종교적 기반을 귀신신앙(鬼神信仰)으로 보고 있다. 그 근거는 바로 설화 속에 등장하는 ‘사량부의 서녀(庶女)’라는 단어인데, 필자는 서녀(庶女)라는 단어 중에서도 ‘서(庶)’라는 글자를 주목하고 있다. 이 ‘서(庶)’자는 고대에 제사에 관련된 용어라고 하는데, 특히 돌아가신 분의 신상(神像)을 모신 곳(屋)에 많은 무리가 모여 성황을 이룬 것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특히 ‘서(庶)’라는 글자의 형상은 제의(祭儀)가 거행될 때 많은 무리가 모여 성황을 이루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아 ‘사량부의 서녀’인 도화녀는 ‘신을 섬기며 제의를 거행하고 많은 무리가 따르는 큰 힘을 지닌 무녀(巫女)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필자의 주장대로, ‘서(庶)’라는 글자가 신을 모시는 제사, 제사에 모인 사람들을 형상화했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물론 이 글자는 형태상으로 ‘고대 사회에 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인 모습’을 나타낸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고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추위를 이기기 위해, 생존을 위해 불 주변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 모임이라는 것이 꼭 제사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필자처럼 하나의 글자만 따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글자 자체로 ‘서녀(庶女)’에 주목하는 것이 나을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의 주장과는 달리 ‘서녀’ 도화녀는 무녀라기 보다는 ‘庶出’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고, 이러한 주장을 통해 도화녀의 종교적 뿌리가 귀신신앙이라고 보는 것도 근거가 희박하다고 판단된다.
하기도 하고, 반인반귀인 비형랑이 진평왕의 부름으로 궁궐생활 하는 모습은 불교귀족 사회에 적응하게 되는 귀중(鬼衆)의 모습을 담고 있다. 결정적으로 진평왕은 비형랑으로 하여금 길달에게 당시 신라 불교의 제1 가람이었던 흥륜사(興輪寺) 남루문을 세우도록 지시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의 반불교 세력(귀신신앙)의 불교에 대한 순응을 뜻하기도 한다.
동시에 귀신의 우두머리였던 비형이 여우로 도망간 길달을 쫓아 죽이는 장면에서는 귀신이 귀신을 죽이는(以鬼捉鬼) 상황이 발생함으로써 설화 생성 당시에 이미 귀신 신앙도 각각 여러 갈래로 분리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참고자료>
김기흥, 『천년의 왕국 신라』, 창작과 비평사, 2000.
신라사학회, 『신라 속의 사랑, 사랑 속의 신라』, 경인문화사, 2006.
강영경, “고대 한국 무속의 역사적 전개.”, 『한국무속학』, 제10집,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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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2.09.17
  • 저작시기2012.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7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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