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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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종군위안부
1. 종군위안부와 정신대
2. 종군위안부의 부당성

Ⅲ. 치욕의 역사
1. 종군위안부의 발생배경
2. 종군위안부의 충원
3. 당시 위안부의 생활

Ⅳ.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외 활동
1. 국제활동
2. 아시아 연대활동
3. 남북한의 활동

Ⅴ.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황과 복지
1. 현재의 생활
2. 복지와 각계의 지원

Ⅵ.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하고 불교도들과 뜻 있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모금한 총 2억여 원과 기증받은 토지로 1992년 10월 31일, 당장 거처가 필요한 할머니들을 위해 서교동에 ‘나눔의 집’을 마련했다. 처음 6명의 할머니들이 입주했다. 현재 나눔의 집은 혜화동을 거처 경기도 광주에 자리잡아 9명의 할머님들이 살고 있다. 이후 ‘나눔의 집’은 사업이 확장되어「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세워져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그림 교실, 한글교실, 수지침교실이 운영되었는데. 그림 교실의 경우 할머니들이 일본군‘위안부’ 시절의 아픈 이야기를 그린 그림 30여점이 일본과 국내외에 전시회를 통해 공개되어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했다.
이 외에 ‘광야기획’이라는 기독교 복음성가 가수들은 ‘100교회 순회콘서트’를 계획하여 1995년 후반부터 1997년까지 진행, 노래 뿐 아니라 ‘위안부’문제와 관련된 슬라이드를 상영하는 등, 기독교인들에게 일본군‘위안부’문제를 통한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92년 12월 〈정신대 할머니 생활 기금 모금 국민운동 본부〉가 발족되어 범국민적으로 1억 5,000만원을 모금, 1993년 7월 할머니 26명에게 250만원씩을 지급하였다.
첫 번째 모금운동에 이어 2차로 진행된 정신대 할머니 돕기 모금운동은 일본의 국민기금을 저지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진행되었다. 법적 배상을 회피하는 국민기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 하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대 할머니는 우리가 지킨다는 슬로건 아래 〈강제연행 당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지키기 시민연대〉를 결성하였다. 그 결과 1996년 10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전국민모금을 시행하여 155명의 생존자에서 350만원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국민기금이 피해자들에게 비밀리 지급하는 등 여전히 위로금 지급을 강행하자, 정부의 후원으로 3차 모금을 시작하였다. 1997년 10월부터 시작된 전 국민 모금운동은 1998년까지 60억원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IMF 한파로 목표액 60억 달성이 어렵게 되자 1998년 5월 정부차원에서 1인당 3,150만원을 지급하였고, 〈정신대 할머니 생활 기금 모금 국민운동 본부〉는 3차 모금분 410만 8천원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이 모금의 목적이 국민기금을 받지 않는데 있는 만큼 국민기금을 받은 일부 할머니들은 지급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로써 일본 국민기금과의 싸움은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피해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그 성격을 단순생활지원금이라고 규정하였다. 정부의 이 같은 의도는 위로금 차원인 국민기금을 반대하기 위해서 정부차원에서 지원금을 지급하되, 한일관계를 고려하여 일본에게 배상을 요구하기보다는, 사죄만을 요구하는 차원에 머물겠다는 소극적인 입장 표시하였다. 한국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이미 대만에서 시행한 ‘선 보상 후 청구’의 형식보다 훨씬 미약한 것이었다. 한국정부는 한국정부의 배상 요구를 주장하는 각계단체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Ⅵ. 결론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종군위안부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종군위안부였다는 사실을 그냥 조용히 묻어 두는 것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 땅에 다시는 과거 일본이 저질렀던 범죄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일본과 우리나라사이에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선 선결되어야할 과제는 일본정부의 범죄에 대한 인정이다. 강제 또는 거짓으로 우리의 딸들을 전장으로 보낸 것과 위안소 및 일본 제국군대의 여타 관련활동에 관한 문헌 및 자료들을 전면 공개하여, 그렇게 보낸 우리의 딸들에게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시켰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대일 외교와 관련 독도의 영유권 문제로부터 2차 대전후 피해보상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고 당당하게 사죄와 피해보상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비정부기구(NGO)의 활동으로 과거 일본의 만행에 의해 위안부 문제가 부상하게 되었으나, 2000년을 기점으로 각종 활동이 소원해졌으며, 국민들의 관심사에서도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일부 지식인과 의인들에 의해 다시금 과거사 재조명을 통해 과거 위안부들이 일본군 性노예제의 여성피해자임을 밝히고 피해자임이 확인된 개인들에게 서면으로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종군위안부가 당한 육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일본정부차원의 공식적인 보상이 함께 뒤따라야 할 것이다. 또한 종군위안부에 관련된 전범에 대한 재판을 실시하여 범죄에 대한 명확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육과정을 개정하여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여 종군위안부에 대한 인식을 그들의 국민들에게 일깨워야 한다.
위의 선결조건이 이루어 졌을 때에, 비로써 과거 징집되었던 종군위안부의 존엄성의 회복에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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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자료집, 왜 우리는 지금 이 문제에 도전하고 있는가, 정대협, 1992
정신대자료집, 제2차 아시아연대회의, 정대협, 1992
정신대자료집, 강제종군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법적책임, 정대협, 199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신대연구소 편, 증언집-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울, 한출판사, 1993
요시미 요시아키, 김순호(역), 자료집 종군위안부, 요시미 요시아키, 서문당 1993
일제의 조선강점피해조사위원회, 일제가 감행한 종군위안부 범죄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9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진상조사연구위원회,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진상, 역사비평사, 1997
한국정신대연구회, 한일간의 미청산과제, 아세아문화사, 1997
김윤심, 부끄러운 것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다, 제8회 전태일문학수상집, 해냄, 1998
요시미 요시아키, 이규태(역) 일본군 군대위안부, 소화, 1998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국회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모임 편, 여성과 인권관련 UN자료정집, 정대협, 1998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정대협,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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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0.29
  • 저작시기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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