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사지리 답사자료집] 전통과 현대의 조화 - 북촌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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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화역사지리 답사자료집] 전통과 현대의 조화 - 북촌 한옥마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문화역사지리 답사자료집

전통과 현대의 조화 - 북촌 한옥마을


1. 서론
 1) 북촌이란?
  (1) 북촌의 유래
  (2) 북촌이 갖는 의미

2. 본론
 1) 북촌의 한옥 마을
 2) 북촌의 고급 주택단지와 Gentrification
 3) 북촌의 고급 소비공간 : 삼청동

3. 결론


 ◇ 북촌문화센터
 ◇ 석정골 보름우물 터 (계동 25-1)
 ◇ 중앙고등학교 (본관사적 제218호/서관사적 제282호/동관사적 제283호/계동68번지)
 ◇ 정독 도서관 / 김옥균 집터 (화동 1번지)
 ◇ 종친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9호 / 화동2번지/ 정독도서관)

본문내용

확립을 통한 전통 문화지역 활성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월드컵지원연구단
- 한국일보 2005. 6. 10 ‘새 도서관 건립 시끌’
- 문화 일보 2006. 6. 7 ‘서울 북촌 한옥마을 옛모습 그대로’
- 동아일보, 2006.12.16 ‘삼청동 거리엔 파리 뒷골목 정취가 흐른다’
- 서울시청 홈페이지 http://www.seoul.go.kr
◇ 북촌문화센터
안채와 행랑채, 별채로 구성되어 있다. 북촌문화와 한옥을 소개하는 홍보관과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주민 문화센터, 그리고 시민과 외국인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랑방과 정자가 들어서 있다. 북촌을 구경하기 전에 미리 안내를 해주는 듯 북촌에 대한 시청각 자료와 다양한 사진들을 구경할 수 있다. 직접 발로 다녀보기 전에 북촌의 명소와 역사, 배경 등에 대해 알 수 있고 북촌의 한옥 생활과 전통 문화를 직접 배워볼 수 있다. 전통 공예 및 민화, 칠기, 시조, 전통 혼례 등 다양하고 알찬 강좌를 실시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다.
◇ 석정골 보름우물 터 (계동 25-1)
우물이 돌로 되어 있어서 동네 이름이 석정골로 불렸으며, 이 우물물이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져서 ‘보름우물’이라 불렀다한다. 물이 유난히 차고 맛이 좋아 궁에서 사용해 왔다. 이 우물은 천주교 박해 당시 엄청나게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자 갑자기 물맛이 써져서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했던 중국인 ‘주문모’가 이 동네 천주교 신도 집에 숨어 살며 선교를 할 당시 이 우물에서 길어내 물로 영세를 주고 마시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 중앙고등학교 (본관사적 제218호/서관사적 제282호/동관사적 제283호/계동68번지)
중앙고등학교는 1919년 2월 11일 최남선의 편지를 받고 서울로 올라온 이승훈 장로가 현상윤의 소개로 중앙고보 교장인 송진우와 역사적인 만남을 한 곳이다. 3.1운동의 준비는 1919년 1월 중순 일본 동경 유학생 송계백이 중앙학교 숙직실로 교사 현상윤과 교장 송진우를 방문하면서 시작되어 그곳에서 유학생들의 준비상황을 얘기하고 2.8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함으로써 3.1운동에 불을 댕긴 중용한 장소이다. 이때 현상윤과 송진우, 송계백으로부터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최린, 최남선 등은 최린의 집과 중앙고보 숙직실 등은 만남을 거듭하며 만세운동의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정문을 지나 앞마당으로 들어서면 서편에 6.10만세 운동 기념비와 짝을 이루고 있는 ‘삼일운동 책원지 (三一運動 策源地)’라는 기념비가 있으며 기념비 동북쪽 담장 가에는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된 숙직실 건물이 3.1 정신을 기념해 서있다.
◇ 정독 도서관 / 김옥균 집터 (화동 1번지)
이 곳은 갑신정변의 주요인물인 김옥균이 살았던 곳이다. 또한 종친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며 입구 좌측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지성이자 사육신의 한 사람 성삼문 표석이 있고, 도서관 뒤편 언덕배기에는 맹사성이 살았기 때문에 ‘맹현(孟峴)’으로 불렸다. 가회동, 화동, 청운동은 거의 이어진 마을이고 가회동에서 삼청동으로 넘어가는 막바지에 취운정이란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 정독도서관을 중심으로 화동 1번지 일대에는 광해군에 의해 설치되어 총포를 만들던 화기도감 터가 있다.
◇ 종친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9호 / 화동2번지/ 정독도서관)
종친부(宗親府)란 왕가 일족과 친척의 벼슬에 관한 일 등을 논의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임금들의 족보인 어보(御譜)와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보관하던 관청이다. 종친부는 원래 삼청동에 있던 것을 1981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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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8페이지
  • 등록일2013.11.05
  • 저작시기201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9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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