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독서보고서: 내용 요약 및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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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독서보고서: 내용 요약 및 감상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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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첫 에큐메니탈 공의회 연구는 교황의 공의회 소집뿐 만 아니라, 신교와 구교 측에서 계획된 고대 교회 공의회와 교부를 토대로 한 교회개혁 노력이 자극이 되었다. 루터는 고대 교회의 공의회와 교부들을 종교개혁의 척도로 삼지 않았다. 개신교의 개형이 아직은 연약하기에 성서가 더욱 필요하다고 여기거나 또 다른 권위에서 구제책을 찾아서는 않 된다. 칼 5세는 1539년 이루 제국의 종교분열을 해결하기 위해 1540년 종교회담을 개최할 계획을 세웠다. 1540/41년 개최한 보름스와 레게스부르크의 종교회담에 멜란히톤은 참여했으나, 루터는 비텐베르크에서 거의 관여하지 않았으며, 이 회의에 큰 기대를 두지 않았다. 진리에 대한 명백한 합의와 종교정치적인 화해가 거의 불가능했기에, 루터의 의견에 의 하면, CA와 CA 변증서에 입각해 복음적 교리를 설명하고 제국의 정치적 평화를 위해 일치를 모색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았다. 루터는 1545년 마지막 방대한 논쟁서를 집필하여 ‘마귀에 의해 시작된’ 실재인 로마 교황청과 싸움을 벌였다. 루터는 유대인을 무시하고 폭행하는 행위가 중지되기를 소망했다. 또한 그들이 더 이상 교역과 제조업에서 배제되지 않기를 소망했다. 그렇지만 루터는 랍비-탈무드적인 유대교는 유대의, 더 정확히 말하면, 바리새적인 종교성과는 구분 해야 했다. 상황이 상세히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1535년 작센 선제후는 유대인들을 자신의 통치령에서 추방했고, 더군다나 그 지역을 지나가는 여행도 거부했다. 루터는 천성적으로 신중하고 비범한 능력을 지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지낼 때 변비와 협승증을 앓았으며 정신병까지 생겨나게 됐다. 물론 영적 시련은 협심증(가슴 압박증)이 주는 불안과 연관되었다. 1527년 페스트가 다시 번졌지만 루터는 피하지 않고 강의를 계속 진행했다. 1536년부터는 신장결석, 요독증까지 이질 중이염 까지 생겼다. 거기 반복적인 두통과 결석증이 생겨나 의사에 권유로 허벅지에 구멍을 꿇어 두통을 완해 하려했다. 루터는 2월 16일 교회 문제에 대한 합의서에 재차 서명했다. 다음날 있은 또 다른 합의에 대한 서명은 건강의 약화로 참여할 수 없었다. 요나스와 만스펠트 지역 설교자인 미하엘 코엘리우스가 이날 숙소에서 루터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밤 이들은 루터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4. 감 상 문
저자인 라인하르트 슈바르츠(Reinhard Schwarz)는 베를린 신학대학과 튀빙엔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59년 「초기 루터 신학」(Die Theologie des jungen Luther)이라는 논문으로 튀빙엔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66년 튀빙엔 대학교에서「종교개혁 참회신학의 전(前)역사」(Vorgeschichte der reformatorischen BuBtheologie)라는 교수자격 논문(Habilitation)을 썼다. 1971년 가을 이후 뮌헨 대학교의 개신교 학부 교회사 교수가 되었으며, 1996년 정년퇴임했다. 1963년부터 시작된 루터의 일차시편강의 비평판(WA55 I,II) 제작에 적극 참여한 그는 시편 16-30편까지 단독으로 작업하여 1973년 완성했고, 상세한 비평과 원문 인용의 출처까지도 세세하게 밝혀주어 초기 루터 신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는 업적을 세웠다.「마틴 루터」는 한 인물을 연대기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깊은 사유와 아픔으로 살아내었는가를 깊이 있게 조명하고 있다. 원래는 ‘역사 속의 교회’(Kirche in ihrer Geschichte) 시리즈로 1986년에 출판되었던 것을 1997년에 개정하여 새롭게 내놓은 것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인 전기적 자료들에 충실하면서도 루터의 사상적인 발전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두고 있으며, 그의 신학적인 저작들에 대한 연대기적인 논의를 거쳐 루터의 생애를 정직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일의 각 대학에서 교과서로 호평을 받아 왔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단지 중세 가톨릭의 무지한 지배에 저항한 개혁운동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그것은 반가톨릭 운동이 아니라 본래의 기독교적 정신과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기독교 본질의 회복운동에 있다. 교회가 신앙을 지배하는 것에 대하여 마틴 루터는 성서가 신앙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나님과 인간의 신앙적 교량 역할을 사제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 자체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한 루터의 선언 또한 기독교 본질의 복구에 그 핵심적 사안이 있다. 결국 기독교의 개혁정신은 예수께서 이 땅에 뿌린 씨앗을 바로 거두고, 그에 따라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으로 거듭나고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의 원칙에 의해 재편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종교개혁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교회가 아무리 개혁적 출발을 했다 해도 시간이 흐르고 기득권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교회적 특권이 형성되면 개혁은 후퇴하기 할 수밖에 없으며,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먼저 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루터는 유럽의 정신사에 우뚝 선 인물로 단지 종교와 신앙의 문제에만 국한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교황의 파문과 저주 앞에서도 두려움을 몰랐던 용기를 지녔으며, 성서 번역을 통해 괴테와 니체에 버금가는 독일 문학과 언어의 선생이 되었다. 중세 스콜라주의의 사슬을 풀고 양심의 갱신을 통해 연구와 비평의 자유를 선언한 교사이며, 더 나아가 부름을 받은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만인 사제직’의 가르침은 전제 정치에 맞서 진리를 추구하려는 엄격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유럽의 민주주의를 낳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여러 모로 혼란과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때에 한국교회가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전망이 밝을 것이며, 그러한 전망의 시작은 개혁정신에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이 역사적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오늘의 현실을 새롭게 타개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 기독교 본질의 복구를 강조한 루터의 개혁정신에 따라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도 이젠 바로 잡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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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3.12.30
  • 저작시기2011.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0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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