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기타의 역사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클래식기타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바로크시대의 기타
 1) 바로크시대의 음악 (대략 1600~1750년)
 2) 바로크 기타음악
 3) 5코스 기타의 출현
 4) 반도어와 리라-비올음악
 5)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Germany, 1685.3.31~1750.7.28)

2. 고전파시대의 기타
 1) 고전파음악의 개요 (18C말 ~ 19C초)
 2) 고전시대 기타의 변화
 3) 고전파의 기타리스트

3. 낭만파 시대의 기타

본문내용

을 내놓았다. 협주곡은 모두 3곡인데 이 가장조가 가장 유명하다. 이 곡은(아란후에스 협주곡)과 함께 기타 협주곡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제1악장은 4분의 4박자 소나타 형식이다. 제1주제는 매우 맑고 상쾌하며,우아하다. 제2주제는 서정미에 가득 차있다. 기타는 고도의 기교와 스케일의 펼침화음으로 전개된다.그러므로 매우 빠르면서 화려하다.특히 마지막 카덴차의 멋들어지고 자유자재로운 테크닉은 기타의 진수를 보여준 제2악장은 4분의 3박자 마단조이다. 마치 실연 당한 하소연의 노래와 같이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낭만이 서려있다. 마지막 3악장은 4분의 3박자의 폴로네즈풍으로 자유로운 론도형식의 춤곡이다 활기 띤 즐거움과 리드미컬한 박력을 한껏 즐기는 곳이 바로 이 악장이다. 기타의 발랄한 멜로디도 일품이며 , 아르페지오 역시 마찬가지다.
3. 낭만파 시대의 기타
기타 종주국인 스페인의 소르, 아구아도의 사후 이렇다 할 훌륭한 연주자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유럽의 각국에서는 개성있는 연주자들이 두곽을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이태리 계열의 카룰리(1770-1841), 카르카시(1792-1853), 파가니니 (1782- 1840), 줄리아니(1782-1829), 쟈니데 페란티, 줄리오 레곤디, 불란서 계열의 나폴레옹 코스트(1782-1829), 헝거리 출신의 요한 카스파르 메르츠(1806-1856), 오스트리아 출신의 안톤 디아벨리 등으로 인해 대중의 인기와 기타의 대가적 연주기법,실내악(살롱뮤직)으로서 기타의 기능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이러한 비스페인계의 연주자들이 유럽의 무대를 빛내고 있었다. 이러한 고전파시대가 끝나고 스페인에서는 타레가를 비롯한 기타의 대가들이 등장했다.
이 시대의 음악은 고전파와의 구분이 명확하게 되어 있지 않으나 곡의 흐름, 작곡적 기법, 작곡가의 유파 등을 분석하여 보면 낭만파 기타음악을 구분할 수 있다.
①프란시스코 타레가(1852-1909)
그는 카스테용의 비야레알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마누엘 곤잘레스에게 피아노와 기타의 기초적 연주법을 배웠다. 그후 아르카스의 연주에 감명을 받아 그는 위대한 기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의 스승인 아르카스와의 관계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군복무 후 마드리드 음악원에서 피아노, 화성악 등을 공부하고 그 곳의 교수로 재직한다.
그의 초기 데뷔시절 음악회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는 다음과 같다. 연주회 레파토리 중 절반은 피아노 음악, 절반은 기타음악의 연주회였는데 연주회 도중 타레가가 관중에게 피아노와 기타음악 중 어느 것을 듣고 싶으냐고 물어 보았는데 대다수의 관중이 피아노보다는 그의 기타연주를 듣고 싶어 하여 연주회전체가 기타연주로 바뀌었다.
그 후 유럽 순회연주와 제자양성을 통해 그의 음악적 견해를 널리 알렸다. 그 중 타레가의 업적을 보면,
첫째, 기타 발받침(Food Stool) 사용은 연주를 용이하게 하고 왼손의 움직임을 더욱 자유롭게 하였다.
두 번째, 스승인 아르카스의 예와 같이 토레스와 공동으로 기타제작을 하여 기타음량의 증가와 음색을 개발하고 현대기타의 표준인 650mm를 줄길이(현장)를 표준화하였다. 토레스의 기타제작은 두 번의 시기를 갖는데 1850-69년 초창기 시절, 경제적 이유로 아르카스와의 동업을 포기하였다.
두 번째 제작시기는 1889-92년 타레가와의 교류로 인한 기타 발전이 있었다.
세 번째, 기타 편곡 및 작곡. 기존의 베토벤, 쇼팡, 슈만, 바그너 등의 작품과 스페인의 알베니스, 그라나도스의 작품의 기타곡 편곡과 타레가 자신의 주옥같은 명곡들로 기타 레파토리의 확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네 번째, 기타 주법의 다각적 분석으로 운법 연구 특히 왼손 주법은 개방현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바이올린이나 첼로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방식처럼 기타특유의 음색을 분석, 발견하였다.
또한 오른손의 연주시 손가락이 줄에 약간 비스듬한 각도로 연주하는 방법은 더욱 좋은 음질을 얻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아포얀도 주법으로 줄을 탄현할 때 마치 투명한 소리가 하프연주자의 소리처럼 들리는 주법등은 그의 스승 아르카스의 빠른 스케일 연주시 쓰는 피카도 주법의 개발 결과이다.
또한 타레가는 손톱을 전혀 쓰지 않는 연주법을 고수하였으나 이는 현대에 있어서는 쓰여지지 않는 주법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를 바이올린의 사라사테, 피아노의 루빈스타인과 견주어 그의 위치를 평가하고 있다.
다섯 번째, 음악원 시절 이곳에서 푸홀, 요베트, 포르테아, 오브레곤 등의 제자를 양성, 타레가 악파를 형성하여 근대 기타 음악 발전에 기여하였다.
②미구엘 요베트(1878-1938)
조각가였던 그의 부친의 영향으로 유년시절을 예술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였다. 1889년 만혼의 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아 기타음악에 전념하기로 결심, 바르셀로나의 알레그레 음악원을 수학하고 그후 타레가의 제자가 되었다. 또한 카잘스, 푸홀, 비네스, 카사도르와 같이 유명한 음악인들과 친분 및 교류를 한다. 1900년도에 말라가 콘서트를 시작으로 스페인을 비롯, 파리, 런던 유럽 각 도시의 순회연주로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린다.
1910-12년에는 아르헨티나, 북미, 카리브해 중남미를 순회연주 하였다. 또한 아르헨티나에 약 3년간 거주하면서 마리아 루이자 아니도와 같은 제자를 양성하기도 한다. 그는 남미에 스페인 기타의 맥을 연결하였다.
그는 최초로 1926년 기타음반을 제작하였다. 이 당시 LP는 지금도 남아있다. (필자 소장) 그의 연주는 요즈음의 CD로 듣는 매끄러운 소리는 아니지만 타레가 악파의 계승자로 타레가의 음색을 듣는 듯 하다. 또한 루이자 아니도와의 이중주도 녹음되어 있다. (1926년 Parlophon Eletra, 스페인에서 녹음제작, 1982 El Maestro 미국 복사판제작) 그의 아름다운 편곡과 작곡 특히 고향인 카타로니아 지방(발렌시아)의 민요집이 유명하고 약간의 연습곡과 연주곡을 남겼다. 1920년에는 마누엘 데 파야에게 의뢰, 파야의 유일한 기타작품, 드뷔시 찬가를 작곡하게 한다. 그러나 1938년 스페인 내란시 폭격으로 인하여 그의 나이 59세에 애석하게 사망하였다.
  • 가격무료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3.12.18
  • 저작시기2013.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9828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