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중세 로마네스크와 고딕 예술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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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 로마네스크와 고딕 예술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있다.「하인리히 사자공의 성경」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과 여기에 나타난 도상학적 불평등에 관해서는 Fuhrmann, Einleitung ins Mittelalter, pp. 236에 수록.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하인리히는 실제로는 단구임에도 불구하고, 옆에 서 있는 부인의 키와 비슷하게 묘사되었다. 따라서 비록 작품들 속에 여성에 대한 ‘관대함(generositas)'이 보여지기 시작했으나, 이는 남성 주도하의 예술적 변화였다. 마치 도시 여성들에게 제한적이나마 재산 상속권이 주어졌던 것은 재산이 도시를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던 남성들의 시혜적 책략이었듯이 김병용, 〈중세 도시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고찰〉, p. 62.
, 관대한 여상상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적 중세 예술은 지속되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은 예술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곧 바로 남녀의 ‘성적 평등’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없다. 여성은 하인리히 사자공의 성경 그림에서와 같이 의도적으로 작게 묘사되었고, ‘남성적 관점(androzentrisch)’에서 도출된 도상적(圖上的) 불평등은 중세 사회의 성(性) 역할 관행을 보여주고 있다. 나움부르크 성당에 있는 남녀 조상(彫像)에는 로마네스크 시대의 이브적 여성상이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 것 같다. 남편 에케하르트와 대등하게 서 있는 우타(Uta)는 한 익명의 조각가에 의해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당시의 도덕적 관념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오른 손으로 망토를 자신의 몸쪽으로 당기고 수줍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결혼한 부인임을 알리는 베일을 턱까지 가리고 있다 Trewin Copplestone (ed.), Art in Society. A guide to the Visual Arts, Englewood Cliffs, N. J., 1983, pp. 118-119.
. 죽음이 여성으로 의인화되고 있다는 사실 이에 대한 그림은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p. 498에 수록. 죽음에 대한 도상학적 분석은 필리프 아리에스, 죽음 앞에 선 인간(상, 하), 동문선, 1997.
역시 여성에 대한 부정적 사고가 종식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중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온통 잿빛이었던 암울한 시대에도 잿빛을 걷어내는 움직임들이 있듯이, 12세기 예술에는 새로운 시도들이 진행되었다. 하우저의 해석에 따르면 아르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현대편, 백낙청, 염무웅 옮김, 창작과 비평사, 1974, p. 171.
, 고딕 예술의 등장은 19세기의 낭만주의, 인상파 예술과 더불어 서양 예술사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여성들의 ‘자기표현’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그림 15>은 구다(Guda)라는 12세기 독일의 수녀가 제작한 필사본의 일부이다. 여기서 그녀는 ‘대담하게도’ 그녀의 이름 약자(G)를 명시하고 약자의 둘레에 “죄 많은 여인 구다가 이 책을 쓰고 그렸다(Guda peccatrix mulier scripsit et pinxit hunc librum)"고 적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이 사라진 뒤, 대부분의 중세 예술품의 작가들이 익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구다 수녀의 서명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다. 구다의 서명은 여성 예술가의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 Frugoni, The Imagined Woman, in G. Duby/ M. Perrot (ed.), A History of Women in the West. 2: Silences of the Middle Ages, 1994, pp. 336-422, 특히 p. 414-415 참조.
그 만큼 12세기 여성 예술가들의 자의식에 대한 각성이 컸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란츠베르크의 헤라트 수녀원장의 「기쁨의 정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자입트,『중세의 빛과 그림자』, p. 184, 298 참조.
개혁적 종교 운동으로 성녀의 사도적 삶을 다룬 예술 작품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예술 이미지의 변화도 이루어졌다. 여성에 대한 이브적인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한 인간적인 따스함이 깃들은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원죄의 근원인 ‘이브의 딸들’이라는 부정적 여성관을 담은 작품들은 여성의 마리아적 이미지 혹은 성녀적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랭스 대성당의 부활의 장면을 다룬 작품에서 여성 ‘역시’ 부활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 부활의 장면은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p. 305에 수록
은 여성의 이미지가 원죄의 근원인 이브적 이미지라는 멍에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교회 자체가 여성으로 의인화된 스트라스부르크 대성당의 작품이나 <그림 16>, 1230년경의 습작화 <그림 17> 역시 같은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맺음말
본고에서 필자는 중세의 예술 작품들을 문헌 중심적 역사 연구 방법론에 대한 보완적인 것으로 보고자 했다. 중세사 연구에 있어서 간과되었던 많은 예술품들에 관심의 빛을 던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역사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문헌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분야의 경우, 다양한 사료 발굴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예술 작품을 통해서 중세 여성 문제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해보았다.
중세인들은 교훈적 예술관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시대의 수도원장과 주교들도 예술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신 세계를 반영하고자 했다. 이들은 독특한 의미 구성과 상징화를 통하여 중세 교회의 세계관을 작품에 표출시켰다. 이들이 의도했던 바는 작품 수용자(감상자)들에게 특정 교리를 전달 내지는 주입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여성관은 12세기부터 사회적 변화에 상응해서 서서히 변모하기 시작했다. 작품 속에서 여성에 대한 관대함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교회 예술도 현실의 변화를 따라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남성 주도의 예술적 변화였음을 다시 한번 더 상기해야 할 것이다. 여성들의 ‘자기표현’을 위한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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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13.12.26
  • 저작시기201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99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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