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발명가 딘 카멘의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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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고 발명가 딘 카멘의 성공 비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초기 시절

딘 카멘(Dean Kamen)은 1951년 롱아일랜드 록빌센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업보다는 전자제품이나 반도체, 트랜지스터 등을 만지고 놀길 좋아했다. 그는 조명박스를 스테레오에 연결하여 음악에 따라 조명이 번쩍거리는 장치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카멘은 뉴욕의 헤이든 천체박물관에 이 조명박스 네 대를 파는데 성공하였으며, 제작하는데 고작 320 달러를 들여 무려 8천 달러를 벌어들이는 상술을 과시했다.

최초로 이룬 성공에 용기를 얻은 후 집 근처에 있는 사업장이나 록밴드에게도 이 조명박스를 팔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매사추세츠州에 있는 Worcester Polytechnic Institute에 입학하기 전까지 집 차고에서 틈틈이 일을 해가며 연간 6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당시 하버드 의대를 다니던 그의 형 Bart는 간호사가 수시로 점검할 필요가 없는 휴대용 인슐린 펌프를 발명할 것을 제안했다. 카멘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부품을 이용하여 들고 다니기에도 편리하며 저렴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국립보건원(NIH)은 의학 전문지에서 이 제품에 대한 기사가 게재된 것을 보고 이것을 2천 달러씩 100개나 주문을 했다. 덕분에 카멘은 20세의 나이에 엄청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는 형과 친구들을 고용하여 제품 조립 일을 맡겼으며 어머니는 경리를, 아버지는 제품설명서 그림을 그리는 일을 맡겼다. 그래서 AutoSyringe Inc.라는 회사가 탄생하였다.

AutoSyringe는 갈수록 성장을 거듭했으며 몇 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제품들을 개발해냈다. 회사를 집 차고에서 롱아일랜드로, 그 다음엔 뉴햄프셔州로 옮겼으며 직원 수가 100명을 넘어서자 회사를 대규모 제조업체로 키우든지 아니면 다른 회사에 매각을 해야 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제조업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회사를 3천만 달러에 Baxter Healthcare로 매각하기로 했다. 그때 카멘의 나이는 31세였다.

이 자금으로 자신의 집을 구입하고 부모에게 저택도 선물했을 뿐 아니라 경비행기와 헬리콥터, 그리고 롱아일랜드 해안에 있는 4천평에 가까운 면적의 섬까지 사들였다. 카멘은 또 맨체스터(뉴햄프셔州 소재)에서 1만 4천평 면적의 공장을 사들여 자신의 이름을 딴 DEKA(DEan KAmen)라는 R&D회사를 세웠다. 그는 공기정화 시스템을 개발하여 대규모 공기정화 시스템 설치전문 자회사인 Teletrol을 설립하기 전에 이 제품에 대한 특허를 냈으며 Enstrom Helicopter를 매입하여 헬리콥터 관련 기술을 특허신청 내기도 했다. 그는 회사 엔지니어들과 공동으로 기존의 신장투석기에 비해 훨씬 소음이 적고 휴대하기에도 편리한 제품을 개발해냈다. 이 제품은 1993년 Baxter Healthcare에서 HomeChoice라는 브랜드로 시판되어 공전의 대히트를 쳤고 이는 DEKA의 R&D 자금으로 쓰일 수 있었다.

그 당시 Kamen의 성공비결과 사고방식은 다음 인용에서 짐작할 수 있다.

● "솔루션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라."
● "진짜 왕자를 찾아내려면 숱하게 많은 개구리와 키스해야 한다."
● "나는 스스로 발명을 해야 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발굴해서 통합시켜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디에든 흔하게 널려 있다. 발명하는 일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리스크도 크고 경비도 많이 들어간다. 발명가들은 가능하면 발명활동을 하는 대신에 시스템통합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 "이노베이션은 그 원천을 은닉하는 예술행위다."
● "역사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 그러나 역사적 진보는 그 역사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당시에 카멘은 FIRST라는 이름의 로봇 제작 경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는 회사의 엔지니어들과 고등학생들을 한 팀으로 구성해서 새로운 로봇을 만들어내는 행사였으며 학생들이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행사 개최 첫 해에 이 행사에는 42개 팀이 참가했으며 2002년에는 2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17개 지역예선을 거쳐 FIRST 전국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어야 할 정도로 성장하게 됐다.

하루는 카멘이 집 근처를 지나다가 휠체어를 보도 위로 끌어올리려고 무진 애를 쓰는 노인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는 "인류는 오늘날 달나라에 사람을 보내고 해저탐사까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린 휠체어를 보도 위로 끌어올리지도 못하는가?" 라는 생각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지난 100년간 출원됐던 휠체어에 관련된 특허를 모두 검토하고 각 특허의 기발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본문내용

손해를 보고 있었다. 이렇듯 카멘 자신은 회사 운영에 있어 걸림돌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국가기술메달(National Medal of Technology)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 상의 시상식이 워싱턴에서 열리며 빌 클린턴 대통령과 수상자들이 사진을 찍는다는 점이 회사로서는 홍보하기 좋은 기회였다.
카멘은 평소의 대담함으로 그 다음날 백악관 경호원들에게 자신이 장애인이라 걸을 수 없어서 새로운 종류의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 '60 Minutes' 프로그램 프로듀서까지 대동하여 촬영을 했다.
7. 매스컴의 각광을 받다.
2000년 12월에 John Doerr는 카멘과 Ginger의 경영팀에게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참석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또 다른 회사 이사진들과 Steve Jobs, Jeff Bezos도 이 자리에 초청했다. 이 곳에서 Tim Adams(Ginger 프로젝트 CEO)와 Mike Ferry(Ginger의 마케팅 이사), Brian Toohey(Ginger의 정부규제 책임자)에게 기술적 문제와 홍보계획에 대해 어려운 질문들을 던졌다. 회의가 끝난 후 투자자들은 책임자로서 Adams와 Ferry가 적합하지 않으며 당장 해고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카멘은 이들을 해고시키는 데 망설였다.
그럼에도 회사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매사추세츠州 베드포드에 2,100평 면적의 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이 확정됐다. 이곳에 150명의 조립공들을 고용하여 하루 2천대의 Ginger를 생산해낸다는 계획이었다. 또 공급업체들과의 협상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카멘은 Delphi(자이로 부품 공급업체)와 전기 서보모터(servomotor)를 생산하는 Pacific Scientific의 모회사인 Danaher Motion과도 유리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이 회사가 제조하는 모터는 마모부품이 전혀 없으며 3마력의 출력을 갖고 있었다.)
수많은 장애물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Ginger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뉴스가 언론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주가 지나지 않아 대대적인 언론보도가 시작됐다. 세상의 모든 언론기관이 한 순간에 Ginger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Ginger에 대한 추측도 무성했다. 모든 언론매체에서 마치 꿈의 기계가 발명된 것처럼 떠들어대자 사람들의 기대도 높아져 가기만 했다.
그렇게 과도한 매스컴의 관심을 받는 일은 실제 제품이 출시됐을 때 도저히 사람들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 주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02년 11월 중순, 카멘은 Good Morning America 프로에 Jeff Bezos와 함께 출연했다. 이 두 사람은 여기서 Ginger의 소비자 버전인 Segway Human Transporter가 Amazon을 통해서 2003년 3월~7월 사이에 시판될 것이며 소비자 가격은 $,4950 달러로 책정됐다고 발표했다.
세그웨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최악에서 최고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침이 마르도록 이 제품을 칭찬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제품은 부자들을 위한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CNN은 Ginger를 2001년 최고의 기술제품으로 선정했다. 또 U.S. Postal Service는 우편배달에 세그웨이를 시험운영하기도 했다. 2002년 가을 들어 32개 州에서는 Ginger에 대한 특별법을 통과시키거나 보도(步道)에서 이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예외조항으로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나머지 州들도 2003년 말까지 유사한 입법을 통과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내에 Ginger가 혁신적인 제품으로 받아들여질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더구나 소비자들이 이 제품을 사용하는 것에 쉽게 익숙해질 것인지, 그리고 이 제품이 사람들의 이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인지 또한 불투명하다. 벤처캐피탈 투자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Ginger의 초기 매출실적은 실망스러웠다. John Doerr는 DEKA 회사가 역사상 그 어떤 회사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10억 달러 매출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 있게 예측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관심이 그렇게 높지 않은 지금 당장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어떤 혁신적 기술도 주류 소비시장으로 진출하는데 몇 년씩 걸리기 마련이다. Ginger가 그 같은 시간의 테스트를 어떻게 견딜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런 한편 카멘은 지금보다 보도가 더 넓어지고 곳곳에 임대소와 충전소가 많아지게 될 경우 Ginger가 급속한 성장을 거둘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너무 이른 언론의 관심과 이에 따른 Ginger에 대한 과도한 기대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회사에 해만 끼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Ginger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줬다. 이 제품이 소비자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도구로 쓰일지 아니면 단순히 값비싼 장난감에 그칠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소비자들이 세그웨이를 걷기와 운전의 중간형태 쯤으로 간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지만 향후 10년 내에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카멘의 기술이 세상을 뒤바꿀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발명가에게 그러한 평가는 최상의 찬사이며 그가 발명한 다른 기술 또한 차츰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완성기일이 계속 늦어져온 iBot은 뒤늦게나마 정부규제기관의 승인을 받고 앞으로 몇 년 내에 시판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DEKA의 Stirling 엔진 프로젝트 또한 순조로운 발전을 거듭하면서 최근 Power Concepts라는 독립회사로 분사된 바 있다. FIRST도 매년 건실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DEKA는 이밖에도 상당한 시장성을 갖는 다른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세그웨이가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로 끝나버린다 해도 회사는 다른 기술제품을 통해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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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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