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의 원인과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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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외환위기의 원인과 실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발생원인
1. 세계화
2. 세계화로 인한 문제 야기
3. 금리 상승으로 돈 줄 말라가는 과정

본문내용

하므로 부도가 급증하게 된다. 이 같은 기업어음에 의한 자금조달이 단기일뿐만 아니라 여신회수가 즉각적이라는 점이 97년 초반부터 발생한 대기업군의 연쇄적 도산에 중요한 설명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의 연쇄부도는 표5-34에서 보듯이 대기업에 대출을 해준 은행과 제2금융권, 특히 종금사들을 부실화시켰다. 이러한 사실이 국제금융시장에 전해지자 은행을 비롯한 종금사들이 점차 대외신인도를 상실하게 되었다.
3.금리 상승으로 돈 줄 말라가는 과정
97년대 초 50bp 수준이던 스프레드가 ---- 한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 대기업들의 연쇄도산과 함께 점진적 상승
1.30 이석채 경제수석 “망할 은행은 망해도 좋다. 이제는 시장경제원리대로 간다.”발언
한보사태로 97.1.31 미국 신용평가회사 S&P 한보부도로 제일은행을 요주의 대상Watch List으로 지정. 97년 1월 23일 한보그룹의 부도사태가 발생하자 같은 해 2월 20일 Moody's는 한보그룹에 대출금이 많은 조흥은행, 외환은행, 제일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보는 바와 같이 97년 7월 15일 기아사태가 발생하면서 Moody's와 S&P 양대 신용평가기관이 한국산업은행, 제일 및 신한은행 등에 대해 각각의 전망을 Negative로 부여할 때까지만 해도 스프레드는 비록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었지만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기아 사태가 발생한 7월 31일 Moody’s는 정부의 장단기예금 및 단기채권 등급을 경계대상 목록(watch list)에 편입. S&P도 8월6일 기아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을 신용감시 대상으로 분류하는 한편 국가신용도 stable에서 negative로 평가 조정하였다.) 4일과 6일에는 무디스와 S&P가 잇따라 국가신용등급을 Credit watch요주의로 분류 국제금융시장에 경보발령을 냈다. 한국에 있어서는 1997년 10월 22일 기아의 공기업화 방침이 발표되자 10월 24일 S&P가 기아의 공기업화 방침을 이유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A+로 1등급 하향조정함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국가전망에서 향후 하향등급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Negative” 전망을 부여하였는데 이는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을 결정적으로 촉발시킨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림 3-8에서 보는 것처럼 97년 10월 24일 국가신용등급을 1단계 하락시키게 되자 산업은행 채권과 미국 재무부채권간의 수익률 스프레드는 수직상승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97년 10월 24일 S&P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이 10월 23일 홍콩 증시폭락과 함께 한국 외환위기 발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97년 11월 및 12월의 스프레드 추이는 추가적인 국가신용등급 하락 시 마다 계단처럼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고 난 뒤 Moody‘s와 S&P는 한국산업은행의 신용등급을 97년 11월 28일과 11월 26일 각각 A3와 A-로 2등급 하향 조정하였다. IMF와 한국정부의 구제 금융 조건 협상이 순조롭지 않자 97년 12월 10일과 11일 Moody's는 A3에서 Baa2로, S&P는 A-에서 BBB-로 3단계 하락 조정 하였는데 그때마다 스프레드는 급속 상승했다.
외환위기 발생과정을 977년에만 국한시켜 보게 되면 단기적으로 한국의 국제신용도 하락에 따른 외채연장 중단에 따라 발생. 이러한 한국의 국제신용도 하락과정은 3-8 산업은행 채권수익률과 미국 정부 채권수익률의 차이인 스프레드를 대리변수로 하여 그 경과를 볼 수 있다.
97.10.22 기아 공기업 방침 발표, 23일 홍콩 주가폭락 24일 s&p의 국가신용도 하락이 계기가 되어 급격히 상승, 그 이후로의 스프레드는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한국 신용평가 하락에 따라서 계단처럼 상승하여 환율상승과 함께 본격적인 외환위기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환율정책의 실패
외환위기를 초래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환율운용정책상의 오류는 경사수지가 적자를 보이기 시작한 94년부터 당국이 지나치게 환율을 경직적으로 운용하여 고평가정책을 지속하여 왔다는 것이다. 94년부터 96년까지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동안 정책당국은 환율에 대한 절상기조를 유지하였다. 원화의 고평가를 자본유입으로 인한 것만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며,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정책당국의 정책의지가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정책당국이 94년부터 96년까지 원화 고평가정책을 장기간 유지한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국민소득 1만달러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인지 아니면 수출경쟁력을 환율절하에만 의존하는 국내기업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시도였는지 불분명. 이러한 원화의 고평가 정책은 거시경제 전체의 불균형을 심화시켜 ‘거시경제 전체에 대한 긴장도’를 높인 요인이었음은 이미 논의한 바와 같다. 한편 97년 9월 이후의 환율운용은 외환위기가 이미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이며 이 기간 중의 외환정책이 기존 외환보유고를 소진시켰다는 점에서 분석한다. 97년 9월 이후 정책당국의 환율운용을 보면 외환위기가 가시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7년 11월까지 환율은 +-2.25% 일일 변동 폭 내에서 움직이는 경직된 환율제도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다가 97년 11월 20일 환율 변동 폭을 10%로 확대하고 97년 12월 16일 IMF와의 합의에 따라 환율 변동 폭 10%제한을 철폐하여 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된다. 당시 환율운용을 보면 저액당국은 외환시장이 이미 알고 있는 수준에서 마지노선을 정하고 마지노선에 대한 방어라는 관점에서 무리하게 환율정책을 고수하여 외환보유고를 소진하게 되었다. 외환시장에서 이미 알고 있는 환율절하 저지 마지노선의 가시적이고 점진적인 후퇴는 구내외환시장에 원화절하 심리를 형성하게 하여 외환에 대한 가수요투기 등을 초래하여 오환보유고를 소진시키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표 5-45에서 97년의 한은 외환시장 개입을 보면 환율 방어를 위해 97년 9월과 10월 11월 3개월 사이에 현물, 선물 합계 156.2억 달러를 소진했다.

키워드

외환위기,   환율,   IMF,   달러화,   엔화,   유로화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3.02.04
  • 저작시기201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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