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實學) 사상(思想)의 개괄(槪括) (주자학, 조선말의 사회적 배경, 실학 사상의 발생, 실학사상의 학문적 배경, 실학사상의 전개와 실학파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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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학(實學) 사상(思想)의 개괄(槪括) (주자학, 조선말의 사회적 배경, 실학 사상의 발생, 실학사상의 학문적 배경, 실학사상의 전개와 실학파의 계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작하는 말
(1) 조선말의 사회적 배경
(2) 실학 사상의 발생
(3) 실학사상의 학문적 배경
(4) 실학사상의 전개와 실학파의 계보
맺는말

본문내용

받아 성리학과 무분별하게 혼동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천관우 선생은 실학을 분과별 구조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즉 17C 이후의 유학자중 현실 치중 내지 현실 비판정신이 드높은 학자들이 당시의 유학(성리학)을 고증학, 사장학(문학), 의리철학(철학), 경세학(정치.경제 등의 사회과학)등의 측면에서보다 더 ‘자유성. 과학성. 현실성’의 성격을 지닌 새로운 유학으로 [개신(Reform)]한 것이 실학이라 한다. 따라서 이러한 포괄적 학문체계로 형성된 실학은 특히 그 현실치중 내지 현실비판적 정신이 강한 것으로 해서, 마침내 ‘근대지향’ , ‘민족지향’의 성격까지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천선생은 조선조 성리학과 실학사이에는 내용상의 질적차이가 있다고 확언한다. 그에 의하면 같은 현실 개혁설이라 하더라도, 성리학적 개혁설과 실학적인 개혁설에는 서로 구별되는 상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리학에 입각한 정도전과 이이의 개혁설은 당시 양반 중심의 전근대적 봉건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구상된 논의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형원의 실학적인 개혁설은 당시 체제유지의 범위를 넘어 그 해체까지도 주저치 않으면서 구상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실학이 결코 성리학의 연장이 아님을 알게 되고, 오히려 반성리학적 성향까지 지니면서 형성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앞서 잠시 언급한 바 있으나, 철학계에 앞서 연구가 행해진 사학계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이 일반적인 학문관을 살펴보면, 실학자들은 당시의 성리학 또는 성리학 풍토에 불만이었다. 그 불만은 대체로 세 가지 관점에서 가지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실학자들은 그 불만의 측면들을 개선코자 하였다.
1) 실학자들은 다같이 그들의 학문을 성리학에 국한시키지 않고 다양한 범위로 넒힘으로써, 이른바 ‘博學에 의한 유용성 위주의 학문관’을 지향한다.
2) “아래로부터 배워 위로”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에로” 라는 구호들에 나타나는 <원초유학 본유의 實際性 추구 정신의 회복>을 역설한다.
3) 학문을 어디까지나 실증적인 방법으로 하려는 경향도 다수 보인다. 이런 경향들이 당시 침체 경화되었던 성리학 풍토에 불만, 그 극복의 방안으로 강구된 실학자들의 방법론적 전환이었다. 이런 점에서 실학발흥 초기(17c)의 박세당(1629~1703)이 사문난적의 낙인을 받을 정도로 <사변록>을 통해, 특히 정주계 성리학의 사고에 반기를 든 경우가(실학의 철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주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실학을 집대성한 18, 19c 정약용(1762~1836)의 경학적 사고가 집중적으로 살펴져야 하고, 이어서 그밖의 실학자들의 개별적인 철학이 살펴진 끝에, 이들 전체의 공통적인 철학이 추출, 종합되어야 할 것이다. 윤사순,한국유학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문제:그 회고와 전망(철학연구,?)pp.12~13참조.
이러한 방법론을 개재하는 것은 이러한 방법이 가장 타당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필자의 의도는 이러한 방법론을 거론함으로서 흥미있게 또 다른 논의의 빌미가 되길 바래서 이다. 도리어 무엇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실학을 잠시 접해보는 客으로서 할 일이 아닌 듯 하다. 그래서 도리어 이런저런 시각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좀 다른 시각으로 실학을 보려는 입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구분을 살펴보고 이 보고서를 맺도록 하겠다.
(만일) 성리학의 터전에서 출발할 망정 성리학에만 불만이더라도 실학은 비성리학의 것으로 될 터인데, 여러 다른 사상들의 영향마저 받았다면, 그 실학의 내용과 성격이 성리학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성리학자들이 명분, 명칭, 형식을 실리, 실효, 실질보다 더 중요시하는 데 반하여, 실학자들은 그 반대로 생각한다. 실학자들은 일종의 유명론적 각성에 의하여 성리학의 명분 위주의 실념론적 사고를 타파하려 한다.
2) 성리학자들은 오관의 외감보다도 마음에 본래적으로 갖춘 理氣의 속성에 치중하여 인간의 인식을 이해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실학자들의 인식론은 오관의 외감에 더 치중하여 이해함으로써, 일종의 경험론적 특성의 이론으로 흐른다.
3) 실학자들은 성리학자들의 천인상감적 物我一體觀을 부정, 物我二分 의식 속에서 일종의 物理的 自然觀을 형성한다. 이들 의식에서는 인간이 자연과 대립하면서 그것을 도구화하려는 의식까지 찾아진다.
4) 실학자들은 설리학자들보다 인간의 자율능력에 대한 신념이 강하여 인간 의지의 자유를 더 믿게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대체로 성리학자들과 달리 정감의 순수성을 믿는 경향이 두드러져, 意志的 欲求體的 人間觀을 그린 셈이다.
5) 성리학자들이 도덕을 본구적 인성의 필연적 발로로 보아 절대시하였지만 실학자들은 그렇지 않다. 정약용의 예에서 보듯, 인성을 하나의 소질(기호)로 본 까닭에 도덕 역시 인간의 필요(행위)에 의해 제정하는 가변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6) 조선시대의 삼강오륜은 도덕의 요목을 넘는 일종의 체제수호의 강령이기도 하였다. 실학자들의 도덕에 대한 가변시는 곧 체제의 가변성 간취로 통한다. 실제로 실학자들은 맹자의 독재타도(방벌)사상을 고취하면서, 田制 奴婢制등의 개혁을 성리학자들보다 훨씬 民本. 爲民의 시각으로 역설하였다. 이들의 이런 개혁설에서는 새로운 民權意識. 人權意識의 신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실학의 철학적 성격은 요컨대 철저하지는 않지만 경험론적 사고에 기초한 근대철학의 특징을 지닌 것이다. ibid.,윤사순,pp.16~17참조.
이러한 흥미로운 제안도 있다.
*참고문헌*
1. 금장태, 유학과 한국사상, 성대출판부, 1984.
2. 금장태, 한국 실학사상의 연구, 집문당, 1993.
3. 조명기외, 한국사상의 심층 연구, 우석, 1986.
4. 한국철학회, 한국철학사 下권, 1987.
5. 남상락, 한국실학사상의 철학적 고찰, 한국철학논문집.
6. 김용수, 조선후기실학의 근대자본주의 윤리사상에 관한 연구(건국대 석 사논문, 1985).
7. 윤사순, 한국유학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문제: 그 회고와 전망(철학연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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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1.26
  • 저작시기2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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