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기술보급과 환경과학기술
1. 필요성
2. 환경기술발전 10대 과제의 이행관리 강화
1) 환경기술개발종합계획 수립
2) 환경시설공사의 설계 입찰제도 운영 개선
3) 신기술 사용 장려제 도입
4) 무실적 신기술의 실증사업 성공불제 시행
5) 환경기술평가의 내실화
6) 최적설계관리사업(Value Engineering)
7) 시설효율성 제고사업
8) 기술정보망 구축사업
Ⅲ. 기술보급과 대체에너지
1. 대체에너지는 막대한 초기투자 소요와 낮은 가격경쟁력 등 경제성 문제에도 불구
2. 최근의 급속한 유가상승과 기후변화협약의 진전에 따라 대체에너지의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음
3. 대체에너지 시장 활성화를 위하여 중점보급대상을 발굴․지원 : 『Green Fields Program』
4. 대체에너지 시범단지 조성(가칭 Green Village)
1) 1단계
2) 2단계
5. 대체에너지 이용 발전전력에 대하여 「우선구매제도」를 전기사업법에 반영하여 대체에너지 이용 보급의 활성화 유도
6. 일정시설에 대한 대체에너지 이용 의무화 도입 검토
1) 대상기관
2) 설치 시설
3) 목표 기준 고시
7. 세제지원 및 인센티브 제도강화
1) 태양열 주택 등에 대한 지방세 감면제도 부활(취득세, 등록세 등) 및 대상품목 확대 검토
2) 주택건설촉진법에 의한 태양열 주택에 대한 국민주택채권 매입의무면제제도를 부활(1999년 폐지)
3) RDF소각시설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 확대
Ⅳ. 기술보급과 식민지시대
1. 설비투자와 원동기 보급
2. 기술자 공급
3. 도량형기 보급
Ⅴ. 기술보급과 농촌지도
참고문헌
Ⅱ. 기술보급과 환경과학기술
1. 필요성
2. 환경기술발전 10대 과제의 이행관리 강화
1) 환경기술개발종합계획 수립
2) 환경시설공사의 설계 입찰제도 운영 개선
3) 신기술 사용 장려제 도입
4) 무실적 신기술의 실증사업 성공불제 시행
5) 환경기술평가의 내실화
6) 최적설계관리사업(Value Engineering)
7) 시설효율성 제고사업
8) 기술정보망 구축사업
Ⅲ. 기술보급과 대체에너지
1. 대체에너지는 막대한 초기투자 소요와 낮은 가격경쟁력 등 경제성 문제에도 불구
2. 최근의 급속한 유가상승과 기후변화협약의 진전에 따라 대체에너지의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음
3. 대체에너지 시장 활성화를 위하여 중점보급대상을 발굴․지원 : 『Green Fields Program』
4. 대체에너지 시범단지 조성(가칭 Green Village)
1) 1단계
2) 2단계
5. 대체에너지 이용 발전전력에 대하여 「우선구매제도」를 전기사업법에 반영하여 대체에너지 이용 보급의 활성화 유도
6. 일정시설에 대한 대체에너지 이용 의무화 도입 검토
1) 대상기관
2) 설치 시설
3) 목표 기준 고시
7. 세제지원 및 인센티브 제도강화
1) 태양열 주택 등에 대한 지방세 감면제도 부활(취득세, 등록세 등) 및 대상품목 확대 검토
2) 주택건설촉진법에 의한 태양열 주택에 대한 국민주택채권 매입의무면제제도를 부활(1999년 폐지)
3) RDF소각시설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 확대
Ⅳ. 기술보급과 식민지시대
1. 설비투자와 원동기 보급
2. 기술자 공급
3. 도량형기 보급
Ⅴ. 기술보급과 농촌지도
참고문헌
본문내용
상시키기 위해서는 도량형기의 사회적 보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개항 이후 기술관제도를 설치하여 도량형보급을 실시하였다. 한편 식민지 조선의 경우에는 보급정책의 실태에 대해서는 현재 확인되고 있지 않으나, 조선총독부\"w통계연보\"x에 도량형기의 위탁판매업자수, 수리허가자수, 판매실적을 게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총독부가 사회의 기술적 조건을 정비하기 위하여 지도를 실시하고 있었다고 예상된다.
식민지기의 도량형기 실질판매액와 판매수를 살펴보면, 제1차대전 후의 불황기에 판매가 저조했지만 불황기에도 조금씩 상승하고 있고, 대공황기에는 설비투자의 경우와는 달리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 이후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제1차대전 후의 불황기와 대공황기 모두 판매실적이 부진했던 일본국내의 경우와 대비된다.
이상의 결과를 19세기 전반 기술발전과 그에 의한 생산성이 제1 단계에서는 생산조직의 변화, 상품의 표준화, 작업도구의 개선에 의해 점증적으로 증가하고, 제2 단계에서 원동기에 의해 작동되는 설비투자에 의해 급증했던 기술도입시기의 미국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길인성(1996), 137-40쪽 Rosenberg, Nathan(1972), 1920년대 말까지를 제1단계, 대공황 회복 이후의 1930년대를 제2단계로 평가할 수 있겠다.
Ⅴ. 기술보급과 농촌지도
농촌지도는 ‘직접지도’와 ‘간접지도’의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본장의 직원들이 출장을 나가 순회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주로 일본인이었던 이들은 한국인 통역을 대동하고 출장에 나섰으며, 특히 야간교육은 환등기를 이용한 시청각 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일제는 본장에 감독 재배전(監督栽培田)을 설치하여 체험지도를 행하였으며, 사업보고서를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때로는 ‘국한문 혼용체’로 작성된 자료도 실었다. 그 밖에도 권업모범장은 유인물의 배부, 강습(講話), 기술자 양성, 실지 지도, 견습생 지도, 본장 소유농지의 소작인 지도 및 품평회 개최 등의 다양한 간접지도 활동을 수행하였다. 역시 종묘장과 도 농사시험장에서 행한 지도사업도 활발하였다. 이곳에서는 주로 농사시찰 조사와 위탁재배 지도조사를 행하였고, 우량종자를 지방의 독농가들에게 위탁 재배시켜 보급하였으며 견습생을 통한 중견농민의 양성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이 시기에는 농정조직에 의한 농촌지도가 매우 활발하였다. 조선총독부에서는 농상공부나 농림국의 농정과와 농무과 등이 농촌지도 업무를 관장하였으며, 지방에서는 도군면 단위의 농정담당 부서가 농사기술원을 두고 이를 수행하였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지역 실정에 맞고 농민이 원하는 지도를 행한다고 표방하였지만, 일제는 그들의 식민정책 수행을 위해 강제적인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함경남도 농사개량필행사항(農事改良必行事項) 독려에 대한 훈령”에는 만약 농민들이 당국의 농사개량 지도에 잘 순응하지 않을 경우 무력이나 경찰력을 동원하도록 규정하였을 정도였다.
이 시기에 있어 농촌지도의 주요 담당자들은 대개 농업기술원들이었다. 특히 조선총독부는 조선농업의 4대 부문인 보통농사, 면작, 양잠, 축산 분야에 많은 전문기술원을 배치하였다. 부군에까지도 기술원을 배치하였는데, 그 호칭은 농사순회교사, 농림기술원, 농수(農手), 농업기수 등으로 다양하였다. 이들은 경종 뿐 아니라 양잠축산 등 농사전반에 대한 장려지도를 담당하였는데, 그 수는 70여명에서 2,343명으로 증가되었다.
한편, 단체나 기관에 의한 농촌지도도 활발하였다. 그러한 형태의 농촌지도사업은 조선농회를 비롯하여 각종 생산자조합, 산업조합, 지주회, 금융조합, 수리조합, 동척 등이 수행하고 있었으나, 그 중에서는 조선농회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다. 조선농회는 지도장려 사업을 위하여 지도기술원을 배치하고 채종답과 모범답을 실시하였으며, 강화회강습회품평회 그리고 공진회(共進會)를 개최하였다. 이 때 농사기술 지도는 주로 농회의 농사기술원들이 주로 담당하였는데, 그들의 수가 4,392명에 이르렀다.
다음으로, 당시 가장 거대한 지주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도 농업기술 지도를 실시하였다. 특히 현재의 사정을 보면 당시 동척은 7만 8,667명의 소작인을 1,001명의 지도원을 통하여 지도하였다. 그 지도항목을 대략 나열해 보면, 우선 ① 심경법의 장려와 ② 벼 품종의 개량이 두드러진 내용이었다. 특히 전자를 위해 동척은 ‘심경강습회’와 ‘쟁기질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후자를 위해서는 우량종자를 소작인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밖에도 ③ 정조식(正條植)의 보급, ④ 금비(金肥)의 장려, ⑤ 녹비(綠肥) 재배 및 퇴비의 증산, ⑥ 현미수납, ⑦ 부업의 장려 등도 추구되었다. 그러한 사실은 동척이 기술지도를 내세워 일본식 농법을 한국에다 강제로 주입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밖에도 수많은 식민지 기생지주들이 조선 수도작의 후진성을 근대적인 관리조직을 통해 일시에 일본과 같은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후꾸오까 농법을 강제로 주입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식민지 시대의 기술보급과 농촌지도는 권업모범장, 종묘장, 도 농사시험장, 농정조직, 그리고 동척과 개별지주가 각각 나름대로 실시하였다. 본장 직원들의 순회교육에 의존하던 권업모범장과는 달리 종묘장과 도 농사시험장의 대농민 지도사업은 주로 농사 시찰조사와 위탁재배 지도와 조사에 의존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식민지기의 농촌지도는 그 외피와는 달리 대개 강압적인 지도방법에 크게 의존하였다. 그밖에 여러 기관단체에 의한 농촌지도도 존재하였다. 일제는 주로 강습회전습회(傳習會)품평회를 통한 지도를 선호하였는데, 이 시기의 대농민 기술지도는 주로 농업기술원들이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강원도농업기술원(2010), 기술보급 영농활용자료 : 농업과학기술연구개발결과 2009
강원도농업기술원(2006), 기술보급 결과활용자료
강창용 외 1명(2001), 농업기술보급체계의 문제와 개선방안, 한국농업교육학회
농촌진흥청(2005), 새기술보급시범사업 추진현황
윤종성(2004), 우리나라의 대체에너지 보급현황과 향후 정책방향, 한국가스안전공사
장재선(1978), 기술보급사업, 농촌진흥청
식민지기의 도량형기 실질판매액와 판매수를 살펴보면, 제1차대전 후의 불황기에 판매가 저조했지만 불황기에도 조금씩 상승하고 있고, 대공황기에는 설비투자의 경우와는 달리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 이후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제1차대전 후의 불황기와 대공황기 모두 판매실적이 부진했던 일본국내의 경우와 대비된다.
이상의 결과를 19세기 전반 기술발전과 그에 의한 생산성이 제1 단계에서는 생산조직의 변화, 상품의 표준화, 작업도구의 개선에 의해 점증적으로 증가하고, 제2 단계에서 원동기에 의해 작동되는 설비투자에 의해 급증했던 기술도입시기의 미국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길인성(1996), 137-40쪽 Rosenberg, Nathan(1972), 1920년대 말까지를 제1단계, 대공황 회복 이후의 1930년대를 제2단계로 평가할 수 있겠다.
Ⅴ. 기술보급과 농촌지도
농촌지도는 ‘직접지도’와 ‘간접지도’의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본장의 직원들이 출장을 나가 순회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주로 일본인이었던 이들은 한국인 통역을 대동하고 출장에 나섰으며, 특히 야간교육은 환등기를 이용한 시청각 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일제는 본장에 감독 재배전(監督栽培田)을 설치하여 체험지도를 행하였으며, 사업보고서를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때로는 ‘국한문 혼용체’로 작성된 자료도 실었다. 그 밖에도 권업모범장은 유인물의 배부, 강습(講話), 기술자 양성, 실지 지도, 견습생 지도, 본장 소유농지의 소작인 지도 및 품평회 개최 등의 다양한 간접지도 활동을 수행하였다. 역시 종묘장과 도 농사시험장에서 행한 지도사업도 활발하였다. 이곳에서는 주로 농사시찰 조사와 위탁재배 지도조사를 행하였고, 우량종자를 지방의 독농가들에게 위탁 재배시켜 보급하였으며 견습생을 통한 중견농민의 양성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이 시기에는 농정조직에 의한 농촌지도가 매우 활발하였다. 조선총독부에서는 농상공부나 농림국의 농정과와 농무과 등이 농촌지도 업무를 관장하였으며, 지방에서는 도군면 단위의 농정담당 부서가 농사기술원을 두고 이를 수행하였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지역 실정에 맞고 농민이 원하는 지도를 행한다고 표방하였지만, 일제는 그들의 식민정책 수행을 위해 강제적인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함경남도 농사개량필행사항(農事改良必行事項) 독려에 대한 훈령”에는 만약 농민들이 당국의 농사개량 지도에 잘 순응하지 않을 경우 무력이나 경찰력을 동원하도록 규정하였을 정도였다.
이 시기에 있어 농촌지도의 주요 담당자들은 대개 농업기술원들이었다. 특히 조선총독부는 조선농업의 4대 부문인 보통농사, 면작, 양잠, 축산 분야에 많은 전문기술원을 배치하였다. 부군에까지도 기술원을 배치하였는데, 그 호칭은 농사순회교사, 농림기술원, 농수(農手), 농업기수 등으로 다양하였다. 이들은 경종 뿐 아니라 양잠축산 등 농사전반에 대한 장려지도를 담당하였는데, 그 수는 70여명에서 2,343명으로 증가되었다.
한편, 단체나 기관에 의한 농촌지도도 활발하였다. 그러한 형태의 농촌지도사업은 조선농회를 비롯하여 각종 생산자조합, 산업조합, 지주회, 금융조합, 수리조합, 동척 등이 수행하고 있었으나, 그 중에서는 조선농회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다. 조선농회는 지도장려 사업을 위하여 지도기술원을 배치하고 채종답과 모범답을 실시하였으며, 강화회강습회품평회 그리고 공진회(共進會)를 개최하였다. 이 때 농사기술 지도는 주로 농회의 농사기술원들이 주로 담당하였는데, 그들의 수가 4,392명에 이르렀다.
다음으로, 당시 가장 거대한 지주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도 농업기술 지도를 실시하였다. 특히 현재의 사정을 보면 당시 동척은 7만 8,667명의 소작인을 1,001명의 지도원을 통하여 지도하였다. 그 지도항목을 대략 나열해 보면, 우선 ① 심경법의 장려와 ② 벼 품종의 개량이 두드러진 내용이었다. 특히 전자를 위해 동척은 ‘심경강습회’와 ‘쟁기질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후자를 위해서는 우량종자를 소작인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밖에도 ③ 정조식(正條植)의 보급, ④ 금비(金肥)의 장려, ⑤ 녹비(綠肥) 재배 및 퇴비의 증산, ⑥ 현미수납, ⑦ 부업의 장려 등도 추구되었다. 그러한 사실은 동척이 기술지도를 내세워 일본식 농법을 한국에다 강제로 주입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밖에도 수많은 식민지 기생지주들이 조선 수도작의 후진성을 근대적인 관리조직을 통해 일시에 일본과 같은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후꾸오까 농법을 강제로 주입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식민지 시대의 기술보급과 농촌지도는 권업모범장, 종묘장, 도 농사시험장, 농정조직, 그리고 동척과 개별지주가 각각 나름대로 실시하였다. 본장 직원들의 순회교육에 의존하던 권업모범장과는 달리 종묘장과 도 농사시험장의 대농민 지도사업은 주로 농사 시찰조사와 위탁재배 지도와 조사에 의존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식민지기의 농촌지도는 그 외피와는 달리 대개 강압적인 지도방법에 크게 의존하였다. 그밖에 여러 기관단체에 의한 농촌지도도 존재하였다. 일제는 주로 강습회전습회(傳習會)품평회를 통한 지도를 선호하였는데, 이 시기의 대농민 기술지도는 주로 농업기술원들이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강원도농업기술원(2010), 기술보급 영농활용자료 : 농업과학기술연구개발결과 2009
강원도농업기술원(2006), 기술보급 결과활용자료
강창용 외 1명(2001), 농업기술보급체계의 문제와 개선방안, 한국농업교육학회
농촌진흥청(2005), 새기술보급시범사업 추진현황
윤종성(2004), 우리나라의 대체에너지 보급현황과 향후 정책방향, 한국가스안전공사
장재선(1978), 기술보급사업,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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