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인간의 본성 문제 - 성선설과 성악설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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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인간의 본성 문제 - 성선설과 성악설을 중심으로)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글

2. 인간은 선하다.
 (1) 성선설 개략적 살펴보기
 (2) 동양의 성선설(맹자)
 (3) 서양의 성선설

3. 인간은 악하다.
 (1) 성악설 개략적 살펴보기
 (2) 동양의 성악설(순자)
 (3) 서양의 성악설
 (4) 홉스에 대해 더 알아보기

4. 나오는 글

본문내용

만을 요구하는 한, 이러한 권리 개념은 사회적 불안을 낳는 원인이 될 뿐이다. 어떠한 사회도 이러한 상태하에서는 존립할 수 없다. 따라서 홉스는 의무의식이 본래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며, 그것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가를 제시해야만 했다. 우리 각자가 오로지 우리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는 홉스의 전재는 과연 옳은가? 사실 그가 어느 정도까지 진심으로 이기주의를 표방하려고 했는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다. 심리학적 이기주의는 아주 극단적인 견해로서, 개인은 오로지 그 자신의 이익만을 원한다는 견해이다. 내가 당신을 도와준다고 해도, 이러한 견해에 따르며, 나는 나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지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관대해 질 때의 만족감을 욕구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논리적 명제로서, 내가 원하는 것만을 나는 욕구한다는 하등 새로울 것이 없는 명제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선을 원할 때, 당신의 선이 나의 욕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곧 내가 이기적이 아님을 의미하게 된다. 여전히 내가 욕구하는 대상은 당신의 선이지 나의 선이 아니다. 문제는 내가 당신의 선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명제를 과연 홉스가 받아들이겠느냐 하는 것이다.
홉스는 자비심에 대해 설명하면서, 능력있는 인간에게 있어 그 자신의 욕구를 성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능력도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하는 것보다 훌륭한 논증은 없다고 말한다. 이와 유사하게 그는 동정심을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에게 닥칠지 모르는 미래의 불행에 대한 상상 또는 허구라고 서술한다. 자기 중심적 성향은 분명해지고, 따라서 타인에 대한 관심은 자신 자신에 대한 관심의 부산물일 뿐이다. 나에 대한 나의 관심 때문에 당신의 곤경이 동정적 반응을 유발한 것이라면, 나는 진심으로 당신에게 어떠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록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이긴 하지만, 내가 당신의 이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홉스가 부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논리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 18세기의 유명한 도덕철학자였던 버틀러(J. Butler) 주교는 이 점과 관련하여, 권력에 대한 단순한 애착으로 말미암아 대상들이 구별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홉스를 반박했다. 나는 권력을 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당신에게 권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내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그 무엇이 당신 주위에 있어야 한다. 내가 당신의 고통을 중단시키기를 원할 때 그렇게 하는 이유가 나에게 우월감을 주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당신이 겪는 고통의 중단이지 단순히 나의 우월감은 아니다.
홉스는 어쩌면 버틀러의 의견에 공감할지도 모른다. 그는 동정심을 그저 미래의 어떤 불행에 대한 공포감에 지나지 않는다고 정의하지는 않았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와 유사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동정심은 유사한 일을 자신도 겪을 것이라는 믿음과 결부된다. 바로 여기서 자기 집착이라는 요소가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감정의 대상이 다른 사람의 현실적 불행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상상적 불행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나의 배려는 불충분한 것인지 모르지만, 여전히 그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타인에 대한 배려로서 내 자신에 대한 배려와는 다른 것이다. 홉스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자연스런 애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으며, 우리가 우리와 가까운 타인에 대해 애정을 품을 수 있음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낯설은 사람을 돕는 행위에 대해서는 좀더 회의적이었으며, 그러한 행위란 우정을 구매하려는 행위이거나, 아니면 공포감에서 유발된 평화를 구매하려는 행위라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은 우리에게 있어 자기 집착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과 우리가 타인에 대해서도 배려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어쩌면 홉스는 철저한 심리학적 이기주의의 혐의를 벗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 규제를 받지 않는 개인을 강조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그는 오로지 우리 자신의 이익에 대한 우리의 관심만을 강조하게 되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가능하다 해도 그것은 결코 핵심이 아니며, 기껏해야 우리 자신의 근본적 이익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홉스는 바로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인간 사회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는 자기 보존이기에, 사회는 우리의 안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근거 위에서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 나오는 글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논의는 레포트를 준비하고, 책을 읽고, 자료를 찾고, 레포트를 작성하고, 마무리하는 동안 더욱 아득하고 깊숙한 미궁으로만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고, 더욱 깊고 방대한 인간본성의 문제의 논의를 접하며 어려웠지만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순자와 홉스가 주장했듯이 인간이 악하다고 생각한다. 교수님께서도 도입부에 전쟁을 들어 성선설과 성악설을 설명하셨는데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의 전쟁에서의 인간의 가학성과 잔인함, 비인도성, 그리고 가학성에 취한 집단의 무감각증, 죄의식상실 등에서 인간의 본성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이라크 포로 학대 사진에서 린디 일병의 미소는 아직도 섬뜩하게 다가온다. 전쟁이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순자가 성악설을 얘기한 것은 사악함을 꾸짖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예를 가르치고 법으로 다스려 혼란다툼무질서가 아닌 질서와 화합의 사회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맹자가 성선설을 이야기 한 것도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도덕성을 발현시켜 혼란한 사회를 극복하고 서로 더불어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함이다.
인간의 본성을 논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 본성을 논할 필요성을 느낀 다는 것은 현재 사회에서 상황이 사람들이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데 문제가 생긴 것을 뜻한다. 인간의 본성문제를 크게 논의할 상황이 적어지길 바라면서, 철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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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5.28
  • 저작시기2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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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49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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