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도시계획, 기업사회, 섬유산업, 중화학공업]1970년대의 도시계획, 1970년대의 기업사회, 1970년대의 섬유산업,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 1970년대의 민주화운동, 1970년대의 호주(오스트레일리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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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70년대, 도시계획, 기업사회, 섬유산업, 중화학공업]1970년대의 도시계획, 1970년대의 기업사회, 1970년대의 섬유산업,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 1970년대의 민주화운동, 1970년대의 호주(오스트레일리아)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1970년대의 도시계획

Ⅱ. 1970년대의 기업사회

Ⅲ. 1970년대의 섬유산업

Ⅳ.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

Ⅴ. 1970년대의 민주화운동
1. 기층민중 지원운동
1) 60년대 중반부터 실시된 경제개발계획의 모순이 70년대부터 양․질의 양면에서 격화되기 시작
2)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거세지면서 학생과 지식인들은 역사를 변혁시키는 힘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
2. 정치적 민주화운동
1) 반독재 연합전선 구축하여 총공세 펼침. 그러나 여러 부분운동으로 세밀하게 분화되지 못함
2) 학생운동이 비로소 독립적 부문운동세력의 하나로 서기 시작함(전국학생연맹)
3. 민족주의적 이념운동의 태동

Ⅵ. 1970년대의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참고문헌

본문내용

해 출병한 사이 일본군이 침략해 왔을 때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미군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후 미군이 주도하는 방위조약 체제 속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은 호주인들에게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아시아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는 고립적인 호주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도록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자신들의 전쟁이 아니며 영국에 대해 좀 더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인식과 더불어 거대한 영토를 지키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백인 인구를 늘림으로써 아시아인의 침략이라는 가공할 공포와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함께 생긴 것이다. 인구를 늘리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타 유럽 지역의 전쟁 피난민들을 대거 받아들임으로써 상대적으로 동질적이었던 인구 구성이 변하기 시작했다.
문화적으로도 미국의 영향력 강화와 더불어 영국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유럽의 여타 지역 출신 이주민들이 가져온 색다른 문화로 인해서 전통적으로 강했던 영국문화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주해 온 영국계 및 아일랜드계의 이주민들은 주로 농업지역에 정착하여 농장경영을 했으나, 이후 이주해 온 이주민들은 주로 도시에 정착했기 때문에, 앵글로 섹슨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농업지역과 이질적이고 다양한 인구 구성으로 이뤄진 도시 지역의 문화 사이에도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면서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호주인으로서 통합된 문화정체성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전후의 혼란 속에 그 씨앗이 뿌려진 채 잠복해 있던 이러한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는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미국과의 방위 조약에 의거해 미국이 호주의 베트남전 참전을 요구하고 이에 따라 징집이 시작되자 이에 맞서 반전운동이 대대적으로 확산되었고, 낙태 금지에 대한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는 등 신좌파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 집권 해왔던 친미적이고 보수적인 자유당이 실각하고 1972년 노동당이 집권하게 되었다.
노동당의 수상이 된 휘틀람은 문화부장관을 겸임하면서 새로운 호주적 정체성을 수립하고 문화를 진흥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입안하고 지원을 확대하는 데 힘썼다. 문화민족주의에 입각한 이 시기 문화정책의 목표는 대내적으로는 새로운 공통의 국민적 문화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대외적으로는 호주적인 문화의 특성을 널리 알리고 인식시키는 데 있었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호주적 문화가 발전하고 문화산업이 회생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성장한 여성운동의 성과로 인해 전통적으로 강한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들의 관료사회 진출이 확대되었고, 문화 분야에서도 여성들에 대한 지원이 괄목할 만하게 강화되었다. 그 결과 여성들이 문화 분야, 특히 호주의 대표적인 문화산업인 영화산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게 됨으로써 영화산업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여성 친화적이라는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70년대 이후로는 아시아인들에게도 이민의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아시아 지역 이민들이 증가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이 이주해온 유럽 여러 지역 출신의 이주민들로 인해서 민족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호주에 지금까지보다 더 이질적이고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민족 집단들의 문화가 혼합되게 되었다. 인구 중의 42%의 사람들이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적어도 부모 중의 한 사람이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여러 세대에 걸쳐서 지속되고 있는 민족공동체들로 인해서 호주는 이주민 사회(Diasporic society)로 인식될 만한 기반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원주민들의 권리회복운동 역시 토지권리회복운동을 중심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참고문헌
김진희, 서울 1960~70년대 도시계획에서 잠실지구종합개발기본계획의 의미, 서울시립대학교, 2011
문지영, 1970년대 민주화운동 이념 연구, 연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2006
박영구,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추진 행정기관연구, 한국행정사학회, 2011
서희철, 한국 기업경영의 발전과정에서 본 1970년대 한국 기업의 구조적 특성, 상지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 1984
선대원, 한국 섬유산업과 노동시장, 1945년~2004년, 한국경영사학회, 2011
임애덕, 호주(Australia)의 혼외 출생자 : 입양에서 양육으로의 정책변화 분석, 이화여자대학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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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0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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