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설교자 요약 및 비평
본 자료는 7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해당 자료는 7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7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설교와 설교자 요약 및 비평

본문내용


면 맞아야 한다. 그 이상은 답이 없다.
일상의 문화 생활에도 금기된 장소와 방법들을 잘 고려해야 한다. 성도들과
친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달고 함부로 행동하면 구설수에 오른다.행동의
반경이 좁은 편이다. 설교자는 일반 평신도가 움직이는 곳마다 모두 수용할
수는 없다. 가능한 것이라도 절제가 필요하다.
셋째, 때를 알아야 한다.
이 말은 시기에 맞는 언어로 말씀을 대언하기 위해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
다는 것이다 . 그런데 세상 지식은 별 무관하다는 생각으로 교역자가 책 읽
기를 게을리 하면 청중의 시대 언어에 부합되지 못한다.
따라서 정신 문화에 따른 시대 읽기를 위해 공부해야 하고 지구촌의 현실적
시사에 밝아야 한다. 그것은 선지자(히브리어, 나비, aybin; )의 해석처럼
미리 보는 자로서의 역할을 위해 그런 지식을 함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역사 속에서 특별히 크게 보도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청중으로 하여
금 하나님의 구속사적 세계관으로 일어나는 뜻을 알고 전해야 한다. 세계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설교자는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하고 그들의 미래와 바른 판단을 해줄 의무가 있다.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 흐름을 알지 못하고 산다면 감각적으로 교
통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진리를 책임 있게 전달하는 자로서 또한 유식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모른다는 것은 이원론자나 신비주의자가 아니고
는 성도들에게 유익한 면이 될 수 없다.
대개 신자들은 목회자를 무엇이든 다 아는 것으로 착각을 가지고 있으며 모
든 문제의 해결사로 알고 있다는 것이 크다란 부담이다. 그러나 설교를 맡
은 자로서는 어찌하든지 시대를 읽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므로 쉴 틈이
없다. 물론 시사에 밝다고 설교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시사만 늘어놓는 설
교는 설교가 아니다. 따라서 유익한 시사를 필요로 한다. 다만 시기를 알고
말하는 선지자적 노련미가 있어야 하는 것뿐이다. 복음의 진수는 시사에 있
지 않기 때문에 듣는 이로 하여금 시사가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기 위한 소
재이면 좋을 것이다.
2.3. 설교자의 가정 생활
목회자로서 설교를 담당한다는 것은 생활의 모습과 연관하여 성도들은 설교
를 검정하게 된다. 가령 가정이 온전치 못할 시에 어떠한 설교를 해도 목회
자의 가정에 온전치 못한 점을 알고는 은혜를 입을 수가 없다. 또한 자녀와
관계를 살피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설교자(목회자)는 상당히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좋은 가정이어야 하겠지만 설교를 맡은 자로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인식하려는 성도들 때문에 온전한 가정이 못되면 설교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성도들이 설교를 단순한 교훈으로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
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하고 오직 목사의 설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
려 교회를 나간다고 하거나 그래야 옳다고 주장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절대
그렇지를 않다. 반드시 목사의 가정을 살피게 된다.
가정 생활이 평신도보다 의롭고 은혜롭지 못하다면 아무리 옥구슬같은 이야
기를 한다고 해도 신뢰도가 없어서 결국은 그 전도(傳道)의 내용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부인 할 수 없는 일이다.
제자들의 경우에도 베드로가 비록 집을 나와 스승과 함께 동거를 하였으나
장모가 앓고 있을 때 주님을 모시고 치유를 하게 한 일을 보면 가정적인 사
람이었다. 자기 가족을 돌보지 못한 자가 타인을 가르칠 수야 없지 않는가?
(눅4:38)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당연히 자식도 있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그렇
지 않으면 특별한 점이 오히려 주목이 되어 변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목회
자에겐 가정의 화목한 모습이 대단히 중요한 면이다.이혼이라든가 사별하여
너무 오래 홀로 사는 것은 참으로 시험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가정
형태를 잘 이끌고 나가는 것도 어려운 숙제인데 그런 특별한 환경은 더더욱
설교자로 혹은 교훈자로 나서기에 힘겹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의 내용만큼이나 가정 생활에 은혜가 충만해야 한다.
성도의 기본 진리를 생활 중심으로 반듯하게 살아가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
의 사랑이 넘치는 것이 생활 가운데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생활이 곧
설교가 된다. 설교와 생활의 모습이 너무 다르면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들어
도 성도가 힘을 얻을 수 없다.
결론)
설교를 잘 하는 것과 좋은 설교자는 비례한다. 설교를 잘하는데 설교자가
나쁘다는 것은 감정이나 이론에 치우쳐 설교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다. 설교하는 이가 어떤 인격자인지 설교를 처음 들으면서 파악한다는 것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속기도 하고 이단을 따라서 방
황하게도 된다.
설교자에 대해 신상이나 설교를 위한 신학과 개인 신앙의 깊이를 알지 못한
상황이더라도 신령한 영감으로 설교를 자세히 듣게 되면 처음부터 성경 사
상에서 굴절된 이해나 그 강조점 등으로 대략 건전함과 부적절한 신학 사상
자로 그 설교자의 영적 바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설교와 그 설교자의 상관에 대한 예민한 이해는 건전한 진리를 수호하고 영
혼을 위한 진정한 목회자로서 서기 위해 필수적인 과목이다.설교를 잘 해도
설교자일 뿐 목회자로서는 부당할 수 있음을 유의할 것이다.
목사로 임직 되고 교역의 선상에 있어도 설교가 매우 부진한 사람도 있다.
본문에서 이탈하거나 전혀 상관이 없는 소리로 한 시간을 지탱해 나가는 자
나, 전혀 경험도 없는 이론적인 소리로 일관한 원리 강해자, 세뇌시키는 주
입식 설교자, 말을 잘해서 만담같이 이야기로 끝나는 사람,학자풍으로 혹은
교훈자로 위엄과 인격으로 내미는 자, 고함 소리로 아멘, 아멘 하면서 단순
한 이방 종교식 중언부언으로 신도를 기만하는 자 등은 모두 설교도 설교자
로도 가치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 위에서 성령의 조명으로 영혼의 소리를 불어
내는 참다운 설교를 해내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설교를
위해 모든 문화에 성실할 수 밖에 없는 부담감으로 일관되게 수고하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 가격3,000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090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