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역사
1. 주자학도(1880 - 1905)
2. 애국계몽활동가(1905 - 10)
3. 혁명적 독립운동가(1910 - 36)
Ⅲ.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사상
Ⅳ.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근대민족주의
Ⅴ.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아나키즘(무정부주의)
1. 아나키즘 전향시기 논쟁
2. 1920년대를 전후한 그의 저술에 나타난 이념상
1) 1920년대 이전의 사상
2) 1920년 : 여론육성에 대한 촉구
3) 1921년 : 민중혁명과 아나키즘의 혼재기
4) 1923년 : 의열단 선언문에 나타난 아나키즘
5) 1924년 : 권력과 종교에 대한 부정
6) 1925년 : 주체성 강조
7) 1928년 : 본격적 아나키즘 활동기
Ⅵ.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문학활동
1. 꿈하늘
2. 용과용의 대격전
3. 단재의 역사전기소설
Ⅶ. 결론
참고문헌
Ⅱ.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역사
1. 주자학도(1880 - 1905)
2. 애국계몽활동가(1905 - 10)
3. 혁명적 독립운동가(1910 - 36)
Ⅲ.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사상
Ⅳ.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근대민족주의
Ⅴ.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아나키즘(무정부주의)
1. 아나키즘 전향시기 논쟁
2. 1920년대를 전후한 그의 저술에 나타난 이념상
1) 1920년대 이전의 사상
2) 1920년 : 여론육성에 대한 촉구
3) 1921년 : 민중혁명과 아나키즘의 혼재기
4) 1923년 : 의열단 선언문에 나타난 아나키즘
5) 1924년 : 권력과 종교에 대한 부정
6) 1925년 : 주체성 강조
7) 1928년 : 본격적 아나키즘 활동기
Ⅵ.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문학활동
1. 꿈하늘
2. 용과용의 대격전
3. 단재의 역사전기소설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별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재는 무정부주의의 사상적 토대 위에서 민중에 대한 부당한 착취가 어떻게 가능했던가를 보여주면서 이데올로기와 국가제도에 대한 강력한 부정의 의지를 표명한다. 이것은 지배와 피지배라는 관계 자체를 부정하고자 했던 그의 사상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며 진화론과 자강론 또는 영웅주의 사관에서 벗어나서 모든 정치제도를 부정해야 했던 무정부주의자인 단재식의 표현방법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단재의 역사전기소설
단재는 역사전기소설을 많이 창작했다. 그것은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의 운명을 일으켜 세우고자 영웅을 기대하던 조선 민중들의 열망을 작품으로 담아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영웅대망론으로 영웅이 출현하여 나라를 구해줄 것으로 믿고 영웅의 힘으로 조선사람들을 단결하게 할 수 있다는 민족의식의 소설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당시 애국계몽주의자들은 열강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하여 국권을 수호하고 근대시민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해야 한다는 과제를 문학작품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즉, 문학의 공리적 측면을 중시하여 민족의 영웅을 상상 속에서 재창조하려는 의도에서 역사전기 소설을 지은 것이다. 한편 애국계몽기에는 많은 작품들이 번안되었는데 단재 또한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번안하면서 국가를 부흥시킨 다른 나라의 위인들을 소개하고자 했다. 한마디로 역사전기소설은 국권상실에 처한 민중들의 민족애와 저항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재는 「을지문덕」(1908), 「이순신전」(1908), 「최도통전」(1909) 등의 역사전기소설을 남겼다.
Ⅶ. 결론
우리는 신채호 선생이 위대한 민족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쉽게 상기한다. 하지만 신채호 선생이 단순히 ‘민족주의자’일 뿐이었다면, 오히려 우리는 현재를 사는 인간으로서 그에게 반감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한다는 특성상, 민족 중심의 폐쇄적이고 위험한 이데올로기라고 인식되기 쉬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민족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민족주의 또한 위선이고 허위라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학자들도 상당하지 않은가?
하지만 민족주의를 신봉했던 신채호 선생의 역사 인식과 사상은 보수와 폐쇄로 점철시킬 수 없는 넓고도 유연한 것이었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부정적인 측면과 반대의견이 존재함에도 불구, 이러한 사상이 한 나라의 독립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개입되어 맞물리기 시작하면 매우 이상적인 사상으로 작용되는 게 보통이다. 나는 신채호 선생이 사가로서의 권위를 지니게 된 이유를 그가 민족주의자라는 사실에서보다는 그의 민족주의자답지 않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역사인식에서 찾고 싶다. 나는 여러 자료를 통해 그의 이러한 역사인식에 대해 살펴 볼 수 있었다.
신채호 선생은 기본적으로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있어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편협했던 인식의 틀을 아쉬움 없이 깨어 부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일례로 그는 한 때 영웅주의 사관-소수의 영웅이 국운을 좌지우지한다는-을 가지고 있었으나, 망명생활 중 고대문화의 폭넓은 이해를 통해 그것을 극복했다. 또한 그는 사대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인 역사학을 단호히 거부하며, 근대 역사학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무튼 신채호 선생은, 그의 사관 중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영웅의 자리를 민중의 함성으로 채웠으며, 이 후 민중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꿋꿋이 전개해 나갔다. 그는 사상과 학문을 바탕으로, 타국의 검은 손아귀로부터 벗어난 자주민족국가의 성립을 꾀했으며 정치와 사회의 부정한 족쇄를 제거하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와 학문을 단순한 앎의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모범을 보여준 것이었다.
민족주의는 판이하게 다른 양 날을 가진, 어찌 보면 굉장히 위험한 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신채호 선생은 기꺼이 이 것을 수용하였다. 억압에서 탈피하기 위한, 그리고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시도는 언제 어디서고 정당한 것. 신채호 선생이 제창한 민족주의 또한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 민족에게 정당하고 선한 것일 따름이었다. 또한 그는 날카롭고 험하기 그지없는 민족주의의 칼날을 갈아 빛나는 훈장을 만들다. 이 훈장은 민족의 혼 자체로서, 민족의 가슴에 그리고 신채호 선생 자신의 가슴에 오롯이 새겨져 독립운동을 추진하는 새로운 활력이 되어 주었다. 이처럼 조국과 역사의 수호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숭고한 정신에 고개가 수그려 진다. 그는 차디찬 감옥 안에서 스러져 갔지만, 그의 고귀한 정신은 후세에 길이 전해져 많은 이들의 본이 되고 있다.
학문, 사상적인 면에서 볼 때 신채호는 갈대와 같은 유연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실천적인 면모를 고려할 땐 그와 너무나 대조적이게도 단단한 뿌리와 줄기를 가진 고목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신채호 선생의 크디 큰 그릇에 담긴 그 숭고한 뜻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고픈 마음이다. 앞으로는 역사를 올바르고 공부하기 위해 노력하겠노라 새로 마음을 잡아본다.
현재 우리는 여러 민족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일본의 교과서 왜곡문제, 그리고 중국과의 고구려사 논쟁 문제, 또 최근 핫 이슈로 떠오른 독도 문제까지..
매스컴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접할 때마다 과거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위대한 선인들의 정신이 아쉽기만 하다. 그들의 정신을 돌이켜 배워가며, 올바르고 슬기로운 대처법을 발견해 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참고문헌
김기승 / 신채호의 독립운동과 역사인식의 변화,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2011
류지아 / 신채호의 민중혁명론과 역사인식, 효원사학회, 2009
배우성 / 조선후기 역사학과 신채호, 그리고 21세기,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1
이만열 / 단재 신채호의 민족운동과 역사연구,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0
장은정 / 신채호의 아나키즘에 투영된 민족 개념, 경인교육대학교기전문화연구소, 2010
정영순 / 제2장 단재 신채호의 역사사상에 관한 연구, 한국민족사상학회, 2011
3. 단재의 역사전기소설
단재는 역사전기소설을 많이 창작했다. 그것은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의 운명을 일으켜 세우고자 영웅을 기대하던 조선 민중들의 열망을 작품으로 담아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영웅대망론으로 영웅이 출현하여 나라를 구해줄 것으로 믿고 영웅의 힘으로 조선사람들을 단결하게 할 수 있다는 민족의식의 소설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당시 애국계몽주의자들은 열강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하여 국권을 수호하고 근대시민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해야 한다는 과제를 문학작품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즉, 문학의 공리적 측면을 중시하여 민족의 영웅을 상상 속에서 재창조하려는 의도에서 역사전기 소설을 지은 것이다. 한편 애국계몽기에는 많은 작품들이 번안되었는데 단재 또한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번안하면서 국가를 부흥시킨 다른 나라의 위인들을 소개하고자 했다. 한마디로 역사전기소설은 국권상실에 처한 민중들의 민족애와 저항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재는 「을지문덕」(1908), 「이순신전」(1908), 「최도통전」(1909) 등의 역사전기소설을 남겼다.
Ⅶ. 결론
우리는 신채호 선생이 위대한 민족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쉽게 상기한다. 하지만 신채호 선생이 단순히 ‘민족주의자’일 뿐이었다면, 오히려 우리는 현재를 사는 인간으로서 그에게 반감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한다는 특성상, 민족 중심의 폐쇄적이고 위험한 이데올로기라고 인식되기 쉬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민족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민족주의 또한 위선이고 허위라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학자들도 상당하지 않은가?
하지만 민족주의를 신봉했던 신채호 선생의 역사 인식과 사상은 보수와 폐쇄로 점철시킬 수 없는 넓고도 유연한 것이었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부정적인 측면과 반대의견이 존재함에도 불구, 이러한 사상이 한 나라의 독립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개입되어 맞물리기 시작하면 매우 이상적인 사상으로 작용되는 게 보통이다. 나는 신채호 선생이 사가로서의 권위를 지니게 된 이유를 그가 민족주의자라는 사실에서보다는 그의 민족주의자답지 않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역사인식에서 찾고 싶다. 나는 여러 자료를 통해 그의 이러한 역사인식에 대해 살펴 볼 수 있었다.
신채호 선생은 기본적으로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있어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편협했던 인식의 틀을 아쉬움 없이 깨어 부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일례로 그는 한 때 영웅주의 사관-소수의 영웅이 국운을 좌지우지한다는-을 가지고 있었으나, 망명생활 중 고대문화의 폭넓은 이해를 통해 그것을 극복했다. 또한 그는 사대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인 역사학을 단호히 거부하며, 근대 역사학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무튼 신채호 선생은, 그의 사관 중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영웅의 자리를 민중의 함성으로 채웠으며, 이 후 민중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꿋꿋이 전개해 나갔다. 그는 사상과 학문을 바탕으로, 타국의 검은 손아귀로부터 벗어난 자주민족국가의 성립을 꾀했으며 정치와 사회의 부정한 족쇄를 제거하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와 학문을 단순한 앎의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모범을 보여준 것이었다.
민족주의는 판이하게 다른 양 날을 가진, 어찌 보면 굉장히 위험한 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신채호 선생은 기꺼이 이 것을 수용하였다. 억압에서 탈피하기 위한, 그리고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시도는 언제 어디서고 정당한 것. 신채호 선생이 제창한 민족주의 또한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 민족에게 정당하고 선한 것일 따름이었다. 또한 그는 날카롭고 험하기 그지없는 민족주의의 칼날을 갈아 빛나는 훈장을 만들다. 이 훈장은 민족의 혼 자체로서, 민족의 가슴에 그리고 신채호 선생 자신의 가슴에 오롯이 새겨져 독립운동을 추진하는 새로운 활력이 되어 주었다. 이처럼 조국과 역사의 수호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숭고한 정신에 고개가 수그려 진다. 그는 차디찬 감옥 안에서 스러져 갔지만, 그의 고귀한 정신은 후세에 길이 전해져 많은 이들의 본이 되고 있다.
학문, 사상적인 면에서 볼 때 신채호는 갈대와 같은 유연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실천적인 면모를 고려할 땐 그와 너무나 대조적이게도 단단한 뿌리와 줄기를 가진 고목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신채호 선생의 크디 큰 그릇에 담긴 그 숭고한 뜻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고픈 마음이다. 앞으로는 역사를 올바르고 공부하기 위해 노력하겠노라 새로 마음을 잡아본다.
현재 우리는 여러 민족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일본의 교과서 왜곡문제, 그리고 중국과의 고구려사 논쟁 문제, 또 최근 핫 이슈로 떠오른 독도 문제까지..
매스컴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접할 때마다 과거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위대한 선인들의 정신이 아쉽기만 하다. 그들의 정신을 돌이켜 배워가며, 올바르고 슬기로운 대처법을 발견해 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참고문헌
김기승 / 신채호의 독립운동과 역사인식의 변화,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2011
류지아 / 신채호의 민중혁명론과 역사인식, 효원사학회, 2009
배우성 / 조선후기 역사학과 신채호, 그리고 21세기,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1
이만열 / 단재 신채호의 민족운동과 역사연구,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0
장은정 / 신채호의 아나키즘에 투영된 민족 개념, 경인교육대학교기전문화연구소, 2010
정영순 / 제2장 단재 신채호의 역사사상에 관한 연구, 한국민족사상학회, 2011
추천자료
- 언론인 독립운동가 아나키스트-신채호
- 단재신채호의 문학사상
-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 단재신채호의_민족주의
- [독립운동가]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의사,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열사), 독립운동가 유관...
-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 장군, 독립운동가 강기동 의병대장,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 독...
- 독립운동가 백암 박은식 선생, 만해 한용운 시인,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열사, 오의선 열사...
- 독립운동가 이봉창 열사(의사), 독립운동가 매천 황현 열사,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의사, ...
-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민족사학][문학]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연혁, 독립운동가 단재 ...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