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 1 장 기독교 예배에 대한 기초적 이해
제 2 장 예배를 위한 교회
제 3 장 예배의 역사적 발전
제 4 장 어떤 신을 누가 예배하는가?
제 5 장 예배 내용의 역사
제 6 장 종교 개혁과 예배
제 7 장 예배의 다양성과 본질
제 8 장 개신교 예배의 내용과 그 의미
제 9 장 기독교 성례전(聖禮典)-세례성례전
제 10 장 기독교 성례전(聖禮典)-성찬성례전
제 11 장 예배와 설교
제 12 장 교회력과 성서일과
제 2 장 예배를 위한 교회
제 3 장 예배의 역사적 발전
제 4 장 어떤 신을 누가 예배하는가?
제 5 장 예배 내용의 역사
제 6 장 종교 개혁과 예배
제 7 장 예배의 다양성과 본질
제 8 장 개신교 예배의 내용과 그 의미
제 9 장 기독교 성례전(聖禮典)-세례성례전
제 10 장 기독교 성례전(聖禮典)-성찬성례전
제 11 장 예배와 설교
제 12 장 교회력과 성서일과
본문내용
아멘의 응답은 삼가야 한다. 루터는 “설교란 설교자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듣는 사람에 의하여 이룩된다”고 말한바 있다. 오늘의 회중의 능동적이고 협조적인 참여는 언제나 훌륭한 설교의 전달을 받게 된다.
제 12 장 교회력과 성서일과
예배란 언제나 절기에 따라 진행되고 설교는 그 절기에 적절한 말씀으로 선포되어져야 함이 당연하다. 한국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예배와 설교는 부활주일이나 성탄 주일과 같은 특수한 날을 제외하고는 목사의 의향을 따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일들은 절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성경의 기본 정신이 계승되지 못함을 반영한다. 교회력의 목적은 예수님의 생애를 단순하게 기념하는 차원에 머물게 하는데 있지 않다. 이것은 구원의 종교인 기독교가 보다 더 상세하게 체계를 갖추어 구원의 역사를 이해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응답을 드리려는 아름다운 예배의 정신을 담고 있다. 교회력을 외면한 교회의 모습을 지닌 상태에서는 세계교회와 호흡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교회력에는 크게 두 가지의 형태가 있다. 하나는 일요일을 주님의 날로 지키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일 년을 주님의 구속사에 따라 구분하여 예배드리는 사람들에게 그 시기와 사고들을 재인식시키는 방법이다. 주일에 대하여 알아보면 안식일 다음날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신 주님의 충격적 사건을 서로의 가슴에 안고 그날이 되면 함께 모여 주님의 명령대로 성찬성례전을 계속해서 거행했다. 이날은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언급한 대로“모든 교회력의 기초요, 핵심이 되는 날”임에 틀림이 없다. 둘째로, 사도들도 외면하지 않고 지켰던 유대 민족의 고유한 유월절과 같은 절기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부활 사건과 승천, 그리고 성령 강림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해마다 새롭게 다짐하고 그 깊은 뜻을 성도들에게 전하려는 데서 절기를 중심으로 한 교회력이 시작되었고, 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 내용을 보자. 1)대림절이 있다. 교회력은 대강절이라고도 불리는 대림절로부터 시작한다. 이 절기는 4주일 계속되며 성 안드레의 날인 11월 30일에서 가장 가까운 주일부터 시작된다. 신학은 예수님이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과 그가 분명히 재림하신다는 사실 그 자체를 믿고 강조하는데 있다. 2)성탄절이다. 초기 기독교들은 부활절에만 깊은 관심을 두었을 뿐 성탄절에 대한 연구나 경축의 행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에서 336년경에 이교도들이 태양신의 생일로 지킨 날을 주님의 탄생일로 정하였다. 그 이유는 주님의 탄생이 늦가을이나 또는 겨울이었다는 사적 증거와 이 시기에 태양이 지평선의 가장 낮은 지점으로부터 다시 올라와 이 우주에 빛을 주는 날이라는 입장에서 당시의 동지였던 25일을 택하게 되었다. 3)주현절이 있다. 주현절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기독교의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그노시스(Gnosis) 파가 2세기 말에 소아시아와 이집트에서 활동하면서 경축일로 지켰던 때부터였다. 현대의 교회력에서 주현일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및 오순절과 맞먹는 주요 축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현일로서의 1월6일을 무시하는 교회가 더 많은데, 그것은 그날이 보통 평일이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 있어서 그날은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석해야 하는 날이다. 4)사순절이 있다. 교회력에서 가장 긴 절기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이다. 이 절기는 부활절을 위해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준비의 시기이며 교회력 중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때이다. 5)부활절이 있다. 부활절은 기독교 축일 중 가장 오래 된 절기이며, 교회력에서 다른 축일의 근원이 된다. 한 주간의 첫날에 예수님이 죽은 자 중에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매 주간의 첫날은 기독교 부활의 사실이 확인되고 이 날에 주어진 희망과 승리의 사실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6)오순절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오순절은 유대인의 오순절에서 지키고 있는 많은 의미와 비슷한 내용을 수용하는 특별한 절기이다. 유대인에게는 유월절로부터 7주 후에 칠칠절이 있었는데 이것은 율법의 선포와 이스라엘의 건국을 표시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강림을 경험하고 그 힘에 의하여 교회를 출발하는, 즉 새 이스라엘을 세운 날로써 오순절을 축하한다. 유대인들에게 오순절은 맥추절이기도 했다. 성서일과는 교회의 역사에 일찍부터 있어 온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교회의 경건 운동을 주도했던 수도원과 같은 곳에서 정한 생활의 시간표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명상하고 그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하는 삶을 위한 한 방편이었다. 현재 세계 교회가 사용 중인 성서일과는 교회력의 절기에 맞추어 구성된 것으로서 로마 가톨릭 교회나 개혁 교회나 그 내용이 거의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많은 교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오늘의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정한 것으로 대답을 한다. 그러나 성서일과의 역사는 유대교의 회당 예배부터 그 근거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20세기에 이르러 성서일과는 실질적으로 장로교의 원조인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시작되었는데, 1940년에 그들은 예식서에 교회력에 합당한 성서일과를 구약과 시편과 서신서와 복음서를 잘 배열하여 사용함으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어서 1965년에 끝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교회력에 맞는 성서일과를 제정할 것을 결의하고 1969년에 성서일과를 공포하자 세계의 교회는 성서일과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예전빛깔에 있어서는 구약 때부터 교회의 의식에는 언제나 특유한 예전 색깔을 사용하여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별히 레위기에 제시된 하나님을 위한 제단 앞에는 여러 빛깔이 명령되어 있다. 개혁 교회는 의식의 분위기를 더욱 조장시키는 예전의 색깔에 관하여 전면 부정하고 검정 하나 만으로 집례자의 사제적 위치를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1855년 미국의 찰스 베어드와 같은 개혁자들의 주장과 함께 예전이 가진 기초적인 빛깔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 12 장 교회력과 성서일과
예배란 언제나 절기에 따라 진행되고 설교는 그 절기에 적절한 말씀으로 선포되어져야 함이 당연하다. 한국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예배와 설교는 부활주일이나 성탄 주일과 같은 특수한 날을 제외하고는 목사의 의향을 따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일들은 절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성경의 기본 정신이 계승되지 못함을 반영한다. 교회력의 목적은 예수님의 생애를 단순하게 기념하는 차원에 머물게 하는데 있지 않다. 이것은 구원의 종교인 기독교가 보다 더 상세하게 체계를 갖추어 구원의 역사를 이해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응답을 드리려는 아름다운 예배의 정신을 담고 있다. 교회력을 외면한 교회의 모습을 지닌 상태에서는 세계교회와 호흡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교회력에는 크게 두 가지의 형태가 있다. 하나는 일요일을 주님의 날로 지키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일 년을 주님의 구속사에 따라 구분하여 예배드리는 사람들에게 그 시기와 사고들을 재인식시키는 방법이다. 주일에 대하여 알아보면 안식일 다음날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신 주님의 충격적 사건을 서로의 가슴에 안고 그날이 되면 함께 모여 주님의 명령대로 성찬성례전을 계속해서 거행했다. 이날은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언급한 대로“모든 교회력의 기초요, 핵심이 되는 날”임에 틀림이 없다. 둘째로, 사도들도 외면하지 않고 지켰던 유대 민족의 고유한 유월절과 같은 절기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부활 사건과 승천, 그리고 성령 강림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해마다 새롭게 다짐하고 그 깊은 뜻을 성도들에게 전하려는 데서 절기를 중심으로 한 교회력이 시작되었고, 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 내용을 보자. 1)대림절이 있다. 교회력은 대강절이라고도 불리는 대림절로부터 시작한다. 이 절기는 4주일 계속되며 성 안드레의 날인 11월 30일에서 가장 가까운 주일부터 시작된다. 신학은 예수님이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과 그가 분명히 재림하신다는 사실 그 자체를 믿고 강조하는데 있다. 2)성탄절이다. 초기 기독교들은 부활절에만 깊은 관심을 두었을 뿐 성탄절에 대한 연구나 경축의 행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에서 336년경에 이교도들이 태양신의 생일로 지킨 날을 주님의 탄생일로 정하였다. 그 이유는 주님의 탄생이 늦가을이나 또는 겨울이었다는 사적 증거와 이 시기에 태양이 지평선의 가장 낮은 지점으로부터 다시 올라와 이 우주에 빛을 주는 날이라는 입장에서 당시의 동지였던 25일을 택하게 되었다. 3)주현절이 있다. 주현절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기독교의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그노시스(Gnosis) 파가 2세기 말에 소아시아와 이집트에서 활동하면서 경축일로 지켰던 때부터였다. 현대의 교회력에서 주현일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및 오순절과 맞먹는 주요 축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현일로서의 1월6일을 무시하는 교회가 더 많은데, 그것은 그날이 보통 평일이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 있어서 그날은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석해야 하는 날이다. 4)사순절이 있다. 교회력에서 가장 긴 절기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이다. 이 절기는 부활절을 위해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준비의 시기이며 교회력 중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때이다. 5)부활절이 있다. 부활절은 기독교 축일 중 가장 오래 된 절기이며, 교회력에서 다른 축일의 근원이 된다. 한 주간의 첫날에 예수님이 죽은 자 중에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매 주간의 첫날은 기독교 부활의 사실이 확인되고 이 날에 주어진 희망과 승리의 사실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6)오순절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오순절은 유대인의 오순절에서 지키고 있는 많은 의미와 비슷한 내용을 수용하는 특별한 절기이다. 유대인에게는 유월절로부터 7주 후에 칠칠절이 있었는데 이것은 율법의 선포와 이스라엘의 건국을 표시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강림을 경험하고 그 힘에 의하여 교회를 출발하는, 즉 새 이스라엘을 세운 날로써 오순절을 축하한다. 유대인들에게 오순절은 맥추절이기도 했다. 성서일과는 교회의 역사에 일찍부터 있어 온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교회의 경건 운동을 주도했던 수도원과 같은 곳에서 정한 생활의 시간표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명상하고 그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하는 삶을 위한 한 방편이었다. 현재 세계 교회가 사용 중인 성서일과는 교회력의 절기에 맞추어 구성된 것으로서 로마 가톨릭 교회나 개혁 교회나 그 내용이 거의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많은 교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오늘의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정한 것으로 대답을 한다. 그러나 성서일과의 역사는 유대교의 회당 예배부터 그 근거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20세기에 이르러 성서일과는 실질적으로 장로교의 원조인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시작되었는데, 1940년에 그들은 예식서에 교회력에 합당한 성서일과를 구약과 시편과 서신서와 복음서를 잘 배열하여 사용함으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어서 1965년에 끝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교회력에 맞는 성서일과를 제정할 것을 결의하고 1969년에 성서일과를 공포하자 세계의 교회는 성서일과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예전빛깔에 있어서는 구약 때부터 교회의 의식에는 언제나 특유한 예전 색깔을 사용하여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별히 레위기에 제시된 하나님을 위한 제단 앞에는 여러 빛깔이 명령되어 있다. 개혁 교회는 의식의 분위기를 더욱 조장시키는 예전의 색깔에 관하여 전면 부정하고 검정 하나 만으로 집례자의 사제적 위치를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1855년 미국의 찰스 베어드와 같은 개혁자들의 주장과 함께 예전이 가진 기초적인 빛깔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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