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포에니 전쟁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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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포에니 전쟁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정당 전쟁론
3. 팽창전쟁의 전개와 결과
 (1) 제 1차 포에니 전쟁
 (2) 제 2차 포에니 전쟁
 (3) 제 3차 포에니 전쟁
4. 로마 제국주의의 동기
5. 맺음말

본문내용

동기
로마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지배적인 특징은 평화적이기 보다는 매우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이다. 사실상 로마는 고대의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도 오랫동안, 또 빈번히 전쟁을 하였다. 그렇다면 로마의 호전성은 어떠한 요인에 기인하는 것일까? 이는 전쟁이 로마 내에서 수행했던 기능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① 우선 로마의 지배층인 귀족집단에게는 계급적 이익을 위해서나 개인적으로나 전쟁을 원할 여러 이유가 있었다. 신인들은 군사적 성공을 통해 자신을 드러낼 것을 갈망하였고, 명망 있는 가문의 후손들 또한 자신의 가문이 축적한 군사적 영광을 빛내기 위해 자신들도 위대한 행위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녔다. 청년 귀족들은 웅변이나 법, 철학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으며 전쟁과 군대 지휘에 관한 교육을 중시하였다. 개인적으로도 전쟁에서 얻은 명성은 한 귀족의 정치적 성공에 매우 중요했다. 군사적 명성은 쉽게 관직 획득으로 이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이렇다 할 공직 경력 없이도 그와 그의 가문의 군사적 명성에 자극 받은 민중의 지지로 콘술에 당선될 수 있었다. 이렇게 전쟁의 승리를 통한 개인과 가문의 위신 증대를 위해서 로마인들은 전쟁을 원했다.
② 또한 승리한 전쟁은 풍부한 전리품을 가져다주었다. 지휘관은 전리품을 적절히 분배하여 병사들로부터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는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전리품에 의해 얻은 엄청난 자본을 정치 자금으로 사용하거나, 공공건물 또는 시설 설비에 투자함으로써 민중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전쟁에서의 성공이 가져다주는 명성과 실제적 이익 때문에 귀족들에게는 전쟁의 기회들이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했다. 이는 로마 귀족들이 해외의 일에 간섭하고, 사소한 사건을 구실로 전쟁을 일으키곤 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③ 물론 전쟁의 승리를 갈구한 것은 지배층만이 아니었다. 평민들도 토지와 전리품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또 사회적 승진의 기회로서 적극적으로 전쟁을 받아들였다.
④ 로마에서 전쟁을 바람직하게 여겼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탈리아 연방의 성격 때문이었다. 로마는 동맹국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가 이들로부터 이익을 취할 유일한 방법은 군대를 소집하는 것이었고, 이는 또한 자신들의 지도력을 상징화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 전쟁과 정복은 매우 중요했다.
⑤ 경제적 이익도 팽창 전쟁의 주요 동기였다. 로마인들은 국가적으로도, 또 시민 개개인에 있어서도 전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이루어냈다. 정부는 전쟁 배상금과 속주의 세공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지휘관과 병사들은 전리품의 획득으로 엄청난 이익을 취하였다.
이처럼 로마인들은 전쟁을 통해 직접적 이익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으로 로마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승리자로서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쟁을 통한 팽창의 욕구뿐 아니라 팽창에 반하는 욕구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공화정의 제한된 인적자원 때문에 마냥 속주를 늘리기는 힘들었다. 속주를 계속해서 늘리려면 총독이 많이 필요하고, 그것은 권력의 독점을 취하고자 하는 기득권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기득권자들은 라이벌들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자신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오히려 전쟁이 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을 것이다. 한 예로, 카이사르가 게르만족과의 전쟁에 승리했을 때 카토는 그가 조약을 위반했다고 고발하였는데 이것은 카토가 카이사르에게 시기심을 느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특정 속주를 정복한 사령관이 그 속주를 차지하여 엄청난 이득을 볼 때 그의 정적들은 그것을 만류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가 공화정이 끝날 때까지 속주화가 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그 이집트를 차지한 사령관이나 총독이 막대한 경제력을 얻어 공화정의 세력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원로원에서 반대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로마는,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쉽게 말하기 힘든 다양한 목적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5. 맺음말
포에니 전쟁은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로마와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려는 카르타고와의 싸움이었다. 카르타고는 무역에 관해선 대 해상세력이었지만 로마는 소규모의 해군을 가졌을 뿐이었고, 해상무역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 작은 농경국에 불과하였다.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은 모두 로마의 승리로 돌아갔고, 결국 카르타고는 멸망하고 지중해의 패권은 로마가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지중해 진출의 길을 연 것이다. 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채 안되어 로마의 속주제도는 스페인에서 아시아까지 확대되었고, 세계제국 로마로 발돋움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또한 헬레니즘 세계와 직접 접촉하게 됨으로써 헬레니즘 적 사고와 문화 풍조에 노출되었는데, 이러한 접촉은 로마의 전통적 미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포에니 전쟁은 안으로 로마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서 변화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포에니 전쟁은, 민족적 시련을 극복한 로마가 일대 도시국가에서 지중해 세계 전체에 걸친 세계제국으로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발표를 준비하면서 한니발과 스키피오와 같은 용맹한 멋진 전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어 좋았고, 2천년도 전에 일어난 역사의 사건들을 21세기인 오늘날에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또 그만큼 역사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사실 그동안 로마인들은 뭔가 신화 속 사람들처럼 느껴졌는데, 발표를 준비하며 조사하다 보니 역시 그들도 살아있는 역사 속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와 닿았다. 이번 발표를 계기로, 앞으로 그리스·로마의 역사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다.
<<참고자료>>
김진경 외 『서양고대사강의』한울 아카데미, 1996
시오노 나나미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부엔리브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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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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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6.10
  • 저작시기2014.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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