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선, 무시선법, 동정일여, 일상수행, 삼학병진, 사종삼매]무시선(무시선법)과 동정일여, 무시선(무시선법)과 일상수행, 무시선(무시선법)과 삼학병진, 무시선(무시선법)과 사종삼매, 무시선(무시선법)과 목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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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시선, 무시선법, 동정일여, 일상수행, 삼학병진, 사종삼매]무시선(무시선법)과 동정일여, 무시선(무시선법)과 일상수행, 무시선(무시선법)과 삼학병진, 무시선(무시선법)과 사종삼매, 무시선(무시선법)과 목우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무시선(무시선법)과 동정일여
1. 동시유념 정시무념
2. 동중정 정중동
3. 동정간 평상심

Ⅲ. 무시선(무시선법)과 일상수행

Ⅳ. 무시선(무시선법)과 삼학병진

Ⅴ. 무시선(무시선법)과 사종삼매

Ⅵ. 무시선(무시선법)과 목우도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執心工夫가 잘되면 마음을 놓아 自適하면서 다만 마음가는 것을 보아 그 妄念만 제재하기를 마치 소길들이는 이가 소의 고삐는 놓고 소가 가는 것만 제재하는 것으로 놓아 맡겨 보되 온전한 대중만은 잡아야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상시응용주의사항 六條中에 第一條 응용하는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라한 조목중 온전한 생각을 의미하며 곧 올바른 대중심으로 맡겨 나가는 觀心工夫의 方法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를 보는 사람이 위험한 것만 챙기고 어린이 마음대로 맡겨 두는 것과 같아서 만약 자라는 어린아이를 계속 잡고만 있고, 自由를 주지 않으면 잘 자랄 수 없는 것과 같이 많이 길들여진 소에게 맡기는 것이 목동의 할 일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명의 목우도를 圓佛敎 敎理上 觀心의 眼目에서 보면 第五圖 馴伏은 목우에게 맡기어 따르게 하고, 第六圖 無碍는 맡겼으되 걸림이 없는 상태이고 第七圖 任運은 소에게 맡겨진 極致로서 목동은 깊은 잠이 든 상태에 이른다고 볼 수 있으며 이 觀心의 단계에서도 有念의 대중은 필요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 觀心에서 한 단계 더 나가면 無心의 상태에 이른다. 무시선장에 보면 …동하지 아니하면 이는 도심이 익어가는 증거인 줄로 알라. 그러나 마음이 동하지 아니한다 하여 즉시에 방심은 하지 말라. 이는 심력을 써서 동하지 아니한 것이요, 자연히 동하지 아니하여야 길이 잘든 것이니라고 밝히고 있다.
정산종사는 관심공부가 순숙하면 본다는 상도 놓아서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사람과 소가 둘이 아닌 경지에 들어가 동과 정이 한결같이 하는 것이다 라 하여 무심의 공부단계를 無念의 수행으로 보아 경계에 당하면 저절로 절도에 맞는 경지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천만경계에 動하지 아니하면 이것이 內心의 無心狀態로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아니한 담박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보명의 목우도에서 찾아보면 第八圖 相忘은 밖으로 대립하지 않고 안으로 차별하지 아니한 人牛等位自他平等, 純眞無作 상태의 무심이며 第九圖 獨照는 覺體의 자기, 法性의 자기, 聖位의 자기로써 일체의 佛眼에 비친 光明三昧 상태의 무심이라 볼 수 있다.
이상의 무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修禪하게 되면 動靜間에 마음의 自由를 얻게 되는 상태로써 무시선장에 보면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사람이 만일 오래 오래 선을 계속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 즉 철주의 중심이 되고 석벽의 외면이 되어 부귀영화도 능히 그 마음을 달래어 가지 못하고 무기와 권세로도 능히 그 마음을 굽히지 못하며 일체법을 행하되 걸리고 막히는 바가 없고 진세에 처하되 항상 백천 삼매를 얻을지라
즉 철주의 중심이 되고 石壁의 外面이 되어 어느 무엇하나 사로잡히지 않는 상태의 究竟과 소도 사람도 다 허물어지고 오직 전체가 一眞法界의 法道場으로 頭頭物物이 부처 아님이 없는 경지가 나타난다. 이것을 정산종사는 能心이라고 표현했으며 따라서 動하여도 動하는 바 없고 靜하여도 靜하는바 없으되 動하여도 分別에 着이 없고 靜하여도 分別이 節度에 맞아 大小有無에 걸림이 없이 是非利害를 자유로 건설하는 단계라 볼 수 있다. 이것을 보명의 목우도에서 보면 第十圖인 雙泯은 곧 마음의 자유를 얻되 능히 法度에 맞는 상태로 自由와 法度가 合一된 경지이며 비록 方便을 써도 그 모두가 법도에 맞지 않는 바 없어서 중생으로서는 측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萬能의 境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無時禪 工夫는 普明의 牧牛圖와 통하는 訓練하는 法, 性品鍛鍊의 法으로써 執心단계의 유념공부, 관심단계의 집심에 의한 표준으로서 유념공부, 무심단계의 무념공부, 능심단계의 무심에 의한 활용으로서 유념공부 수행을 말함으로써 이는 곧 유념무념을 아우르며 자재하는 修行法 이라 할 수 있다.
Ⅶ. 결론
선은 진정한 인격자로서 향유할 수 있는 자유를 찾기 위한 것으로서 불타의 선은 편벽선에서 중도선으로, 달마의 선은 습선에서 반야선으로, 소태산의 무시선은 경절선에서 무간단선으로 발전, 전개되어 왔다. 이 방향은 국한되고 일그러진 분야를 국한없이 트이게 하여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얻게하기 위한 것으로써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유념일변도나 무념일변도의 수행방향은 선종상의 건전한 발전보다는 종파와 종풍속에서 큰 방향을 잃기쉬웠다. 따라서 무시선은 지난날의 이러한 유념중심공부와 무념중심공부의 분열이 없어지고 천만경계속에서 오직 유념과 무념이 자유활용 되어지는 진공묘유의 원만한 선법이라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성품을 오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게하고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 무시선법은 종래 선법의 편벽성과 습선적 경향을 극복케 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또한 무시선의 의미속에는 동정일여의 수행으로 과거 종교가에서 정공부에 치우쳐 동시의 작업을 무시하던 경향을 시정하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으며 그 수행의 바탕을 생활에 두고 있기 때문에 선이 따로 있지않고 작업하는 가운데 바로 선이 있게 된다. 즉 선으로 생활을 선법화하고 선의 수행이 모든 작업을 할 때에 바탕이 되어 원만하게 모든 일을 성취하여 나가자는 것이다. 곧 생활속에서 하는 선, 일속에서 하는 선으로써의 무시선은 용심 및 사물을 바르게 하는 활선이며 실천방법으로서 삼학병진과 유무념공부를 제시했다. 즉 유무념공부는 유념 할 자리에는 반드시 유념하고, 무념 할 자리에는 반드시 무념하다가 오래 오래 순숙되면 유념 가운데 무념하고 무념 가운데 유념하여 유무념간에 원만히 수행하는 무시선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 김순임(1996), 원불교 선의 특성 : 무시선 연구중심으로, 한국종교사학회
○ 박혜훈(1999), 무시선의 단계적 실수 방안,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 박희종(2009), 무시선법 중 경계에 대한 인식과 수행의 단계 고찰,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 최광현(1999), 일상수행의 요법 무시선 : 1·2·3조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 최광현(2002), 수행문에서 본 일원상 : 목우도와 무시선을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 한기두(1976), 무시선에 이르는 선문기초사상, 원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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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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