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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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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불교조각과 불교공예
1. 범종(梵鍾)
2. 법고(法鼓)
3. 목어(木魚)
4. 운판(雲板)
5. 쇠북[金鼓]
6. 경(磬)
7. 바라
8. 금강저
9. 금강령
10. 목탁

Ⅲ. 불교조각과 불상

Ⅳ. 불교조각과 고구려시대

Ⅴ. 불교조각과 통일신라시대

Ⅵ. 불교조각과 조선시대

참고문헌

본문내용

주는 보여준다.
또, 일제 때 발굴조사된 평양시 동쪽의 청암리사지에서는 8각기단의 목탑지가 발견되기도 해 광범위하게 목탑의 조성이 있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고구려의 것으로 전하는 탑비와 부도는 전혀 없다.
Ⅴ. 불교조각과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시대에는 백제와 고신라의 불교조각 전통 위에 새로이 수용되는 중국 당나라 및 인도, 서역과의 문화교류로 불교미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가장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불상조각도 신체비례에 균형이 잡히고 얼굴의 세부 표현이나 몸체의 양감 및 사실적인 옷주름 처리, 정교한 영락장식 등의 표현에서 뛰어난 조각솜씨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유물들은 대부분 경주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8세기의 감산사지 출토 석조아미타불 및 미륵보살입상이나 석굴암 불상군 등에서는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중국에서 발달한 불상양식의 신라적인 수용과 변형에 따른 한국적 특징을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석굴암 불상군에 나타난 종교적인 숭고미와 완벽한 조각기술은 뛰어난 예술성의 극치이며 균형과 조화를 이룬 석굴 속에는 불, 보살, 천인, 나한들이 모여서 이상적인 불국토를 이루고 있다. 신라 후기에는 금동불이 적어지고 조각수법이 쇠퇴하는 대신 석굴암의 본존을 따르는 항마촉지인 불좌상 형식과 지권인(智卷印)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새로이 등장하여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까지 유행하였다.
이와 같이,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은 삼국시대의 양식을 소화하고 그 동안 축적된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 전래된 당의 양식을 흡수하면서 완숙한 조각기술과 깊은 신앙심으로 신라 조각미술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삼국통일로 인한 국력의 충실과 정치적 안정은 신라 사람들로 하여금 우수한 불상을 조성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으므로, 영토 전역에 광대한 사찰이 많이 건립되었고 수많은 불상이 조성되었다.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석조(石造), 금동(金銅), 마애불(磨崖佛)은 물론 새로 철조(鐵造)의 불상을 조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신라불상의 원숙한 기법도 8세기 중엽을 정점으로 차츰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신라는 통일 후 약 30년의 과도기를 지나면서 양식상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같이 변화를 일으킨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의 특징은,
① 육계는 작아지고 나발이 많아진다.
② 미소가 사라지고 단정하며, 근엄한 모습이 나타난다.
③ 목에 3도가 나타난다.
④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이 많아진다.
⑤ 의문(衣文)의 표현에서 좌우 대칭의 양식이 사라지고 자유롭게 표현된다.
⑥ 상현좌의 형식이 사라지고 의단(衣端)은 대좌 위로 올라가 대좌가 완전히 노출된다.
⑦ 대좌는 복련(伏蓮)의 하대석(下臺石), 8각 혹은 6각의 중대석(中臺石), 앙련(仰蓮)의 상대석으로 구분된다.
⑧ 수인은 통인(通印)이 사라지고 다양한 수인이 생긴다.
⑨ 보살상의 자세는 정면 직립의 자세에서 3존일 때 본존 쪽으로 틀거나 독존(獨尊)일 때 3굴(三屈)의 자세를 취하는 자유로운 표현이 나타난다.
⑩ 보살상의 천의가 앞에서 X형으로 교차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된다.
⑪ 보살상의 장신구가 보다 많아진다.
⑫ 모든 불상은 살이 찌고 관능적인 표현이 된다.
이상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8세기 후반부터는 인체묘사에 착실함이 없어지고 비례의 불균형을 가져와 위축된 조형이 되었고 의문은 평면적이고 도식적인 것이 되어 퇴화의 길을 걷게 된다.
삼국시대에는 미륵반가사유상이 많이 조성되어진 데 비하여 통일신라시대에는 비로자나불상과 아미타여래상이 많이 조성되었다. 결국 불교사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예라 하겠으나 말기에 이르러 조상의 기법이 퇴화하게 되는 것은 불상 숭배에 철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선종 전래의 영향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불교사상의 쇠퇴가 가져다 준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신라불상의 조상은 9세기에 이르면 철조불상을 조성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 대표적인 불상
경주 석굴암의 석굴조각(국보 24호), 고운사 석조 석가여래좌상(보물 246호),
각연사 석조 비로사나불상(보물 433경주 석굴암의 석굴조각호) 등
Ⅵ. 불교조각과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들어와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불교는 고구려에 처음 전래된 후 고려 말까지 약 1천년동안 국민의 사상과 생활을 지배해 왔으며, 조선시대의 성리학은 확고한 내세관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지배계층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믿어졌다. 하지만 전시대에 비하여 불상조상의 예는 훨씬 줄어들었으며, 원만하고 존엄성 있는 불상의 모습은 졸렬한 조각기술로 인해 더욱 쇠퇴하여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지취를 감추었다.
양주 수종사(水鐘寺) 8각 석탑 내에서 발견된 높이 9.4㎝의 소규모 금동보살반가사유상(金銅半跏思惟像)은 조선시대의 불상으로는 보기 드문 반가상으로 삼국시대의 반가상과는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오른쪽 다리를 내린 반가상의 자세로,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오른편 팔을 왼발 위에 고여서 손끝으로 턱을 받치는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보주로 장식된 화관(花冠)을 썼고 육계는 화관위로 높게 솟아있으며 머리카락은 어깨를 덮는다. 또한 목에는 굵은 목걸이가 있고 하체와 대좌를 덮은 옷 주름은 매우 둔중하여, 전체적으로 볼 때 인체 파악에서 정확성이 부족하며 삼국시대의 반가상과는 비교할 수 없다.
조선시대의 불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인체 파악이 불가능하다.
2. 등이 앞으로 굽고 턱이 앞으로 나와 있다.
3. 얼굴에는 개성이 나타나 있지 않다.
4. 법의가 두꺼워 인체 표현이 생략되었다.
5. 숭유억불책으로 새로운 불상 조상의 예가 적어졌다.
참고문헌
김리나(2004), 한국 불교조각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미술사학회
임석규(2007), 불교조각 : 불상에 보이는 발해 불교의 성격, 삼성그룹
양은경(2008), 대륙과 해양을 품은 고구려 불교조각, 한국고대학회
이옥수(1988), 통일신라 불교조각양식이 일본 내량조각에 미친 영향, 홍익대학교
어준일(2011), 16세기 조선시대의 불교조각 연구, 홍익대학교
최응천(2010), 한국 불교공예의 특성과 감식, 동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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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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