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팽창과 근대의 형성] 영국의 대중국 경제·종교적 팽창의 군사적 결정성 - 아편전쟁기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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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중·영 전쟁 이전 시기
 ⅰ. 영국 동인도 회사와 아편무역
 ⅱ. (보론)청말 중국의 경제 상황에 관한 논의
  -자본주의 맹아론 vs 자본주의 이식론
 ⅲ. 초기 기독교 전도 노력
Ⅲ. 전후 서양세력의 본격적인 팽창
 ⅰ. 경제적 침투, 개방의 가속화
  -불평등 조약체제
 ⅱ. 확대된 기독교 세력과 그 영향
  -태평천국운동
Ⅳ. 서구의 군사적 승리 요인
  -우수한 해군력
Ⅴ. 결 론

본문내용

2008, p.424에서 재인용
는 말은 중국의 경우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Ⅳ. 영국의 군사적 승리 요인
-우수한 해군력
그렇다면 앞서 살펴보았듯이 중국에 대한 서양의 경제적, 기독교적 팽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아편전쟁의 결과, 즉 서구의 군사적 승리는 어떻게 확보된 것일까. 거대한 대륙과 인구에 바탕을 둔 청 제국의 군사력이 영국의 함포 앞에서 맥을 못 추게 된 까닭은 또 무엇일까. 그 이유는 고정불변의 어떤 요소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서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본고에서는 중국의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한 군사력 약화나 영국군에 맞서 싸운 중국의 무장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기 보다는 주로 영국군의 승리 요인이 되었던 해군 함정 및 해군력 자체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어 서술할 것이다.
폴 케네디는 그의 책에서 1815년부터 1859년까지의 시기를 대영 제국에 의한 ‘팍스 브리타니카’ 시기로 부르고 있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이후 수많은 조선소와 해군기지, 우세한 함대가 확립되어 이 시기에 이르면 영국 해군은 어떠한 간헐적인 소동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폴 케네디, 『영국 해군 지배력의 역사』, 김주식 역, 한국해양전략연구소, 2010, pp.241~327
그리고 그의 주장의 핵심이 거기에 있듯이 영국의 세계지배는 공고한 산업화에 의한 경제력의 발전이 군사력, 특히 해군력을 뒷받침해주었고 이것이 다시 패권을 유지하는 힘이 됨을 관찰하였다. 그러나 그의 영국 해군에 관한 논의에서 중국에 대한 전쟁은 간략한 언급만으로 그치고 있는데, 영국의 포함외교정책에서의 중국에 대한 해군력의 확보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영국의 해군이 산업혁명으로 인해 세계적인 기술 및 진용을 갖추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보인다.
약 3년 5개월간 펼쳐진 1차 중·영 전쟁에 동원된 영국군의 규모는 총 보병 15,000명, 해군 함선이 46척, 수송선이 100척, 핵심전력이 되었던 기주포함이 14척이었다. 신윤길, 위의 책, p.183
영국군에게 장애가 되었던 것은 유감스럽게도 청조의 해군이기 보다는 남중국해의 암초와 진흙, 모래의 얕은 급류, 주기적인 태풍 등 지리적·기후적인 요소였다. 신윤길, 위의 책, p.189~190
신윤길의 논문에서는 이를 극복하는데 기주포함이 주요한 요소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기주포함은 탑재포수도 적은 소형함선 위주였지만 흘수가 작아 정찰에 용이했고, 후에 양자강을 거슬러 중국 내지로 깊숙이 진군해 들어갈 때, 선도적인 역할을 하며 기함의 예인도 담당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 해군의 보수적인 체질은 이러한 기주포함의 도입에 소극적이어서 사실 보유 함대수도 많지 않았지만 인도와 영국 본국에서 적절히 건너온 철제 증기선 14척 정도가 아편전쟁에서 상당한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윤길, 위의 책, p.193
이에 전쟁이 전개되는 동안 청조는 변변한 저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여러 포대와 주요 거점을 점령당하고 급기야 남경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후 청조에서도 이러한 영국 함대의 우수한 기술력을 보고 양무운동시기에 이홍장에 의해 추진된 북양함대 사업을 벌였으나 청조 황실과 관료의 부정부패로 인해 예산이 낭비되어 제대로 투자되지 못하고 청·일 전쟁의 풍도해전에서 참패를 당하게 된다.
결국 영국의 근대적 해군 함정의 활약이 중국에게 불평등조약을 강요할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청조는 심각한 대내외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Ⅴ. 결 론
지금까지 서양, 특히 영국의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팽창의 두 요소, 경제적, 종교적 확대가 아편전쟁이라는 군사적인 승리에 의해 이루어졌고, 아편전쟁의 승리는 영국의 앞선 기술로 무장한 해군력이 보장해주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보충적 성격의 논의로 경제적 분야에서의 중국에 대한 팽창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사실 논의할 대상 자체가 너무 방대한 것이라 처음부터 손을 대기가 막막했으나 넓은 그림을 중심으로 개략적인 틀에 맞추어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시기에 대한 통일성은 잘 지켜졌다고 생각하지만, 지역적 범위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좀 부족했다고 여겨진다. 또한 군사적 승리에 대한 좀더 치밀한 논의가 부족하여 영국의 해군력이 정확히 어떻게 중국에 대한 확실한 우위를 보장해 주었는지를 세밀하게 다루지 못했다. 이는 자료가 아직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요, 이 같이 전문적인 사안을 다루는 데에 졸자의 능력이 부족함도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아편전쟁기의 중국과 중국에 대해 팽창을 시도한 영국 사이에 있었던 대외 관계사를 분야별로 좀 더 자세히 정리해본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도 있겠다고 여긴다. 개인적으로 서양의 해양팽창이 전 세계적으로 보여주는 공통적인 성격은 군사력에 의한 팽창의 확고한 틀 다지기라고 생각한다. 세계사의 중심 위치에 있다가 근대에 이르러 전락한 중국의 예를 살펴본 본고에서도 이러한 군사력의 결정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논의가 많이 미진한 부분은 가감 없는 토론과 의견 교환을 통해 메워지기를 바라면서 끝을 맺는다.
<참고문헌>
-표교열, 「弟1·2次 中英戰爭」,서울대학교동양사학과연구실 편,『講座中國史Ⅴ』, 지식산업사, 1989
-주경철, 『대항해 시대 - 해상팽창과 근대세계의 형성』,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08
-필립 리처드슨, 『쟁점으로 읽는 중국 근대 경제사 1800~1950』, 강진아·구범진 역, 푸른역사, 2007
-신윤길, 「영국 동인도회사와 파머스턴의 포함정책 - 아편전쟁기를 중심으로」, 『中央史論 제 15집』
-김재선, 『아편과 근대중국』, 한국 학술정보(주), 2010
-조훈, 『중국기독교사』, 서울: 그리심, 2004
-송기호, 『동아시아의 역사분쟁』, 솔 출판사, 2007
- 김학관, 『중국교회사』, 이레서원, 2005
-폴 케네디, 『영국 해군 지배력의 역사』, 김주식 역,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최성일 편역, 『존 로스의 중국선교방법론』, 한신대학교출판부
-김영식, 『중국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과학혁명과 중국 전통과학』, 안기택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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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0
  • 저작시기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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