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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상징과 도교

Ⅱ. 상징과 건국신화
1. 상징체계
2. 문화체계

Ⅲ. 상징과 향가
1. 달의 이미지
1) 찬기파랑가의 달
2) 처용가에 나타난 달
2. 식물의 이미지
1) 나무
2) 꽃
3. 물의 이미지
1) 보현십원가의 물
2) <찬기파랑가>의 물

Ⅳ. 상징과 문학

Ⅴ. 상징과 돈키호테

Ⅵ. 상징과 이스라엘

Ⅶ. 상징과 양
1. 양의 비유적 의미와 사회적 상징
2. 양의 수호신적 기능

참고문헌

본문내용

카리스마를 위해 비유가 사용되는 예는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혈연적 관계가 종교적 또는 정치적 관계로 차용되는 일이다. 소위 부자 또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생득적이며, 선천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관계 중에서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견고하다. 종교적·정치적 관계를 강화할 목적으로 이러한 견고성이 차용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교조(敎祖)나 사도가 부모요, 신도는 자식으로 비유된다. 교회에서 하느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종교적 카리스마가 요청되는 상황에 따른 비유적 적응이다.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왕이나 관리를 부모로, 백성을 자식으로 상정하는 예는 많다. 역사적으로 보아 한국의 건국신화에서 상용되고 있는 천지인(天地人)에 대한 혈연적 등치나 유교적 이념에 침윤된 신라시대 이후 군사부 일체론 등이 모두 정치적 카리스마를 강화하기 위해 사용된 하나의 비유적 활용이었다. 신라시대 경덕왕(景德王) 때 향가의 하나인 안민가(安民歌)에는 직접적으로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어머니,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노래되고 있다. 나라와 가정을 일치시키는 형태로서, 치자와 피치자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등치시킨 것이다. 정치적 카리스마를 강화할 필요가 있을 때는 거의 언제나 이러한 비유가 나타난다. 이북에서 ‘김일성 어버이’라고 하는 말도 그렇고, 유신독재시절에 충효를 극히 강조했던 맥락도 따지고 보면 모두 정치적 카리스마를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의 문화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회사내에서 상사와 부하직원간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묶는 예는 흔하다. ‘가족적 분위기’, 또는 ‘우리 가족 사원’하는 등의 문구를 기업체의 사보나 홍보물에서 보기 어렵지 않다.
사회적 관계를 무모와 자식의 관계로 묶는 의도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곧 목자와 양의 관계로 사회적 관계를 묶는 것이다. 양은 목자를 따른다. 반항도 없고 자기 주장도 없으며 오로지 복종하고 이끄는 데로 따른다. 따라서 목자와 양의 관계가 차용되는 맥락을 보면 반드시 사회적으로 상하의 수직적 지배질서나 주종관계가 요청되는 상황이다. 즉 하나의 상징적 굴레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러한 비유가 사회적으로 활용되면서 반자의적인 강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바유적 방편으로 활용되어 왔던 것이다.
2. 양의 수호신적 기능
십이지에 따른 띠동물은 나름대로 질서와 의미를 지닌다. 이미 중국에서 확립되어 우리나라에 수용된 12지에 대한 관념이나 띠동물은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은 요소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원숭이띠의 경우처럼 우리나라에 살지 않은 동물이 들어 있는 경우가 그렇다. 양 역시 그러한 예에 속하는 한 사례일 수 있다. 왜냐하면 양이 본래 우리나라에서 경제성을 지닌 산업용으로 사육된 예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친숙치 않은 동물이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서 양에 대한 상식은 염소와 혼효된 채로 인식되어 왔다. 양띠를 가리켜 염소띠로 관념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양 자체가 비록 가축으로 사육된 예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십이지에 대한 관념은 매우 두터웠던 관계로, 그 전체의 체계 속에 위치하여 나름대로의 기능과 의미를 지녔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상상의 동물인 용이 신앙적 관념 속에 두텁게 자리하면서 나름대로의 추상을 얻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양이 우리나라에 살지 않았다고 해서 양에 대한 믿음이나 그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다른 띠동물에 비해 희박했다거나 약화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 차용된 십이지가 처음으로 사용된 실증적 자료는 신라 경덕왕 때부터 비롯되었다는 호석(護石)이다. 왕의 무덤 주위에 판석 12개에 각각 띠동물을 부조하여 둘렀다. 이것은 열두 방향에서 각기 왕능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세워졌던 것이다. 또 탑파에 새겨지기도 했는데 이 역시 기능은 같다. 그 열두 동물 중의 하나가 바로 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의 수호신적 기능은 이러한 12지 관념 또는 띠동물 전체 속에서 하나로 위치하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무덤 앞에 수호신으로 세우는 양석(羊石), 양마석(羊馬石), 양호석(羊虎石) 등도 모두 양의 수호신적 기능을 민속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이런 사례는 중국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한국의 독특한 묘제(墓制)에 속한다. 특히 양석, 양마석, 양호석 등에서 공통분모는 양이다. 양과 말, 양과 호랑이가 같이 세워지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동물과 함께 수호령으로 세워지는 경우라 하더라도 양만은 반드시 함께 세워지는 것이다. 또 다른 동물과 관계없이 양석만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양은 그지없이 순한 동물이다. 그러나 순한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듯이 양 또한 그런 식으로 해석되어 수호신으로 취해졌을 것이다. 인성에 대한 해석이 양을 무덤의 수호신으로 세우게 된 배경이었던 것이다. 양은 남을 먼저 공격하는 일이란 없다. 다만 공격을 받으면 대항을 할 뿐이다. 그에게는 남달이 날카로운 뿔이 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동물은 대개 공격적이다. 그러나 날카로운 뿔을 가진 동물은 방어적이다. 육식동물의 이빨이 날카로운 것은 그들의 공격적인 성격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대개 초식동물만이 뿔을 가진다. 순하고 겁이 많은 동물일수록 뿔을 가진다.
동물의 속성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그를 하나의 전통적인 민속으로까지 장치한 예가 바로 양석(羊石)이다. 선조의 무덤을 수호하는 동물상을 세울 경우 공격적인 동물보다는 방어적인 양이 우선적이며, 즐겨 취해진 예에서 우리 민족의 한 집단적 성격을 살필 수도 있다.
참고문헌
김낙필, 도교의 원상징과 무극·태극, 한국원불교학회, 1996
김진석, 문학교육과 상징, 서원대학교, 2001
박미정, 향가의 기원성에 대한 유형적 고찰, 대구대학교, 2009
서철원, 건국신화의 여신 형상과 그 문화사적 의미, 한민족문화학회, 2010
여한구,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상징행위에 관한 연구, 강남대학교, 2000
전혜찬,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와 세 가지 상징주의 시학 원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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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8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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