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영국 제국주의의 특수성
머리말
Ⅰ. 영국 제국주의의 역사적 배경
Ⅱ. 영국 내부의 정치적, 사상적 상황
1.영국 내부의 정치적 상황
2.영국 내부의 사상적 상황-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주의
Ⅲ. 영국의 대외적 상황
Ⅳ. 영국의 제국주의와 일본의 제국주의의 비교
1. 영국과 일본의 공통점
1)지리적위치
2)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통한 식민지 통제
2. 영국과 일본의 차이점
1) 식민국의 문화적 역사적 동질성 유무
2)식민지 확보의 목적
3)세계를 개척함으로 인해 선발주자였던 영국과 영국을 모델로 삼은 일본
맺음말
*참고문헌
머리말
Ⅰ. 영국 제국주의의 역사적 배경
Ⅱ. 영국 내부의 정치적, 사상적 상황
1.영국 내부의 정치적 상황
2.영국 내부의 사상적 상황-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주의
Ⅲ. 영국의 대외적 상황
Ⅳ. 영국의 제국주의와 일본의 제국주의의 비교
1. 영국과 일본의 공통점
1)지리적위치
2)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통한 식민지 통제
2. 영국과 일본의 차이점
1) 식민국의 문화적 역사적 동질성 유무
2)식민지 확보의 목적
3)세계를 개척함으로 인해 선발주자였던 영국과 영국을 모델로 삼은 일본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적,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 산업적 목적으로써 식민지화 한 것이다. 즉, 조선과 만주를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군사적, 산업적 전초기지로 삼음으로써 그들의 정책은 더 이상 영국과 같아질 수 없었다. 이에 반해 영국은 원래 제국의 확장 목적과 식민지화의 목적이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에 관한내용 중 1842년 T.B 메콜리는 "우리는 전 세계에 제품을 공금하고, 세계 무역을 거의 독점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군사적, 정치적 지배보다는 경제적, 무역적 지배의 성향이 강하였다. 이에 따라 그들의 식민지 또한 영국과 근접한 국가에 제한되어있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식민지화를 추진 할 수 있었으며, 영국에 의해 직접 통치되지는 않았지만 영 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거대한 비공식적 제국을 발전시켜나갔다.
3)세계를 개척함으로 인해 선발주자였던 영국과 영국을 모델로 삼은 일본
분명 영국은 식민지 개척에 있어서 선발주자였다. 튜더왕조의 강력한 해군으로부터 시작하여 이후 15, 16세기에 펼쳐진 대항해 시대에서 영국은 누구보다 빠르게 식민지를 확대해 나갔고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는 원동력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그에 반해 일본은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메이지 유신으로 인해 개혁이 성공하게 되었을 뿐더러, 스스로가 제국주의를 택한 것이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에게 침략당했던 것은 동아시아들 상대로 다시 제국주의적 보복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영국의 제국팽창이 적어도 19세기 말까지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면 일본의 그것은 열등감의 표현이었다. 이것은 결국 앞서나가는 영국으로 하여금 자신의 세력을 식민지에 대한 관리에 중심을 두게 되었고, 후발주자로써 남의 영토를 침략해야 했던 일본은 남의 땅을 빼앗아야 하는 침략적 제국주의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침략자는 자신의 침략한 땅에 있어 전초기지의 역할을 맡겨야 하므로 자치권 등 많은 자유를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국은 이미 차지한 땅에게 굳이 자치권을 빼앗는 등 강압적 태도를 취해 식민지를 잃을 필요가 없었다. 또한 그들은 그 땅을 굳이 강압적으로 지키기에는 영토가 너무 많았을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직후 전세계 지표의 1/4과 전 세계인구의 1/4인 5억 명을 제국 내에 포함하였음. 너무 많은 영토를 관리할 지배층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그들이 택한 방법은 ‘영국적 자유주의’적 제국주의가 필요했다. 즉, 영국과 일본은 지리적 위치와 인종차별주의 적인 통제를 사용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발주자’ 와 ‘후발주자’라는 차이점 때문에 정책적 측면에서 ‘영국적 자유주의’와 ‘침략적 제국주의’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맺음말
영국적 제국주의는 타자와의 관계설정에 있어서 타자를 인정한 채 자신의 우월성을 지키려는 측면에서 탄생한다. 즉, 제국주의가 목표이었고 그에 따른 식민지 확보는 영국적 제국주의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것은 다른 나라와는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다. 일본 같은 경우는 식민지 확보가 목적이었고 그에 따른 수단으로써 제국주의를 선택했던 것이다. 즉, ‘영국적’ 자유주의가 포함된 제국주의는 이러한 영국의 제국주의를 이룰 당시 상황이 만들어낸 가장 적합한 구조였던 것이다.
영국의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감으로 제국을 통치하는 것을 정당화 하였다는데 첫 번 째 특징이 있다. 그들이 누리는 우월감은 역사적으로 헌정사를 발전시켜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우수한 위치에서 다른 나라에 자신들의 우월함을 전파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두 번째로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를 들 수 있다. 다른 국가의 제국주의와 비교했을 때 보호무역보다는 자유무역을 지지했으며 식민 지배에 있어서도 직접지배 방식이 아닌 간접지배 방식을 주로 사용하였다. 물론 인도와 같이 인도 항쟁으로 인해 직접 지배 방식으로 바뀐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당시 전 세계 1/4을 차지하고 있던 영국의 식민지는 현재에도 영국의 영향력을 받고 있으며, 식민 통치를 받은 것에 대해 부끄럽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다는 것에 차이점을 둘 수 있겠다. 당시의 제국주의를 정당화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제국주의가 수탈만을 행한 제국주의가 아니라 어느 정도 느슨한 제국주의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서구 중심적인 시각을 배제할 수 없었다는 점이며, 단지 영국의 제국주의의 평가 보다는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전개했음을 밝혀둔다.
개인적으로 영국의 제국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는 이번 조사를 통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영국적 제국주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단순히 유럽의 제국주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저것 책을 읽어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았다. 특히, 영국의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는 이 세상에 존재했었고 존재하게 될 제국주의 중에 가장 특이한 형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 관계가 단순히 식민지에서 벗어났다고 끊어져버리는 일본과 같은 것이 아니라, 자치령으로 남아서 영국과 지속적인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 그것은 정치를 공부하는 우리에게 있어 단순히 일시적인 것이 아닌 융통성 있으면서도 지속적일 수 있었던 영국의 제국주의의 정책적 측면을 좀 더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가져다주고 있었다.
*참고문헌
박지향, ‘『제국주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사이먼 C. 스미스 ,『영국 제국주의』, 동문선.
영국사학회 편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혜안, 2005.
W.A스펙 ,『진보와 보수의 영국사』 ,개마고원, 2002.
케네스 O. 모건, 『옥스퍼드 영국사』, 한울, 2003.
Maurois, Andre(1963), 『영국사』, 신용석(譯), 서울:홍성사, 1986.
게이, 피터, R.K. 웹, 『서양 최근세사』, 박무성(譯), 서울:법문사, 1985.
권희정, 「1870년대 이후 영국 제국주의의 성격에 관한 일고찰」, 이화 여자대학교 교육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0.
3)세계를 개척함으로 인해 선발주자였던 영국과 영국을 모델로 삼은 일본
분명 영국은 식민지 개척에 있어서 선발주자였다. 튜더왕조의 강력한 해군으로부터 시작하여 이후 15, 16세기에 펼쳐진 대항해 시대에서 영국은 누구보다 빠르게 식민지를 확대해 나갔고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는 원동력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그에 반해 일본은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메이지 유신으로 인해 개혁이 성공하게 되었을 뿐더러, 스스로가 제국주의를 택한 것이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에게 침략당했던 것은 동아시아들 상대로 다시 제국주의적 보복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영국의 제국팽창이 적어도 19세기 말까지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면 일본의 그것은 열등감의 표현이었다. 이것은 결국 앞서나가는 영국으로 하여금 자신의 세력을 식민지에 대한 관리에 중심을 두게 되었고, 후발주자로써 남의 영토를 침략해야 했던 일본은 남의 땅을 빼앗아야 하는 침략적 제국주의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침략자는 자신의 침략한 땅에 있어 전초기지의 역할을 맡겨야 하므로 자치권 등 많은 자유를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국은 이미 차지한 땅에게 굳이 자치권을 빼앗는 등 강압적 태도를 취해 식민지를 잃을 필요가 없었다. 또한 그들은 그 땅을 굳이 강압적으로 지키기에는 영토가 너무 많았을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직후 전세계 지표의 1/4과 전 세계인구의 1/4인 5억 명을 제국 내에 포함하였음. 너무 많은 영토를 관리할 지배층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그들이 택한 방법은 ‘영국적 자유주의’적 제국주의가 필요했다. 즉, 영국과 일본은 지리적 위치와 인종차별주의 적인 통제를 사용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발주자’ 와 ‘후발주자’라는 차이점 때문에 정책적 측면에서 ‘영국적 자유주의’와 ‘침략적 제국주의’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맺음말
영국적 제국주의는 타자와의 관계설정에 있어서 타자를 인정한 채 자신의 우월성을 지키려는 측면에서 탄생한다. 즉, 제국주의가 목표이었고 그에 따른 식민지 확보는 영국적 제국주의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것은 다른 나라와는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다. 일본 같은 경우는 식민지 확보가 목적이었고 그에 따른 수단으로써 제국주의를 선택했던 것이다. 즉, ‘영국적’ 자유주의가 포함된 제국주의는 이러한 영국의 제국주의를 이룰 당시 상황이 만들어낸 가장 적합한 구조였던 것이다.
영국의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감으로 제국을 통치하는 것을 정당화 하였다는데 첫 번 째 특징이 있다. 그들이 누리는 우월감은 역사적으로 헌정사를 발전시켜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우수한 위치에서 다른 나라에 자신들의 우월함을 전파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두 번째로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를 들 수 있다. 다른 국가의 제국주의와 비교했을 때 보호무역보다는 자유무역을 지지했으며 식민 지배에 있어서도 직접지배 방식이 아닌 간접지배 방식을 주로 사용하였다. 물론 인도와 같이 인도 항쟁으로 인해 직접 지배 방식으로 바뀐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당시 전 세계 1/4을 차지하고 있던 영국의 식민지는 현재에도 영국의 영향력을 받고 있으며, 식민 통치를 받은 것에 대해 부끄럽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다는 것에 차이점을 둘 수 있겠다. 당시의 제국주의를 정당화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제국주의가 수탈만을 행한 제국주의가 아니라 어느 정도 느슨한 제국주의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서구 중심적인 시각을 배제할 수 없었다는 점이며, 단지 영국의 제국주의의 평가 보다는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전개했음을 밝혀둔다.
개인적으로 영국의 제국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는 이번 조사를 통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영국적 제국주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단순히 유럽의 제국주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저것 책을 읽어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았다. 특히, 영국의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는 이 세상에 존재했었고 존재하게 될 제국주의 중에 가장 특이한 형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 관계가 단순히 식민지에서 벗어났다고 끊어져버리는 일본과 같은 것이 아니라, 자치령으로 남아서 영국과 지속적인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 그것은 정치를 공부하는 우리에게 있어 단순히 일시적인 것이 아닌 융통성 있으면서도 지속적일 수 있었던 영국의 제국주의의 정책적 측면을 좀 더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가져다주고 있었다.
*참고문헌
박지향, ‘『제국주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사이먼 C. 스미스 ,『영국 제국주의』, 동문선.
영국사학회 편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혜안, 2005.
W.A스펙 ,『진보와 보수의 영국사』 ,개마고원, 2002.
케네스 O. 모건, 『옥스퍼드 영국사』, 한울, 2003.
Maurois, Andre(1963), 『영국사』, 신용석(譯), 서울:홍성사, 1986.
게이, 피터, R.K. 웹, 『서양 최근세사』, 박무성(譯), 서울:법문사, 1985.
권희정, 「1870년대 이후 영국 제국주의의 성격에 관한 일고찰」, 이화 여자대학교 교육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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