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팽창과 근대의 형성] 서유럽 의학의 동아시아 전파 양상에 대한 재고 - 해부학, 예수회, 천연두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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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양팽창과 근대의 형성>

서유럽 의학의 동아시아 전파 양상에 대한 재고
- 해부학, 예수회, 천연두를 중심으로



서론
1. 16-17세기 무렵 유럽 의학의‘혁명’과 그 여파
 (1) 베살리우스와 16~17세기 서구의학의 성과들
 (2) ‘의학 혁명’의 한계

2. 16∼18세기 서유럽에서 동아시아로의 의학 전파
 (1) 중국의 경우
 (2) 일본의 경우
 (3) 조선의 경우

3. 동아시아에서 서양으로의 의학 전파
 (1) 침과 뜸
 (2) 약학

4. 인두법과 우두법, 그리고 서양 의학의 제도화
 (1) 천연두의 확산과 종두법의 등장
 (2) 조선의 인두법과 우두법 전파
 (3) 종두법의 정착과 서양 의술의 제도화

결론


§ 참고문헌 §

본문내용

의학교의 교장으로 지석영이 선출되기에 이른다. 지석영의 종두법 전파는 근대적 형태의 일본 제국주의라는 달갑지 않은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19세기 초부터, 중국과 일본에서는 조선보다 일찍 제도적 차원에서 서양의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우에는 원래 자생적으로 인두종법이 시행되었으나, 피어슨의 종두법 시행은 우두법을 중국에게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이 무렵에는, 힘을 잃은 예수회를 대신하여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미국공리회(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of Foreign Missions)와 같은 개신교 단체들이 의료를 매개로 기독교 선교를 진행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벤저민 홉슨은 서양의학이 중국 의학보다 정교한 지식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하면서, 시험제도와 함께 중국 내 인체 해부를 허가할 정부의 공식기관을 마련해 달라고 제안하였다. 케네스 맥켄지(Kenneth MacKenzie) 도 청나라 말기의 지도자 이홍장(李鴻章, 1823~1901)에게 의학교 설립을 허가받아, 최초의 근대 의학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런 한편 일본에서는 지볼트(Philipp Franz von Siebold, 1796~1866)가 근대적 의학교육의 지평을 열었다. 1823년 일본에 도착한 그는 일본 의학의 지식 부족을 개탄하고, 일본인 의사와 의학생에게 임상의학 교육을 진행하였다. 그런가 하면 오가타 코안(緖方洪庵, 1810~1863)은 오사카에서 데키주쿠(適塾)라는 사립 교육기관을 열어, 1862년까지 600명의 난학자를 양성하였다. 오가타 코안은 종두법의 전파에도 영향을 및였다. 1849년 종두 백신이 나가사키에 도착했을 때, 난학자들은 이 데키주쿠 출신들을 중심으로 1~2년 사이에 일본 곳곳으로 종두를 보급하였다. 이 때 종두의 탁월한 예방 효과가 입증되어, 일본의 지도세력도 서양 의학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이후 1858년 에도에는 오타마가이케 종두소가 설치되었는데, 이 기관은 1861년에 막부 직할 기관으로서 서양의학소(西洋醫學所)로 개칭되었다. 이후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서양 의학의 수용을 장려하기에 이른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네덜란드 의학에서 독일 의학으로 수용 목표를 바꾸고, 군진 의학을 중심으로 의학 교육 제도를 확립햇다.
결론
종합해서 말하자면, 16~18세기 유럽 의학 혁명은 동아시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역으로 침술이나 뜸과 같은 동양 의학이 서양 의학에 자극을 준 사례도 있다. 서양 의학이 보다 명확하게 동아시아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의학지식 그 자체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19세기의 종두법 보급과 같은 사회적인 차원의 의료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시에 아편전쟁과 같은, 서구 제국주의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부분은, 서양의 경우 ‘해부’가 지니는 함의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타이먼 스크리치는 동양 의학과 서양 의학의 근본적 차이를 ‘해부’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해부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이 나중에 영미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독일 의학을 받아들일 만큼 서양의학에 근접해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현대 의학에서는 해부학이야말로, 근대 서유럽의 경험적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실증주의를 대변하는 학문으로 인정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조선의 경우에는, 자생적인 의학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의보감』과 같은 경우에는 중국의 의학에서 독립된 한국만의 독특한 의학을 세우고자 한 흔적이 역력하다. 한의학사로서는 처음으로 대분류 체계 동의보감은 총 5편, 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편으로 나뉜다.
를 통해 전체 의학체계를 세우려고 했다는 점, 병의 증상과 진단, 예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성취가 이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 정책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공중위생’의 개념이 에 본격적으로 조선 내부의 정책으로 반영된 것은, 알렌을 주도로 한 미국 의료선교사들의 콜레라 방역과, 제중원의 설립 이후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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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1
  • 저작시기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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