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토진종과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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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 정토진종과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의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일본 정토종의 역사
 1) 호넨(法然, 1133~1212)의 사상
 2) 신란(親鸞, 1173~1262)의 사상
Ⅲ.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의식에 나타난 정토진종
Ⅳ. 맺음말을 대신하여

본문내용

하게 많은 것을 그릴 수 있었던 심한 노동이 붓을 선명하게 한 커다란 원인’이었다고 보고 있다. 즉, 천재만이 뛰어난 화가만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관점에 얽매이다 실상을 알게 되면 재부재, 현우 등 대립이 완전히 사라진 세계에서 그 훌륭한 송 가마가 생겨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야나기는 그 송나라 가마에서 ‘미의 정토’를 발견했다. 야나기 무네요시, 「미의정토」, 『미의법문』, 105~106쪽.
야나기 무네요시는 정토진종의 묘호인(妙好人) 개념을 민예론에 도입해 민기(民器)를 묘호품(妙好品)으로 불렀다.
야나기는 원시 시대의 인간이 만든 것에는 오류가 없는 무류(無謬)한 것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모든 인간의 본성에는 사물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야나기는 그에 대한 예를 원시인의 작품에서 찾았다. 원시인의 작품에는 오늘날 뛰어난 예술가들조차 본보기로 우러러보는 것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것은 원시인이 문화인보다 더 ‘본래인(本來人)’으로서 생활했기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어린아이에 대해서도 어른들보다 더 본래인에 가깝다고 보고,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에서 아름다운 작품이 종종 보인다고 보았다.
야나기는 미개인으로 업신여김을 당하는 원시인이 그렇게 자유롭고 훌륭한 것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문화인만큼 인위적으로 손상된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원시미’를 ‘본래미’라고도 부를 수 있으며, 불교용어로 ‘본래면목(本來面目)’라고 했다. 이때 본래(本來)가 근본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이렇듯, 본래성으로 돌아간다면 오류와 멀어지게 되고, 무류로 들어가게 된다. 미술 작업에서도 작업을 어떻게 하더라도 무류의 길이 준비되어 있다고 보았다.
또한, 불이(不二)의 상태가 되어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상태가 중세기 이전의 물건들에서 많다고 하였는데 그 예를 콥트 콥트(copte)는 5, 6세기 경의 이집트의 직물이다. 야나기에 의하면 콥트는 모두 예외 없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 모양은 모두 매우 거칠면서도 촘촘하고, 색은 풍부하고도 담백하여 전부가 아름다운 것이다.
나 잉카의 천, 오키나와의 천으로 들었다. 이 물건들을 만든 사람들은 극히 평범한 직인들이었으며, 이때는 물건의 상하, 호추의 구별이 사라진 부처의 불가사의가 행해진 것으로 ‘미의 정토’가 실현된 때로 보았다.
Ⅳ. 맺음말을 대신하여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학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전개했던 개념의 주요한 내용으로는 불이미, 범인성불, 정토의미 개념등이다.
여기서 불이미에 해당하는 다른 개념으로는 자재미, 정토미, 자유미, 무애미, 적의미, 등으로도 설명하였는데 각각은 그 의미가 있지만, 종합적으로는 불이미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학 이론은 현실세계에서 민예운동으로 구체화되어 갔다.
하지만,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학 이론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야나기는 “위대한 종교시대”는 “항상 위대한 종교예술을 동반했다”는 역사적 법칙을 가설로 하고 있었다. 또 “뛰어난 일상의 신앙은 뛰어난 일상의 미를 낳는다. 뛰어난 일본의 신앙은 뛰어난 일본의 미를 낳는다”고 상정하고 논리를 전개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가장 일본적 민중적 시대로 간주한 가마쿠라 시대, 정토진종이 성했던 시기에는 그만큼 뛰어난 민중예술품(묘호품)이 나오지 않았다. 나카미 마리, 앞의책, 350~352쪽.
또한, 운동의 형태에 있어서도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자력과 타력 모두를 중시했는데 그러한 입장은 현실의 민예운동에서 장인과 개인 작가를 둘러싼 문제로 나타났다.
즉, 야나기 무네요시는 개인 작가와 장인을 명확히 구분하고 전자는 자력의 길을, 후자는 타력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나기는 민예는 장인에 의한 것이고 개인 작가는 민예작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개인 작가에게 장인을 이끌어가는 큰 역할을 부여했다. 개인 작가가 실제로 민예 운동에 깊이 관련되었던 것은 개인 작가의 활동 중에서 어느 범위까지를 민예운동으로 간주해야 하는지를 애매하게 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했다. 민예운동과 개인작가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법에 명확함이 결여됨으로써 혼란을 낳게 했던 것이다. 나카미 마리, 앞의책, 347~348쪽.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미야케 다다카즈(三宅忠一)라는 민예 운동가는 야나기로부터 이탈하였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학은 이와 같은 현실적 어려움과 이론적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민예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민예품에 대한 미적 가치를 부여하는 등에 대해서는 크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생각했던 미의 정토가 과연 실현됐는가 하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오늘날 민예라는 단어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가 생각했던 불이미(不二美), 불이국(不二國)의 개념은 무척 생소하고, 민예품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야나기가 상정했던 아름다움의 개념으로 해석되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미의 정토가 실현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천재와 범부의 차이가 없고, 천재만이 평가받아서는 안되며 범부가 만든 것도 가치가 있다고 하는 범부성인의 개념 등은 이원론적 가치가 지배하는 현실 세계에서 충분히 위로가 되는 이론이며 일원적적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그 자체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길희성, 『일본의 정토사상』, 민음사, 1999,
스에키 후미코, 『일본불교사』, 뿌리와이파리, 2005년,
나카미 유리,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 효형출판, 2005,
야나기 무네요시, 「미의 법문」, 『미의 법문』, 이학사, 2005,
平川彰, 『불교연구입문』, 경서원, 1988.
이인범, 「柳宗悅 예술론의 불이론적 기초」, 미술사학보제10호, 1997.12.
장왕식, 「신앙칭의(信仰稱義)에 관한 두 접근 : 개신교와 신란(親鸞)의 정토종」, 감리교신 학대학『신학과 세계』, 2006.
조승미, 「근대 일본불교의 전쟁지원-정토진종의 역할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불교학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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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2.28
  • 저작시기2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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