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의 복식 변화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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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개화기의 복식 변화와 특징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ㆍ주제 선정 및 배경
ㆍ연구 목적 및 의의

Ⅱ 본론
ㆍ시대적 상황
ㆍ복식 변화의 요인
ㆍ남자 복식의 변천
ㆍ여자 복식의 변천
★ 모던걸

Ⅲ 결론
ㆍ 정리 및 요약
ㆍ 우리조의 생각

※ 참고문헌

본문내용

자체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여성의 남장은 남성과 동등해지고자 하는 의식의 반영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이를 통해 여성이 공적영역에 진출하게 됨으로써 전통적인 여성상을 새롭게 재구성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성애 화된 대상이 되어가는 과정
근대 사상은 개인을 중요시 하는 것으로서 개인의 욕망이 논의의 초점이 되었다. 신여성은 연애와 결혼, 성욕의 문제에서 전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신여성은 전통적인 정조 관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러한 신여성 담론은 여성에 대한 성적 감각의 변화를 동반하게 되었는데, 여성 일반에게 요구된 정조관이 신여성에게는 강하게 요구되지 않았고, 남성은 신여성을 일반 여성과 구분하여 성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통속적 차원에서 서구 문화의 소비와 모방을 배경으로 서구적인 것은 그 자체가 새로운 서적 상상력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되었으며, 따라서 남성은 서구적인 스타일의 신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즉, 여성은 개혁과 해방의 상징으로 의복을 개량하고 서구화된 외모를 지향하였지만, 남성들은 그러한 패션을 욕망을 일으키는 매개물로 여겼던 것이다.
Ⅲ 결론
◇ 정리 및 생각 ◇
근대적 다양한 정치·문화유산과 유기적으로 맺는 복잡하고도 변화무쌍한 관계 속에서 개화기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의 의복 변천을 알아보았다.
정리를 하자면 개화기를 전후로 우리 민족은 삶의 영역에서 큰 변화를 겪었으며 의복역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이를 19세기 전후로 나누어 볼 때 과거 의복이 지닌 신분적 상징성 등이 개화기를 거쳐 그 의미가 퇴색되었고, 새로운 의복의 등장은 서구문물과의 접촉을 통해 근대로의 지향의 상징적 표상이 되어갔다.
남녀의 근대화 복장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한다. 남자의 경우에는 또 두 가지의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한복을 일절 배제하고 양복으로 바뀌는 것과 상투는 자르되 의복은 한복을 입고 때로는 한복에 구두를 신기도 하였다. 상투를 자르는 것은 근대적인 것과 가까운 것으로 전통적인 윤리를 깨 버린 근대화 과정이다. 여성의 의복 발달은 여성의 사회적 진보, 인권 신장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얼굴만 내놓는 한복에서 근대 기성복으로 의복을 교체하기 까지는 여성들뿐만이 아닌 사회의 모든 계층의 사상적 전환이 필요한데 얼굴만 내놓는 장옷을 입던 여성들을 인식 전환의 중간 과정에서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모자와 양산이 유행하였다. 얼굴을 간접적으로 가렸던 양산과 모자의 시대가 간 이후에는 단발, 컷, 파마가 대유행하면서 근대화 복장으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의복의 변천과정에서는 여성 해방 의지, 민족주의 담론 투쟁의 장, 공적 영역으로서의 진출, 성애 화된 대상으로서의 여성 등 여러 담론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가 우리 민족에게 암흑기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에서 근대화가 이룩되는 중요한 과정이 이루어졌고 당시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 모두가 암울한 사회, 문화적 경험만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 모던걸
조선시대는 신체의 일부분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로 여겼던 여성들이 개화기를 겪음으로써 신체 일부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여성들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이는 ‘근대성에 대한 지향’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의복에 있어서의 변화를 유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의복의 변화 자체가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화기의 모든 여성들이 ‘신여성’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이러한 ‘신여성’은 확산되어갔고 일반 부녀자들 사이에서도 한복의 개량 등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근대적인 양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복식에 있어서 근대화된 의복이 갖는 간편함과 실리적 측면이 기존의 의복이 옭아매고 있던 여성에 대한 억압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림과 동시에 근대성에 대한 지향이라는 사상적 기반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옷차림과 의식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전제했을 때 당대의 의식이 의복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의복이 당시 사회 풍토나 의식에 미친 영향 역시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서구의복의 유입이 극단적 수용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저항과 수용 속에서 융합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무분별하게 서구의복을 탐닉한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서구지향에 앞서서 민족과 나라를 위한 계몽적 활동의 일환으로 이를 받아들였으며 그러한 근거로는 보다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위해 장옷을 폐지하거나 국권 피탈의 과정에서는 민족정신을 높이기 위해 오히려 한복을 입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조사를 하던 중 소위 된장녀라 불리는 현대의 소비중심의 여성과 모던걸이라 불리는 신여성이라 불리는 차이에 대해 비슷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실제로 몇몇 아무런 의식 없이 서구를 모방하는 분별없는 모던 걸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된장녀가 지각없는 소비와 서구지향적인 모습으로 비판을 받았던 것과 같이 당시 모던보이 모던 걸은 직업도 없고 특별히 하는 일도 없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던 새로운 유한계급으로 유행과 소비문화를 주도하던 계층이었으며 이들은 언론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꼭 모던 걸=된장녀라는 공식이 성립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지적했듯 모던 걸은 주로 서구적인 의상을 입는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과학적 사고를 지니고 계몽을 선도했던 지각 있는 신여성들도 ‘모던 걸’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참 고 문 헌
우리 옷 이천년/문화관광부/미술문화/2002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미술문화/1998
한국복식문화사/개정판/유희경/1999
우리생활100년 옷/고부자/현암사/2001
근대적 표상으로서의 여성패션연구/김은정/숙명여자대학교아시아여성연구소/2004
신여성 문화 - 문화콘텐츠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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