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음악과 유태인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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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바그너의 음악과 유태인의 관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얼마전 이스라엘 국회가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을 거부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유태인의 피를 물려 받은 바렌보임이 자신의 조식 이스라엘로 부터 거부를 당한 것은 무슨 이유때문일까?
그는 자신이 상임 지휘자로 있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찾은 바렌보임이 연주회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에서는 오랫동안 바그너 음악이 금지 되었다. 이유는 바그너가 반유채주의자 였을 뿐 아니라 유태인을 핍박했던 아돌프 히틀러 역시 바그너의 열렬한 추종자였기 때문이다. 나치즘이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을때 수용소에 잡혀온 유태인들은 매일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강제 노동 현장으로 일하러 나갈때 마다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행진을 하면서 아침마다 광장을 지나 노동 현장으로 가야만 했었다.
그러니 유태인에게 다시 바그너 음악을 들으며 처절했던 과거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은 끔직한 일이었을 것이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이스라엘 연주는 애초부터 논란이 많았었다. 연주가 있기 전 부터 세계의 언론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가 바그너를 연주 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리곤 했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축제 위원회측은 바렌보임에게 바그너를 연주하지 말아 줄것을 부탁했고, 마지 못해 바렌보임은 이를 수락했다. 하나 연주 당일 앙콜곡을 부탁 받았을때 바렌보임은 청중을 향해 바그너를 연주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것이다.

'노동만이 자유롭게 하리'란 간판밑을 아침 저녁으로 노동을 하러 갈때 마다 연주하거나 틀어 주었던 음악이 바그너 였다. 객석에서는 '수용소에서 죽음을 넘나들면서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들으란 말이냐' 하며 항의가 쏟아져 나왔다. 하나 또 한편에서는 이제 시대는 바뀌었고 우리도 바그너를 들을 수 있는 때가 됐다면서 열렬한 박수로 환영하였다. 바렌보임은 바그너의 악극 '발퀴레'의 한 대목을 연주하였다.

본문내용

바그너는 1848년 드레스덴 왕립 오페라단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드레스덴 혁명집단에 가담해 혁명을 지지하다 실패하고, 도망쳐 12년간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다. 후에 색슨왕의 사면으로 태도를 바꿔 왕에게 충성을 약속하며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생전에 유태인을 배격하는 두권의 책을 집필함으로 반유태주의의 신봉자임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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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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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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