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서사 이론을 통해 살펴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환상서사 이론을 통해 살펴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ⅰ .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2)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줄거리
  3)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분석
   - 대립구조를 통한 현실 인식
   -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드러나는 모더니즘적 환상
   - 어른 동화에서의 환상

 ⅱ .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1)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작가 박민규
  2)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줄거리
  3)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환상
   - 포스트 모더니즘 환상
   - 포스트 모던 리얼리즘 성장소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 아버지와의 환상적 유대

Ⅲ. 결론

Ⅳ. 참고 문헌

본문내용

년들이 나르시시즘에 빠지거나 환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반면에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는 주인공이 무력한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현실을 응시하는 과정이 제시된다.
죽은 청년 사랑과 연대를 모색하는 청년들에게 아버지는 희미하게 지워진 존재일 뿐 적대적인 증오의 대상은 아니었다. 한 때는 청년이었을 무력한 아버지는 이제 다만 존재감을 상실한 '죽은 청년'으로서의 모습을 보일 뿐이다.
으로서의 무력한 아버지와 청년의 신념을 잃어버린 나르시시즘적 청년은 1990년대 이후의 사회와 문학의 이중적 청년의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박민규의 소설은 1990년대의 청년정신의 상실로서 그런 나르시시즘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같은 극복의 과정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에서부터 시작된다. 청년 주인공('나')은 등을 돌렸던 아버지에게서 무력한 타자의 위치를 공감함으로써 열악한 아버지의 삶('산수')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갖게 된다. 여기서 아버지의 삶은 모든 것이 계산으로 결정되는 자본주의의 삶을 의미한다.
소설 속 '나'는 1990년대 나르시시즘적 주인공들처럼 원래 '좀 노는 편이었는데', 아버지의 회사에서 도시락을 건네주며 빈약한 아버지의 삶을 목격하게 되고, 조용한 청년이 된다. 이러한 광경의 목격 후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생겨난 것은 '나'에게도 아버지와 비슷한 삶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후 어머니가 쓰러진 뒤 '나'의 삶은 더 우울해졌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자본주의 삶을 반복한다.
일상으로부터의 우울을 억누르는 그런 무력한 연민의 관계는 아버지의 실종 이후 반전된다. 실종된 아버지는 내가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하던 지하철역에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아버지는 첫눈에 알아볼 수 없는 낯선 얼굴의 기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곧 아버지라는 것을 직감하면서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낀다. 기린의 환상은, 그 전에 '내'가 아버지의 잿빛 눈동자에서 감지했던 쓸쓸한 감정을, 이번에는 몸 전체로 전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그 때 그 감정을 억눌렀듯이 기린이 다시 일상의 아버지로 되돌아오길 빌고 있었다. 이러한 소설 속 모습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에서 화해를 소망한다는 특징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아버지가 상징계인 현실로 돌아오길 소망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기린의 환상으로 보는 순간은 이미 무의식으로부터 그 '억압된 감정'이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내게 보여준 자본주의의 세계에 무관심한 아버지의 눈빛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나의 조바심을 떨쳐냈을 뿐이다. 나의 초조함은 아버지가 일상을 되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앞서 기린-아버지와의 존재의 유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유대의 소망은 아버지의 귀환에 대한 바람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목소리 대신 '기린'의 잿빛 눈동자가 되돌아오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억압적인 자본주의 외부에서의 상호 주체적 공간이 형성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는 응답은 기린이 아버지의 이름을 상실한 아버지로서 '나'와 만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앞발을 내 손위에 포개는 기린의 행위는 예전의 '나'와의 유대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신호일 것이다. 그러나 이 환상을 통한 유대는, 오이디푸스적 아버지와의 동일시는 물론, 빈약한 산수를 건네주던 때와도 전혀 다른 의미를 함축한다. 오이디푸스 세계의 타자로서 두 사람의 새로운 상호주체성은 산수의 노예(자본주의 시대에 얽매인 모습)가 되었던 삶으로부터 탈주하고 싶은 소망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탈주의 욕망이 두 사람의 유대의 소망과 함께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온 것은 비단 억압된 감정만은 아니다. 무의식으로부터 귀환하고 있는 것은 잿빛 감정을 넘어선 탈주의 욕망이며, 그 욕망은 오이디푸스 외부에서의 유대의 소망, 즉 비오이디푸스적 욕망과 함께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나'와 기린이 된 아버지 사이에 유대의 감정이 없었다면 기린의 환상은 거세공포와 함께 나타났을 것이다. 이 경우 산수에 무능한 기린은 아버지와 '나'의 고통스러운 상처일 뿐이다. 그러나 '나'의 존재의 유대를 확인하려는 물음과 '나'를 감싸는 아버지-기린의 감정은, 기린의 잿빛 눈동자를 따뜻한 이미지로 반전시킨다. 두 사람 사이의 그런 따뜻한 감정에는 거세의 위협을 주는 상징계의 대응하는 능동적인 잠재력이 포함되어 있다. (산수의 세계의)아버지로 되돌아가지 않으려 하면서도 '나'의 유대의 소망에 부응하는 기린의 몸짓은, 유대를 통한 탈주에 의해서만 그 같은 능동적인 힘이 생성됨을 암시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능동적인 잠재력은 실재계에 접촉한 상호주체적 공간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이제 아버지와의 유대의 표시는 색이 같은 '잿빛 눈동자'(연민)가 아니라 내 손위에 포개진 이질적이면서도 친근한 '기린의 앞발'(탈주)인 것이다.
Ⅲ. 결론
이상으로 우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두 작품을 환상서사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경우, 대립적 요소들을 통해 불안한 현실세계를 드러내는 리얼리즘적 경향을 보이며, 모나드적 모더니즘 환상을 통해 이룰 수 없는 유대의 꿈을 낯선 두려움으로 드러내고 있다. 모나드적 환상과 달리 소통과 유대를 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환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분석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적 환상의 모습, 포스트모던 리얼리즘 소설의 경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환상 서사를 적용한 구체적인 소설의 감상은 환상 서사 이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Ⅳ. 참고 문헌
나병철, 「환상과 리얼리티」
양애경,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분석」
박영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인칭변화에 관한 연구」
서형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서사층위분석 시론」
우찬제, 「대립의 초극미, 그 카오스모스의 시학」
김병익, 「대립적 세계관과 미학」
허은영, 「박민규 소설에 나타난 포스트모던 리얼리즘 연구」
최은경, 「박민규의 성장소설 연구」
  • 가격1,8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13.05.03
  • 저작시기2014.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4301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