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중국불교 선종의 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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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순수한 중국불교 선종의 흥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는 말이 등장한다. 이것으로 볼때 백장회해를 기점으로 해서 선종이라는 명칭이 성립되어 나갔음을 알 수가 있다.
대략적으로 선종이라는 종파적 독립성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약 9세기 정도에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의 당나라 시대중에서 안사의 난과 황소의 난 사이에 해당되며,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해당된다. 역사적으로 바다의 왕자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해서 당나라로 가는 유학생과 상인을 보호하는 일을 하던 때가 828년 이후이다. 서양의 카알대제가 서로마제국을 부활한 해가 800년이고, 프랑크 왕국이 분열한 해가 870년이다. 대체적으로 중세 전반기의 중,후반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인도에서 전래된 보리달마의 선법(禪法)은 당나라 시대에 선종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이어서 송대까지 발전을 하게 된다. 바야흐로 5가7종이 번성을 하는 것이다.
송대에 들어서 선종의 공안이 만들어 지게 되는 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설두중현(雪竇重顯)이 뽑은 송고백칙(頌古百則)과 굉지정각(宏智正覺)이 뽑은 송고백칙이다. 설두 중현이 묶은 송고백칙은 원오극근이 벽암록(碧巖錄으로 펴냈고, 굉지 정각의 송고백칙은 종용록으로 남았다. 어쨌든 벽암록과 종용록(從容錄)에 이르러 선종의 기연어구(機緣語句)와 문답상량(問答商量)이 정형화된 틀로 묶여서 수행의 지침으로 등장하게 된다. 한편 일본 조동종의 조사인 도오겐은 선종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백해무익하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는 선종적 독립의 시기를 송대 정도로 보고 있기도 하다.
선의 문답이 곧 불교의 정수를 거량(擧量)하는 법의 문답이라고 할때에, 어찌 송대에만 있고, 선종에만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에서 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간화선(看話禪)의 종풍(宗風)이 형성되고 난 이후에 발전된 조사선(祖師禪)의 면목속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문답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그러하기에 중국선종의 성립을 간략히 고찰한 것이다. 하지만 간화선이 아닌 묵조선 계통의 조동종과 초기 선종사에 선의 문답이 없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 많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불교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이 바로 간화선의 종풍이며, 여기에 기반한 문답상량이 많기 때문에 간화선을 주로 고찰하는 것이다. 아무튼 간화선의 종풍은 대혜종고에 이르러 거의 완결적 구조를 갖추게 되며, 여기에 비해서 굉지정각의 선풍이 차별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대혜종고와 굉지정각이 서로 비판하는 가운데, 간화선과 묵조선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선종(禪宗)이란 좌선, 내관을 통해 정신을 집중하고 잡념을 버려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 해탈에 이르며 진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불교사상이다.
따라서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한다. 선종은 후한시대였지만 남북조시대 인도인 달마에 의해 행해졌다. 그 후 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으로 이어져 혜능에 와서는 재가자에게까지 보편화
되었다.
혜능은 남쪽 지방에서 ‘본래 아무 것도 없다’는 돈오의 법문을 설하고
신수는 북쪽 지방에서 ‘늘 수련한다’는 점수의 교의로 사람들을 가르쳤다. 따라서 이를 두고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후 몇 대의 전파를 거쳐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어 다른 종파를 압도하였다. 선종은 이론이나 지식에 집착하는 교종의 방법론을 비판하고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돈오를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하였는데 이를 ‘사구게(四句偈)’라고 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로서 교(敎)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선종의 입장이다.
참된 불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以心傳心)이라고 한다. 마음은 모든 사물이 생겨나는 근원으로서 마음을 인식하면 모든 사물이 인식된다고 보았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 경전에 집착할 필요가 없으며, 마음에 의지하여 깨달으면 된다고 하였다. 언어나 문자로는 참다운 진리를 나타낼 수도 없고, 전달할 수도 없는 것이므로 일체의 경론은 가르침을 베풀 한 방편일 뿐 거기에 구애되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경전의 내용에 대해서는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게 된다.
교외별전(敎外別傳)
교외별전이란 절대적 가치나 의의를 부여하지 않음을 말한다.
즉 문자에 의한 진리인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해는 것을 뜻한다. 불타가 언어로써 가르침을 전한 것이 교내(敎內)의 법이라면교외의 법은 불타의 마음을 사람의 마음에 전하는 것을 말한다. ‘표월지’의 비유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즉 진리는 달에 비유하면 교(敎)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지만 선(禪)은 달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모든 교리는 마음의 메아리에 불과하므로 교리나 경전 속에서 진리를 찾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참된 진리는 스스로 물을 마셔본 후 차고 더운 바를 아는 것처럼 오로지 마음에 의해 경험되고 터득되는 것이라 하였다.
직지인심(直指人心)
참다운 지혜는 마음 곧 본 성을 아는 것일 뿐이므로 마음을 깨쳐야 부처가 된다고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불성을 갖는데 그것은 언제나 맑고 깨끗하여 마치 해와 달처럼 빛나는 것이지만 때때로 망념의 구름에 가려 그릇된 번뇌의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마음속에 청정한 불성을 드러내려면 무념(無念)이 필요하다. 무념은 선종의 최고 종지이다. 인식이나 수행도 무념의 상태에서 해야한다. 감각이나 사유를 통해서는 마음속의 불성을 인식할 수 없으므로 무념의 경지에서 직관적으로 한꺼번에 불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직지인심이란 ‘수행하지 않음’을 수행방법으로 삼아야 함을 말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선종에서는 마음이 곧 불성이므로 마음을 아는 것이 불성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즉 마음속의 불성을 보는 것(見性)이 곧 부처가 되는 것(成佛)이다. 혜능은 중생들의 미혹한 마음으로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는 수행을 하기에 자신의 본성을 깨닫지 못한다고 하고 오직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봄으로써 자신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혜능이 선정만 중시하고 점수, 지혜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참 진리는 선정과 지혜가 모두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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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4.15
  • 저작시기201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39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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