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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업][공업 입지][조선공업][중화학공업][중화학공업화][남동임해공업지역]공업의 입지, 공업의 발달, 공업과 후기공업사회, 공업과 조선공업, 공업과 중화학공업, 공업과 중화학공업화, 공업과 남동임해공업지역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공업의 입지

Ⅲ. 공업의 발달
1. 재래 수공업
2. 일제 시대
1) 일제 초기(1910년 - 1929년)
2) 일제 말기(1930년 - 해방 전)
3) 1960년 이전
4) 1960년대
5) 1970년대
6) 1980년대
3. 공업의 특색
1) 원료의 높은 해외 의존도
2) 풍부하고 우수한 노동력
3) 공업 구조의 이중성
4) 부족한 자본과 기술

Ⅳ. 공업과 후기공업사회

Ⅴ. 공업과 조선공업

Ⅵ. 공업과 중화학공업

Ⅶ. 공업과 중화학공업화

Ⅷ. 공업과 남동임해공업지역
1. 입지조건
2. 임해지역의 공업
1) 부산
2) 울산
3) 마산
4) 포항
5) 기타
3. 내륙공업지역
1) 대구
2) 구미
3) 문경

참고문헌

본문내용

과정이 더욱 조정의 실패를 악화시켰다. 이러한 대기업 지원은 내수시장에서의 경쟁과 신규기업의 참여를 억제하여 독과점적 이윤을 확보시켜줌으로써 1980-90년대 대외적으로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1980년대 정부의 조정과 개입, 보완과정은 일관하여 국제경쟁력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 중화학공업 조정의 시사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산업조정을 전정권의 정책비판,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과잉투자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단순히 기업수의 감소 예컨대 소위 ‘빅딜’에 주력한 조정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간 조정은 당연히 비용과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으며 그러한 조정을 가져온 근본원인으로서의 대기업집단에 대한 실질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결국 다시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비용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산업조정의 개입시기와 방법 면에서 산업규모와 산업발전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정부개입과 일방적 공급조정은 결국 시장외적인 추가개입을 가져와 국민경제의 비용을 증대시킨다. 설령 과잉투자였다고 하더라도 1970년대와 달리 경제규모가 확대된 1980년대 이후에는 공급측면에서의 투자조정이 비용측면에서 비효율적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생존논리에 입각한 M&A나 세계시장 구조변화에 따른 수요견인책 등을 써서 균형을 모색하는 다른 방법이 더욱 합리적이었을 수도 있다. 실질적으로 1980년대 각 산업의 수요변동과 산업 정상화과정의 높은 연관성은 이러한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언제나 산업조정에서 획일적으로 나타나는 공급측면의 기업통합, 기업수 축소 노력을 이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Ⅶ. 공업과 중화학공업화
한국과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1960년을 전후한 비슷한 시기에 수출주도성장이라는 발전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경제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굳이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로 들어오면서 특히 한국과 대만의 발전전략에는 중대한 전환―즉 수출지향적 중화학공업화―이 나타난다. 수출주도 성장정책으로 전환한 이후 한국과 대만의 경제적 성취가 본격화되는 것은 사실상 중화학공업화가 진행된 197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대만 모두 1970년대 중반을 계기로 수출의 비약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과 대만의 수출액은 1960년대를 통틀어 10억 달러 내외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971년에 처음으로 20억 달러를, 1973년에는 40억 달러를 돌파한 이후 대만의 수출은 1976년 81억 6,600만 달러, 1977년 93억 6,000만 달러, 1978년 126억 8,700만 달러라는 급성장을 거듭하였다. 특히 두 나라 모두에서 1975년을 계기로 수출의 신장세가 하나의 변곡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없으며, 이것은 결국 한국과 대만의 경제성장과정에서 중화학공업화가 단순히 기존의 수출주도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수출상품의 구성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생산력과 공급능력의 획기적인 비약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은 흔히 수입대체라는 또 다른 발전전략을 선택했던 남미 국가들의 실패와 비교되고는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이 수출주도성장을 추진 중이던 1960년대 말에서 석유위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는 브라질과 멕시코 등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또한 輸出과 所得에서 급속한 成長을 경험하던 중이었다. 이러한 성장은 전통적인 수입대체로부터의 정책변화에 힘입은 것이었는데, 새로운 정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수입대체 정책의 기반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輸出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1970년대 동아시아와 남미 국가들의 경제적 지위를 역전시킨 가장 주요한 계기는 중화학공업화를 전후하여 나타난다. 한국과 대만은 세계의 공업생산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모두에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성장률을 앞지르고 있다. 특히 절대적인 생산 비중에서는 여전히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높으나 수출 비중에서는 절대치에서조차 東아시아 국가들이 197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추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이른바 수출주도성장으로의 전환이 동아시아와 남미의 경제적 역전을 가져왔다는 기존의 관념이 그다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며, 문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1970년대 이후의 변화를 추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이들 두 지역의 경제적 성취에서의 현저한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1970년대 세계 경제의 위기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발전전략의 수립과 실천에 얼마나 성공했는가에 좌우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Ⅷ. 공업과 남동임해공업지역
1. 입지조건
(1) 최대의 중화학 공업 지역
(2) 입지조건
(가) 원료 및 제품의 수출입에 편리한 항만 건설
(나) 풍부한 노동력과 넓은 소비 시장
(다) 풍부한 공업 용수와 편리한 교통
(라) 풍부한 동력자원 : 수력, 화력, 원자력
(마) 고령토, 흑연 이외의 지하자원은 빈약
2. 임해지역의 공업
1) 부산
섬유, 신발, 기계, 화학 등 각종 산업
2) 울산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비료 등 기간산업
3) 마산
양조, 금속, 기계, 섬유(수출자유지역)
4) 포항
제철, 제강, 기계 등 기간 산업
5) 기타
창원(종합기계), 진해(화학비료), 거제(조선), 충무, 사천, 통영(수산가공물)
3. 내륙공업지역
1) 대구
섬유, 염색, 기계, 화학, 식료품 등
2) 구미
전자, 섬유
3) 문경
시멘트
참고문헌
김광모(1988), 한국의 산업발전과 중화학공업화 정책, 지구문화사
김기철(2002), 공업의 특성과 발전, 경상대학교 / 최고관리자과정 논문집
김상수(1992), 개화기 한국 공업입지의 연구, 동국대학교
김낙년(1999), 1960년대 한국의 공업화와 그 특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백산서당
박영구(1995), 중화학공업의 효율성에 관한 연구, 한국경제학회, 경제학연구, 제43집 제1호
안병직·중촌철·공편저(1993), 근대조선공업화의 연구, ―1930~1945년―, 일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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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3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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