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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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폭력에도 문화적인 배경이 있다. 폭력의 문화적인 배경에는 집단에 의해 습득된 행태가 그 집단은 물론이고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하나의 관습이나 전통으로 고착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한 현상을 문화적 종분화 (cultural speciation)라고 한다. 다윈은 선사시대의 폭력이나 전쟁도 곧 집단 연대의식에서 출발된 것으로 보았는데, 집단의 존립을 위한 내부 폭력은 물론이고 집단간 폭력, 나아가 부족간 전쟁으로 발전했다고 본 것이다. 오늘날까지 폭력성이 집단의 집합적 문화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관습과 전통 속의 폭력은 정당성을 부여 받고 있다. 지금은 금지된 인도의 사티나 근동의 명예살인은 관습적인 폭력이다. 이외에도 인종주의를 내세운 폭력과 살인, 파쇼 정권하의 고문과 살인, 더 나아가 민족주의를 앞세운 전쟁도 폭력을 정당화 한 것의 좋은 예며, 중세의 경우 종교적 폭력도 무시할 수 없는 경우다. 이러한 폭력의 배후에 대하여 문화적인 맥락을 살펴 본 이가 있다.

Edward T. Hall은 동양을 ‘고맥락’(high context) 문화권으로 서양을 ‘저맥락’(low context) 문화권으로 구분한 바 있다. 서양처럼 ‘저맥락’ 문화권에서는 사람을 맥락에서 떼내어 보기 때문에 개인은 집단에 대하여 지극히 독립적이라는 것인데, 폭력에 앞서 이를 사전에 상쇄할 토론이나 표현이 어느 정도 인정 받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서양이 비폭력 중심의 사회라고 말할 순 없다.)이와는 반대로 우리처럼 고맥락 문화권의 경우,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집단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된다. 따라서 개인의 모든 문제에 앞서 집단과의 조화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되고, 이 조화 속엔 계통과 질서라는 것이 엄격하게 존재한다는 것도 체득하게 된다. 동양의 개인이라는 것은 곧 개체가 속한 전체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된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저맥락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모순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유연하게 피해가도록 학습 된다는 것이다. 즉 개인의 높은 도덕성보다 집단적 사고에 휘둘리거나 이성적인 사고보다 감정적인 사고로 대체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제인 구달이 『희망의 이유』(2000.11)에서 이러한 문화적 종분화와 관련하여 침팬지 사회에 나타난 무리간 또는 무리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주목하고 이를 인간의 폭력과 연관하여 설명한 부분도 있다. ‘문화 종분화’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쉽게 분노한다. 문제는 폭력을 조장하는 감정적 재료와 왜곡된 정보의 제공은 문화라는 교묘한 배경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폭력성향의 문화를 제공하는 주체와 제공처는 경직된 사고와 단선적인 감정을 부추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집단이 집합적인 행위를 선호하게 될 때,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나아가 문화적으로 선별된 집단이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표본으로 제시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선별된 집단 속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행태에 동조하지 않는 타인들을 소외시킨다. 소외란 곧 전쟁, 학살, 폭력, 억압, 분쟁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맥락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의 경우 고립을 가장 무서워 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끊임 없이 단체를 만들고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힘을 결집시키려는 것을 볼 수 있다. 결집이나 결속력은 곧 공격성을 내재한 자기 방어적 기제의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강하다. 혹자는 근대적인 정치 행태의 표본이라고 말을 하는 조선조의 당쟁이나 사화의 중심엔 정치인이자 문사인 사람들이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당시의 문학과 철학의 성향도 정치적 성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알게 모르게 고맥락 문화의 성격인 폭력과 억압 그리고 분쟁에 익숙해졌던 까닭이다. 더군다나 우리 근현대사는 거의 전쟁과 폭력에 노출된 이데올로기 문화를 고착시켰고 문단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일제 식민지하 친일 문인들이 문단의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정치적인 배려였으며, 그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 정치적 폭력을 정당화하고 찬양하는 문화 생성에 문인들이 기여했다. 이후 분단 과정에서 많은 문인들이 월북했지만 그들도 역시 정치적 희생을 면치 못했다. 특히 문학을 정치적 투쟁도구로 여겼던 문인들의 희생이 심했던 탓은 문학과 투쟁 사이에는 폭력이라는 코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문화적 백화를 이야기 하는 시대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문화적인 폭력의 시대도 없을 것이다. 문학 속에 숨겨진 폭력의 코드는 심각하다. 현 문학의 코드는 이탈이 아닌 일탈, 열정이 아닌 쾌락에 맞춰져 있다. 일탈과 쾌락은 모더니티한 경향을 대변하는 집단형 코드다. 저 맥락 문화에서의 문화적 코드는 일종의 표현 욕구요 유니크한 발상의 전환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다수를 거스러지 않는 소수의 문화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고맥락 문화권에서의 일탈과 쾌락은 소수자의 지적이고 감각적인 폭력성을 노출 시키는데 유용한 코드다. 이를 변환시키고 확장 시키는 문학의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걸러지지 않는 생경한 화두와 본류가 아닌 파생된 유파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끌고 오는 지적 폭력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부추기는 쾌락적 동기들을 보게 된다. 오늘날 폭력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다. 문화 속에 숨어 있는 폭력성을 생각할 시기다. 쾌락을 부추기는 문화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정치권과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도록 이윤을 보장해주는 자본가들, 그리고 이를 문화적 코드로 재생산하는 언론과 출판사들 그리고 작가들이 있다.

정치와 자본이 하나의 패거리를 형성한 것이 산업 혁명 후 두드러진 경향이다. 자본이 정치권을 움직여 전쟁을 부추기는 미국의 경우는 최악의 경우일 것이다. 폭력이나 전쟁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은 문화이며 그 문화의 배후엔 자본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작가들이 자본의 흐름에 더 민감하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이다. 자본은 문학을 권력화 시켜주고 그 권력의 수하에 작가들이 세들어 살기 위해 이합집산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반성해야 한다. 그들은 문화의 전도사를 자처하지만 자본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만큼 자신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폭력성을 인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상상력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겠는가? 작품을 상품화하는 이면엔 작가와 작품이 없다. 오직 발행 부수와 베스트셀러 만들기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과 상관 없이 끊임없이 서로 불화하는 문학단체와 작가들을 볼 때마다 왜 이 세상과는 불화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오히려 이 세상과 가장 능동적으로 협화음을 내고 있는 사실은 문학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얼마전 모 시인의 시집 출판식에서 출판사 대표가 있는 자리에서 민망한 소리를 했다. 이 시집이 대박나기를 원치 않는다.

본문내용

문화권에 속한 작가들이 득세하고 있을까 물을 필요까진 없다. 아직도 문학잡지나 신문, 방송 매체의 기록물에 등단 잡지명과 함께 문단의 이력이 빽빽하게 적혀야 대접받는다. 많은 문인들이 대학으로 가기 위해 힘을 쓰고, 좋은 잡지에 글을 내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이젠 옛날처럼 그 사람의 학력이나 이력 없이도 글을 쓰는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정신적으로 존경을 받았던 시대는 갔다. 작가의 약력에 학위와 등단지 그리고 소속 단체의 위력을 갖춰야 대접을 받는다. 높은 학력과 좋은 잡지, 힘이 있는 인맥이 아직도 문단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직 문화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도를 얻으려면 먼저 가진 것을 버리고 있는 곳을 떠나야 하듯이 글을 얻으려면 먼저 백년의 고독과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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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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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9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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