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를 버려도 관찰자는 변함없이 따뜻하게 어머니처럼 언제나 미소 지으며 나를 감싸주고 위로해준다.
이 책을 읽다가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의 관찰은 어떨까? 동물도 눈이 있고, 마음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효과 있는 왓칭이라면 동물에게서도 똑같은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관찰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는지는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 사이에서도 호락논쟁이라는 이름으로 격론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동물 역시 나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처음부터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나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것은 어쩌면 물질이 풍부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가 아닐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 더 많은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해졌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나를 ‘타인처럼 바라보며 살라’는 저자의 조언이, 마치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서 있으라는 듯 들리고, 눈을 감고 어두운 길을 걸으라는 말처럼도 들려,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보인다. 아직 저자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텐데, 이 책을 10번 정도는 읽어야 조금이나마 왓칭에 가까워질 것 같다.
이 책을 읽다가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의 관찰은 어떨까? 동물도 눈이 있고, 마음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효과 있는 왓칭이라면 동물에게서도 똑같은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관찰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는지는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 사이에서도 호락논쟁이라는 이름으로 격론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동물 역시 나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처음부터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나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것은 어쩌면 물질이 풍부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가 아닐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 더 많은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해졌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나를 ‘타인처럼 바라보며 살라’는 저자의 조언이, 마치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서 있으라는 듯 들리고, 눈을 감고 어두운 길을 걸으라는 말처럼도 들려,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보인다. 아직 저자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텐데, 이 책을 10번 정도는 읽어야 조금이나마 왓칭에 가까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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