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황룡사가 간직한 역사적 의의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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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 황룡사가 간직한 역사적 의의와 가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본론
 §불교의 수용
 §황룡사지의 역사적 배경과 특색
 §황룡사목탑지사리장엄구
 §목탑지와 9층 목탑
 §황룡사대종
 §황룡사지의 유물
 §황룡사의 성격
 §불국토 신앙
 §신라 사회와 불교와 황룡사
3. 나가는 말

본문내용

불 보살의 명호가 붙여지고, 그곳에 사찰을 건립하게 된 것 등도 모두 신라인 특유의 산악숭배가 불교적인 보습으로 탈바꿈하는 현상인 것이다. 고 신앙이 산을 숭배하고 돌을 중요시할 때, 불교도 또한 같은 입장에 섬으로써 불교는 서서히 신라의 정신적 지주로서 그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초기 불국토사상의 선봉이 된 것은 자장을 비롯한 구법 승들이었다. 그들은 특히 고유한 산악숭배를 불교적으로 윤색하는 사상적 의의를 지닌다. 그 다음 단계로는 원효와 의상을 비롯한 뛰어난 사상가들에 의해 도입된 불국토 관이다. 이것은 이 땅을 불국으로 믿음과 동시에 그렇지 못한 현실을 불국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사상성을 지니고 있다.
§신라 사회와 불교와 황룡사
진흥왕(540~76년)의 불교정책은 정치와 불교 양면을 관장하여 집권적 국가건설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남조, 특히 양무제의 정책을 본받은 바가 많다. 그는 재위 중 몇 번의 사신을 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진흥왕은 영토확장을 감행하여 새로 정복한 지역을 순수할 때 승려를 대동하였는데, 사문도인 법장 혜인이 진흥왕순수비문에 보인다. 수행한 신하들 가운데 이들 승려의 이름이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은 그들의 비중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수할 때에는 새로 정복한 곳의 지역 민으로부터 충성을 약속 받고 왕과 신하는 이들을 보살필 것을 맹세하는데, 여기에 승려가 참여하고 있는 것은 회맹의 정신이 불교에 입각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제 불교는 개인의 신앙 차원을 넘어 사회의 새로운 지도이념이 되어 가는 것이다. 진흥왕은 신라 최대의 호국사찰인 황룡사를 창건하여 전국의 불교계를 통제하였고, 국가적인 불교의식이 이곳에서 베풀어짐으로써 황룡사는 신라사회의 정신적 중추가 되었다.
3. 나가는 말
신라 최대의 국찰 이었던 황룡사지 인근에 유물전시관이 들어선다. 경주시가 279억원의 예산을 들여 연내에 착공해 2002년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백제 최대의 호국사찰이었던 익산의 미륵사와 함께 삼국시대의 사상과 예술, 삼국의 불교관과 호국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대 표적 사찰인 황룡사는 삼국통일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상징성이 규모 못지 않게 큰 곳이다.
황룡사지가 발굴된 지 30여 년을 바라보는 시점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할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지 못했음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제라도 이곳에 유물관을 세운다고 하니 환영할만한 일이고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황룡사 유물전시관 건립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는 것을 밝히면서 몇 가지를 관계당국에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전시관이 그 외형이나 시설에서부터 조경에 이르기까지도 흠잡을 데 없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것이다. 특히 기존의 대부분 전시관들처럼 동선이 너무 길어 지치고 지겹기 짝이 없는 관람이 되게 않게 해야한다. 몇 번을 찾아도 새로운 느낌이 들고 다시 찾고 싶은 곳 이 될 수 있도록 관람객의 처지를 먼저 배려하는 전시관으로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둘째, 불교유물을 단순히 값나가는 옛날 물건을 전시해 지방세수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삼겠다는 발상으로 임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불교유물은 신 행의 대상인 성보이다.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사상과 역사가 숨쉬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무형의 삶의 슬기와 의지를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현재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황룡사의 원형 찾기 노력이 전시관 건립을 계기로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동안 사지 등 유적발굴에서 예산이나 관계자들의 이해관계로 발굴조사가 점차 시들해지는 경우를 너무도 자주 보아왔다. 황룡사지는 조사발굴의 개념을 떠나서 우리가 보존해야할 우리의 보물이다.
황룡사는 불교의 의식과 불법의 행함을 위주로 하는 여타의 사찰들과는 달리 정치적 색채 또한 짙었으며 신라시대의 호국불교의 사상이 잘 반영된 사찰인 것이다. 또한「황룡사」라는 사찰은 통일의 염원을 담아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기술자들에 의해 완성된 삼국시대 신라 정신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황룡사의 중건이후 23년 뒤에 신라는 통일을 이룩해내기도 한다. 어떤 사서에는 이 황룡사에 담긴 염원과 불력으로 이룩했다고 하기도 한다. 끝으로, 무엇이든 세우고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사라져 버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들지 않는다. 그 흔적만 남은 황룡사 터를 보면서 나는 우리의 남아있는 문화유산을 소중히 간직해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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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12.06
  • 저작시기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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