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조선후기의 서민문화 - 조선시대 서민문화, 발달배경, 조선후기의 문학, 예술, 조선후기의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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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A+] 조선후기의 서민문화 - 조선시대 서민문화, 발달배경, 조선후기의 문학, 예술, 조선후기의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조선 후기 서민 문화의 발달 배경

2. 조선 후기 문학과 예술의 경향
 2-1) 조선 후기의 문학 
 2-2) 조선 후기의 예술
 2-3) 결 론 : 조선 후기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은 어떠하였는가?



Ⅲ. 결 론

본문내용

홍도였다. 그는 서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밭갈이, 추수, 집짓기, 대장간 등 주로 농촌의 생활상을 그리면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소박하고 익살맞게 묘사하였다.
풍속화에서 김홍도와 함께 쌍벽을 이룬 신윤복은 주로 도회지 양반의 풍류 생활과 부녀자의 풍습, 그리고 남녀 사이의 애정을 묘사하였다. 특히, 남녀간의 애정 표현 장면을 즐겨 그렸으며 선정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그림들은 관념적이고 독선적인 유교적 회화관에 대항하여 현실적 인간 생활을 주제로 삼는 서민 예술의 형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기법에 있어서는 김홍도가 간결하고 소탈하게 그렸는 데 비하여, 신윤복은 섬세하고도 세련된 필치를 구사하였다.
이와 아울러 조선 후기에는 민화가 발달하였다. 주로 해, 달, 나무, 꽃, 동물, 물고기 등이 그림의 소재였는데, 이들 그림도 민중의 기복적 염원과 미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다만, 민화는 예술적 감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생활 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나 발상 등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담겨져 있다.
서예에서는 김정희가 고금의 필법을 깊이 연구하여 자기 개성에 맞게 발전시킨 추사체로 서예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고, 전기, 오경석 등이 그의 필법을 이었다.
이 밖에 도자기 공예에서는 백자가 계속 유행하였는데, 조선 후기에는 청화 백자가 더욱 발달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청화백자 제작에 필요한 청색 안료가 값비싼 수입품 이서 귀중하게 취급되었고 민간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면서 청색 안료가 국내 생산이 가능하게 되자 대량으로 제작되어 보편화되었다. 청화 백자는 흰 바탕에 푸른 색깔로 그림을 그려 넣은 것으로, 청아한 한국적인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서민들은 옹기를 즐겨 사용하였다.
서민 오락으로 잡가는 서민적 해학과 사회 풍자성이 풍부하였으며 타령, 육자배기, 사랑가, 수심가 등을 말한다. 농악은 농촌에서 두레 중심으로 즐겼으며 각지방 고유의 오락으로 탈춤, 꼭두각시놀이, 오광대 놀이 등이 있었다. 특히, 탈춤은 양반 사회를 풍자했다. 서민들 못지 않게 부녀자들 놀이로는 그네뛰기, 널뛰기, 강강술래 등이 있었다.
2-3) 결 론 : 조선 후기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은 어떠하였는가?
조선 후기 서민층의 경제력 향상과 의식 성장으로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여 종래 양반 중심의 문예 활동에 대신하여 일반 서민들이 창작하고 향유하는 문학과 예술이 대두한 것이다. 역관이나 서리 등 중인층의 문예 활동이 활발하였고, 상민이나 광대에 의해 판소리가 보급되기도 하였다. 내용에 있어서도 전기와는 달리 인간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신랄하게 고발하였다. 그 주인공들도 영웅적인 존재에서 이름 없는 서민적인 인물로 전환되어 갔고, 그 배경 또한 비현실적인 세계보다는 현실적인 세계로 옮겨갔다. 문학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글로 쓰여진 작품이 많이 나타나고, 그 형식도 소설이나 사설시조가 주류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예술의 경우는 더욱 뚜렷한 자아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자연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사실적으로 그리는 등 화풍의 변화가 나타났다. 이른바 진경 산수화 출현을 말한다.
Ⅲ. 결 론
결론적으로 조선 전기의 문화는 유교적 양반 중심의 문화였으며 조선 후기는 실용적 서민 중심의 문화이다. 조선 후기의 서민 문화 발달은 조선 후기의 사회 변동과 관련지어 서민들의 지위와 서민 의식의 향상을 토대로 한 것임을 강조하며 서민 문화 발달은 폭넓은 민족 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것임을 깨닫고 창의적인 문화의 계발에 노력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 후기에 양반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조선 후기의 사회 신분제 동요, 개항과 서구 자본주의 침투, 갑오 농민 전쟁의 신분제 폐지 운동과 갑오 개혁의 신분제 폐지 법령, 조선 왕조의 몰락, 일제의 식민지 정책, 해방, 농지 개혁과 한국 전쟁 같은 역사적 계기들을 통하여 급격히 서서히 양반 문화는 해체되어 갔던 것이다. 오히려 조선 후기에는 소수의 지배층 문화였던 양반 문화가 신분제 동요로 인한 양반의 수적 증가로 인해 조선 후기에는 사회 전체의 지배적인 문화로 확산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서민 문화 발달은 서민들의 의식이 향상되어 사회적으로 부각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 참 고 문 헌 >
강만길 지음, 한국 근대사, ‘창작과 비평사’
지승종.김준형.허권수.정진상.박재홍 공저, 근대 사회 변동과 양반, ‘아세아 문화사’
  • 가격1,2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2.12.09
  • 저작시기201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24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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