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의 중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10.26사태 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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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신의 중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10.26사태 김재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대기업 등 설거지거리 수업이 많이 있다. 1개 군인 소장의 정치 경험으로 국사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최 대통령은 이런 소인배에 국가의 중대사를 맡겨도 좋은가.
[우리나라의 전망] 2,3월 개학기가 위기가 될 것이다. 언론 보도 통제는 현명한 방법이 못 된다. 일시에 대폭발이 돼 그동안의 불만이 터진다. 노동자가 대정부 투쟁을 할 것이고 종교계 중심으로 자유화 투쟁이 거세게일 것이다. 국회가 개원되면 정국은 흔들릴 것이고 물가고를 못 잡으면 대정부 불신임이 고조될 것이다. 북한은 평화공세로 나오면서 국론분열을 부채질 할 것이다. 속지 말고 착실히 대처해야 한다.
[혁명 후 복안] 3~5개월 내 정국을 안정시킨다. 행정기능은 일사불란한 대민 봉사를 하고 여당우위의 사고방식을 제거한다. 선거과열방지와 행정부 절대 중립을 보장한다. 정권과 지도자 교체는 정당한 민의로서만 이뤄지게 하고 인위적 방식으로 장기집권은 절대 못하게 한다.
[국회의 처사] 국회가 정말로 존재했는지 민의를 대변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회복되는 날 지금의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했다고 하겠는지.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책임은 비단 행정부만이 아니고 입법부에도 있다.
[국민들에게]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자유가 병들었던 것은 우리의 노력 부족과 무관심에서 빚어졌습니다. 자유가 보장 되지 않는 사회는 곧 지옥입니다. 국민모두가 한마음으로 지킵시다. “오늘은 나를 위하고 내일은 후손들을 위하여”
< 수양록 대부분 중 ‘국민들에게’ 부분만큼은 존칭을 썼다.
이 글이 공개될 것도 감안했다는 뜻이다. >
만일 김재규가 이 계획들을 옥중에서 생각하지 아니하고 10.26 대통령 시해 1시간 전에만 생각했어도, 김재규의 혁명은 성공했고,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이처럼 김재규는 자신의 우발적 범행을 민주주의로 감싸고 점점 미화시켜 나갔다.
사형선고를 받는 김재규와 그의 측근들
◎ 김재규의 최후  
분노, 체념… 만감 교차, 염주 쥔 채 역사 속으로
주군인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할 정도로 강한 정신의 소유자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도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는 나약한 보통 인간의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재규는 1980년 5월24일 새벽4시40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울구치소로 이송됐다. 당시 계엄사 합수부는 김재규를 안전하게 호송하기 위해 '007 영화'를 방불케 하는 극비작전을 폈다. 이송 중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탈주 또는 범인탈취를 막기 위해 냉동차모양의 똑같은 호송차 3대를 동원, 김을 첫 번째 호송차에 태우고 나머지2대는 빈차로 운행했다. 이들 주위는 완전 무장한 헌병 1개 중대가 호위했다.
서울구치소에서는 김에게 '장군'이란 호칭까지 사용하면서 사형집행을 알리지 않은 채 단순한 이감조치라며 안심시켰다. 본인도 확정판결이 5월20일 이뤄졌기에 4일 만에 형이 집행되리라고는 생각 치 않은 듯 했다. 하지만3시간도 지나지 않은 오전7시30분 형 집행이 이뤄졌다.
김재규는 통고를 받고 방을 나오는 순간 창백한 얼굴로 변하며 상기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막상 형장을 10여m 앞두고는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힘들었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 교도관들에게 들려 가다시피형장 안으로 들어갔다.
계엄사 군인 및 검찰관계자와 구치소 직원, 종교인 등 4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형 집행이 시작됐다. 김은 약간은 분노한 듯한 표정 속에 한편으로는 체념한 듯한 다소 이중적인 모습으로 허공을 바라보았으며 눈가는 젖어있었다. 본적과 주소 및 경력 등을 확인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것이 분명한지를 확인하는 검사의 인정신문에 김은 모두 담담하게 사실대로 답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김에게 "종교의식을 하겠느냐"고 제의했으나 거부했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 는 질문에도 "할 말 없다" 며 입을 다물었다. 그는 두 손을 합장한 채 10ㆍ26사건 이후 어머니로부터 받은 염주를 손에 쥐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故 김재규 에 대한 나의 평가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 생각하는 힘을 원동력으로 인간은 찬란한 문명을 꽃피워 갔고 현재 만물의 영장으로 자연을 지배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생각의 힘으로 인해 불행해지기도 한다. 히틀러의 생각으로 많은 유태인이 죽었고, 루즈벨트의 생각으로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으며, 박정희의 생각으로 많은 시민이 억압받았다.
우리는 가끔 실수를 한다. 그 실수를 거짓말로 덥기도 하고, 여러 핑계로 정당화 시키려 고도 한다. 항상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두고 한 가지 기준으로만 판단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재규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날카로워야 하며 냉정해야 한다. 왜냐면 그가 주인공이 된 10.26 사태는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한국 근대사 역사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가 개인적인 감정으로 저지른 살인 사건이 우리 민족의 민주화를 앞당긴 순국 행의로 비쳐줘서는 결코 안 될 것이며, 그의 죽음이 의로운 죽음으로 비춰져서도 안 될 것이다.
김재규, 그는 민주주의를 논하기 전에 자신을 키워주고 보살펴준 어미를 문 패륜아이며, 대의만 있으면 하극상도 정당하다는 논리를 이 사회에 심어준 반역자이며, 결과적으로 12.12 사태를 불러 민주주의를 더욱 더 멀리 떠나가게 만든, 민주주의의 적이다.
만약 그의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었던 10.26사태가 조금 더 계획적이었다면, 조금 더 신중한 결정과 준비로 이루어진 쿠데타 아닌 혁명이었다면, 그는 역사를 바꿨을 것이고 한국 근현대사 에서 재평가 받았을 것이며, 나의 레포트 에서도 ‘민주주의의 아버지 김재규’라는 제목으로 나에게 A+를 선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혁명은 충동적이었고 그가 그린 민주주의의 청사진은 너무나 흐릿하였다.
앞으로 어떤 사실이 또 밝혀져서 다시금 그때 그 사람들이 재조명 되며, ‘인간 김재규’가 시 재평가 받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김재규 그는 ’허황된 꿈을 꾸었던 동키호테‘로 나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언론 플레이의 달인 김재규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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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0.04
  • 저작시기2014.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7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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