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학공업 육성을 기본으로 한 1970년대 한국경제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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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화학공업 육성을 기본으로 한 1970년대 한국경제의 발전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머릿말
2.중화학공업 육성의 배경
3.중화학공업 육성계획
4.산업구조의 변화
5.70년대 무역구조
6.투자환경
7.노동시장
8.재벌육성
9.Oil shok
10. 중화학공업에 대한 평가
11.맺음말
12.참고서적

본문내용

37-45% 가량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75년 일본은 63%, ), 한편 소재 및 생산재 부문의 낙후는 중화학공업화에 필요한 투자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게 함으로서 ‘투자가 투자를 부르는 자율적 성장 매카니즘’을 확립되지 못하게 하였으며, 또한 가공원료 중심의 원재료수입으로 인한 수입구조의 경직화를 초래하였다.
또한 동기간내 국내 후방 연관효과도 경공업보다 낮은 수준을 보였다. (1975-83 평균 45, 경경공업은 62%) 이는 중화학공업이 여타 산업과의 국내분업관련을 긴밀히 유지하지 못한체진행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③고비용 저효율
중화학공업의 진전은 오히려 산업의 대외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투자의 회임기기간이 긴 중화학공업에의 집중적인 투자로인하여 투자의 효율이 저하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보다 중요한 원인들은 급속한 중공업건성로 공급능력이 수요를 상회함과 아울러 기술축적이 낮아 가동률이 낮은점, 업종의 선택에도 에너지 다소비형 중화학공업에 집중됨으로써 생산이 저하된점, 회임기간이 장기인 중화학공업의 과잉 중복투자로 투자재원의 공급에 에로를 야기시킴으로써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초래한점 또 이로인한 노동생산성을 상회하는 임금상승의 문제를 낳았다. 다시 이러한 요인들은 기업의 자금부족률을 증가시켜 외부자금에의 의존률을 1974년 75%에서 1980년 83,5%로 높이고, 그에따른 금융비용을 증가시켜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는 또하나의 원인이 되게하였다.
④국민경제의 대외종속성 심화
이는 무엇보다도 중화학공업화가 외자에 의존되어 추진된점에서 기인한다. 그와 더불어 중화학공업화가 원료 및 생산재의 수입에 기초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국민경제의 종속성은 완전히 구조화 되었다.
이런 외국자본에 의존적인 경제구조는 오늘날 외환위기에 국가가 쉽게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⑤독점재벌의 비대화와 정경유착
재벌기업은 중화학공업화의 초기단계에서는 참여가 소극적이었으나, 특혜적 편중지원에 편승하기위해중화학공업에 뛰어들었고 이에 힘입어 더욱 비대화되었다. 재벌위주의 중화학공업화는 당연히 그들에게 막대한 특혜지원을 가져다 주었고, 이에따라 1973-78년간 가장규모가큰 10대 재벌의 성장이 제일 빨랐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현대 1974년 9개 기업에서 1 978년 31개로 늘어남. 삼성은 24개에서 33개, 대우는 10개에서 35개, 럭키는 17개에서 43개) 이러한 독점재벌의 비대화는 국민경제를 담보하고 중소기업과의 격차확대와 상호보완관계의 결여로 인한 이중구조의 심화를 야기한다. 또한 이것이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 것은 자명하다.
정부, 기업, 은행이 밀착되어 정부가 차관대출의 특혜를 특정기업에게주고, 기업은 정치자금을 주는 형태로 정경유착이 심화되었고 그결과 정책과정에서 정부의 금융기관개입으로 금융기관의 효율성과 국제경쟁력약화로 은행의 부실을 낳아 오늘날 금융구조의 취약성을 야기하였다.
⑥ 중화학투자가 지역적으로 편중됨.
포항(철강), 온산(비철금속), 여천(화학), 울산(조선), 거제(조선), 창원(기계), 구미(전자) 등 각 공단을 중심으로한 지역개발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나 지역간 발전의 불균형 문제와 아울러 지역감정의 심화를 야기하였다.
11. 마치며
1970년대는 비록 현재의 대기업중심의 경제구조와 관치금융과 그로 인한 금융권의 체질약화, 외자의존형, 대미, 대일 의존형 경제구조 그리고 소득불균형, 지역불균형 등의 무시할 수 없는 문제를 야기한 시기임이 틀림없으나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선진국형에 좀더 가깝게 수정함으로써 오늘날의 경제규모를 갖출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70년대 정부 주도하의 후진성의 잇점을 충분히 활용한 경제개발 정책은 말레시아 등 신흥 동남아 국가들의 발전전략으로 적극 수용되는 등 개발 도상국의 발전 모델로서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이는 정부당국의 다소나마의 수혈을 감소한 강단있는 조치의 성과라 하겠다. 물론 오늘날의 경제위기가 당시의 관치금융의 관행으로부터 파생된 금융권의 체질약화와 기업의 방만하고 부실한 자산관리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으나, 당시에 제도화된 이런 문제점들은 어찌보면 압축성장의 어쩔 수 없는 부수적인 산물이라 보며 이는 박정희 정부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고 그 이후 정권에서 마땅히 수정했어야 함이 당연한 것이었다고 본다.
박정희의 경제정책을 종합적인 관점에서 보면, 과정상의 문제로 오늘날 지역불균형, 정경유착, 대기업중심의 경제구조 등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문제점들은 오늘 날 사회전반에 걸쳐 사회경제적으로 문제시되지만 이는 박정희 정권 이후로 해결되는 노력이 있어야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중화학공업정책을 포함한 경제정책은 크게 성공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예전보다 더욱 경제력이 국가력과 연관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러한 박정희의 경제정책은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어느 정책들보다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따라서 우리 조는 , 중화학공업정책의 성과 중 “고도성장의 기반을 조기에 달성”했다는 점과 “80년대초의 경제미래상을 조기에 달성” 했다는 점을 그 어떤 점보다 높은 성과로 평가한다.
시기에 따른 첨단산업의 패턴을 살펴보면 경공업 → 중화학공업 → IT산업 → 우주산업 등 첨단산업 으로 진행되어감을 알 수 있는데, 늦게나마 이러한 시대적흐름에 동참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하버드 대 전직 총장 로렌스 서머스의 한 마디를 떠올리게 한다.
"농업국가였던 한국이 불과 한세대 후에 고도의 공업국가로 변모한 것이 놀라운 기적이다"
12. 참고서적
한국경제론 - 박현채외 - 까치
세계속의 한국경제 - 사공일 - 김영사
무역금융의 이해 - 김시경 - em문고
인플레이션이야기 - 김문영 - em문고
한국의 조세정책 - 이진순 - em문고
한국경제의 현단계 - 김명중 - 사계절
한국경제론 - 박형윤
한국경제학서설 - 엄영석
한국.동아시아경제론 - 안충영 - 박영사
한국경제의 구조변화 - 김상온 외공저 - 울산대학교
한국의 국가경쟁력 - 삼성경제연구소
세계로 비약하는 한국산업 - 김영록 - 범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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