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역사, 정당체제,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정치자금제도,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선거제도,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의원후보선출제도,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 방위정책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역사, 정당체제,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정치자금제도,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선거제도,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의원후보선출제도,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 방위정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역사

Ⅲ.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정당체제

Ⅳ.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정치자금제도

Ⅴ.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선거제도

Ⅵ.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의원후보선출제도
1. 좌파민주당(DS)
2. 전진이탈리아(Forza Italia)

Ⅶ. 이태리정치(이탈리아정치)의 방위정책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 심지어는 PSI(Partito Socialista Italiano; 이탈리아 사회당)와의 경쟁관계에서 고립되지 않아야만 했고, 밖으로는 유럽 좌파세력들로부터 배척되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PCI는 INF 배치문제가 하나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 표적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즉 PSI는 이 논쟁을 통해 PCI를 고립시키고 자신들이 나토의 입장을 명확히 대변하는 유일한 좌파정당이라는 정당성을 획득하려고 했던 것이다. PCI는 이념적 노선과 친소련 노선이 결코 동일시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려 했지만, 그들은 국내의 정치적 균형이라는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PSI의 입장은 PCI에 비하면 매우 간명하다. PSI는 \"군사적 균형 없이 평화전략은 불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나토의 INF 배치결정을 지지하였다. 물론 그것은 PCI와 같은 호전적인 주장은 아니었다. PSI 역시 DC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균형은 핵무기 감축협상을 용이하게 만들 것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있었고 PCI와 같이 새로운 균형은 보다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PCI와는 달리 PSI는 서방진영이 무언가 구체적이고 믿을 만한 교환조건을 제시한다면 소련이 자신들의 미사일을 해체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PSI에게 유로미사일 논쟁은 좌파정당도 이념적인 제약을 넘어 안보 및 방위정책에 책임있는 정책정당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좋은 계기였다. 정부의 나토 정책에 대한 PSI의 지지는 PCI를 고립시키는 동시에 DC와의 연합, 그리고 그것을 통한 연정참여의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일견 격렬하고 활발했던 논쟁이 결국 국내정치의 주도권 경쟁에서 시발된 것이고 그 귀착점도 동일하다는 점이다. 그러한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선거시기의 핵의 탈쟁점화 현상이다. 어떤 정당도 선거 전후의 분위기를 경색시키고 정치적 논쟁을 격화시키는 핵문제를 끄집어내어 표를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는 비단 정치세력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이탈리아는 일반대중은 물론이고 언론, 대학마저 핵문제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 유럽에서도 대단히 희한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로미사일은 이탈리아의 정치세력들에게 여러 쟁점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Ⅷ. 결론
전진이탈리아의 성공적 정치무대 등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가톨릭 하부정치문화의 소멸과 후견주의 정당지배체제에 대한 정당혐오증의 확산이라는 정치사회적 배경과 단순다수대표제의 도입이라는 제도적 조건에서 비롯된 정치적 지각변동의 과정에서 \'미디어 매개 인물 정당\'으로서의 마케팅 전략의 성공이라는 주관적 요인이 작동함으로써 가능했다. 곧 가톨릭 하부정치문화의 해소와 후견주의 기성정당에 대한 환멸로 기민당 지지자들이 신생정당이자 같은 보수주의 진영인 전진이탈리아와 성공적인 기업인이자 언론 황제인 베를루스코니에게 대거 이동해 갔던 것이다.
또한 성공적인 미디어 매개 정당으로서 전진이탈리아는 마케팅 전략을 통해 매력적인 선거공약을 제시함으로써, TV의 영향에 많이 노출된 층에게 호소하는 데에도 일정하게 성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진이탈리아 지지층의 사회경제적 특성과 지역적 분포를 통해 볼 때, 미디어 매개와 인물화 상징을 통한 전략의 영향은 제한된 정도에서만 인정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한편, 이탈리아 \'제1공화국\' 시절에는 좌파정당들과 중도정당들이 구심점이 되었던 반면, \'제2공화국\'에서는 변동기에 우파와 극우파가 강화되었다가 최근에는 새로운 중도정당들이 정치무대를 장악해 가고 있다. 선거에서 네오파시스트인 민족연맹이 14~15%를 기록했다가 이후 선거에서는 12%로 후퇴하였으며, 북부지역주의 정당으로서 우익을 점한 북부동맹에 대한 지지율도 10%를 넘었으나 이후 4%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민족연맹이 탈파시즘에 성공하지 못했듯이, 북부동맹도 선거에 즈음해서는 분리주의를 다시 강조함으로써 중도화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면 중도우익 또는 중도에 위치한 전진이탈리아와 새로운 선거연합체인 마르게리타(Margherita)는 각각 약 30%와 15%의 지지율을 얻어 이탈리아 정국을 주도해 가는 듯하다.
결국 \'제2공화국\' 이탈리아의 정당체제는 가톨릭-보수주의 정치문화가 해소된 공간에 새로운 중도-보수가 등장하면서 중도-보수와 온건-좌파라는 새로운 양대 하부정치문화로 자리잡아 간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탈리아 유권자들의 중도화 경향이 뚜렷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 북부동맹과 민족연맹도 기존의 중도화 전략을 재개하거나 지속할 가능성이 크며, 전진이탈리아 또한 마케팅 전략에 의해 적어도 선거공약에 있어서는 중도화 경향을 가속화하리라고 보인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집권했던 베를루스코니와 전진이탈리아가 집권기간 동안 과거 정부나 기성정당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1년이 못되어 실각하고 연이은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듯이, 현 연정 또한 그러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지난 선거의 5대 공약은 마케팅 전략의 결과라고 하지만, 대부분 실행 가능성이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연금인상과 같은 공약은 지킬 의사도 없는 내용으로서 지난 4월 총파업에서 본 바와 같이 역방향으로 치닫고 있기까지 하다. 지난 연정 실패의 경험과 현 연정의 진행과정을 볼 때, 전진이탈리아와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전망은 선거전략 위주의 미디어 매개 정당과 자본의 한 분파로서 정치에 개입했다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김종법(2010), 이탈리아 부패의 정치문화 및 구조적 요인 분석,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 김종법(2008), 이탈리아 좌파정치의 역사·내용·주체, 진보정치연구소
◇ 김종법(2006), 변화와 분열의 기로에 선 이탈리아, 한국국제정치학회
◇ 김종법(2007), 정치적 전환기의 이탈리아, 한국국제정치학회
◇ 이선필(2010), 이탈리아의 언론과 정치권력 간의 관계에 관한 고찰,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 정병기(2000), 이탈리아의 새로운 선거제도와 정치개혁, 대한민국국회
  • 가격7,5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13.07.25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6580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