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에 대하여 설명(사진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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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라이프치히에 대하여 설명(사진참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붙어 있었다. 나는 게시판 옆에 쌓인 종이 가운데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들의 하느님께 뭔가 기도편지를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믿음이 없는 자가 기도편지를 써 교회 게시판에 붙여놓는 것은 신자들과 그들의 하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했다.
라이프치히와 인연을 맺은 음악가는 바흐나 슈만, 바그너만이 아니다.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일하며 이 악단을 유럽 최고수준으로 키웠고, 라이프치히음악원을 설립했다. 이 음악원은 오늘날 음악연극대학이 되었다.
토마스 교회를 나와 마르크트 광장을 지나서 니콜라이 교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니콜라이 교회는 서울로 치면 명동성당 같은 곳이다. 정치적 의미에서 그렇다. 니콜라이 교회는 1989년 동독 체제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보금자리였다. 역시 ‘고전적’ 외양을 하고 있는 이 교회를 나는 밖에서 보기만 했을 뿐 그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허기와 갈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니콜라이 교회와 라이프치히 대학 사이의 한 카페에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맛없는 빵과 소시지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멀지 않은 테이블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젊은 여성 둘의 목소리였다. 듣지 않으려 해도 들려오는 그 한국어는 그들이 이 도시로 유학온 음악학도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한국인이 옛 동독 땅을 밟을 수 있게 된지 두 해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곳엔 유학생들이 있었다! 카페 창 너머의 빈터에선 외국인 실업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야바위판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내가 라鎌좔″殆?온 목적을 생각해 냈다. 슈나이더-데터스와의 약속 시각은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 슈타지 건물 등 옛 동독의 흔적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라이프치히 지부는 독일-소련 친선회관 건물을 거의 통째로 쓰고 있었다. 지금은 건물 이름이 바뀌었을 테지. 내가 라이프치히에 간 게 소련이 해체된 지 한 해가 채 안 됐을 때라 그 이름을 관습적으로 쓰고 있었을 게다. 그 건물은 옛 슈타지(동독 국가안전부)의 라이프치히 지부 건물과 마주보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옛 동독의 많은 지식인들이,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슈타지의 협력자였다. 감시와 밀고는 동독인들의 일상이었다.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영화 <타인의 삶>(2006)은 당대 동독 분위기를 차라리 온건하게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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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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