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군주론: 이상적 군주상에 대한 고찰(군주론)(마키아벨리의군주론)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마키아벨리군주론: 이상적 군주상에 대한 고찰(군주론)(마키아벨리의군주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

2. 내용요약

3. 군주론을 통한 변혁과 공화정에의 열망

4. 사회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이상적 군주상에 대한 논란

5. 군주론의 현실주의 정치사상

6. <군주론>에 대한 비판과 논란 고찰

7. 맺음말

본문내용

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열망은ㅡ‘군주론’을 끝맺는 메디치가에 대한 ‘권고’에서 명백히 서술하듯이ㅡ만약 그들이 그의 조언을 따른다면, 영광스러운 그들의 가문에는 명예를, 이탈리아인들 모두에게는 이득을 가져오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항상 최고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군주상과는 대조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그 상황에 맞게 대처해 나가는 군주의 모습-좋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악행을 저지를 준비도 되어 있는-을 그리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런 현실주의적인 면에서 후대 저술가들에게 도전을 제기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현실’ 속에서 ‘이상적인’ 군주가 되기 위해서라면 그의 지침들과 정치 철학이 상당히 호소력을 갖을지도 모르겠다.
6. <군주론>에 대한 비판과 논란 고찰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사악하다는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은 종교 개혁과 종교 전쟁이라는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는 종교적 도덕적 대의와 명분을 앞세우며 상대방의 부도덕성을 비난하던 시기여서 마키아벨리즘은 정치 선전을 위한 좋은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군주측은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듯 한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내심 환영했으나 그들과 다른 이익관계를 가진 교황과 귀족층은 마키아벨리의 부도덕성을 내세워 군주를 비난하였던 것이다. 마키아베리즘을 사악한 것으로 비난하는 최초의 글을 남긴 인물은 영국의 추기경 폴(Reginald Pole)이었다. 그는 마키아벨리를 인류의 적으로 비난하고 그의 <군주론>은 진정한 신앙심을 말살하고 사회생활을 파괴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으로써 사악한 마키아벨리상이 최초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이것의 영향을 받아 포르투칼의 주교 오소리오, 도미니쿠스 교단의 수도사인 폴리티 등의 저술이 나타난다.
신교측에서도 가톨릭 이상의 강도로 마키아벨리즘을 비난하였는데 특히, 프랑스에서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위그노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자 반이탈리아 감정과 함께 그러한 탄압의 방식이 마키아벨리즘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이것을 비난하는 저술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1576년 장티에가 있는데 여기서 그는 프랑스가 최근 겪어온 폭정의 원천과 주모자로서 마키아벨리를 지목하고 있다. 사악한 마키아벨리의 이미지는 점점 확대되어 갔으나 군주와 정치가들은 그것에 대한 일반적인 도덕적 비난 속에서도 여전히 그 유용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 결과 마키아벨리즘은 다른 모습으로 변용되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16세기 말에서 약 1세기간 정치 저술들은 '국가이성'과 '국가기밀'의 개념을 통해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피함과 동시에 그것이 지닌 정치적 이점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이 두 가지 개념도 이미 고전 고대 이래 있어왔던 것들이지만, 이 시기에 등장한 이것들은 마키아벨리즘과 마찬가지로 이전과 다른 개념을 내포한 것이었다.
'국가이성'이란 넓은 의미에서 국가를 보존하고 그 힘을 증대시키기 위해 정치가가 반드시 따라야 할 통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가가 무엇보다도 국가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할 때 그의 국가이성은 마키아벨리즘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도덕적 명분이 중시되던 종교전쟁시대에 나타난 국가 이성론은 국가이성을 진실하고 선한 국가이성 즉, 크리스트교적 국가이성과 사악하고 허위적인 국가이성 즉, 마키아벨리적 국가이성으로 양분함으로써 종교적 대의를 옹호하는 도덕적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국가이성의 현실적 유용성을 확보하려 한 점에서 마키아벨리즘과는 구별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세속정치의 논리적 근거로 작용한 국가이성을 마키아벨리의 부도덕성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국가이성에 대한 이론적인 정의가 무엇이던 간에 마키아벨리의 정치 격언들은 군주들 사이에서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문제는 사악한 그의 주장을 선한 군주의 정치속에 어떻게 용해시킬까 하는 것이었다. 국가기밀론 역시 군주가 어떻게 국가를 획득하여 그것을 보존하고 유지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가짐으로써 본질적으로는 국가이성, 마키아벨리즘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표현 방식에서 국가기밀론은 마키아벨리적 군주들에 대해서 잘 기술하고 있는 타키투스의 저술들에서 효율적인 통치 규범을 찾고자 하였다.
이상의 두 가지 논의는 절대군주정으로 대별되는 근대국가의 정치체제가 요구하는 마키아벨리즘과 종교와 도덕을 내세워 그런 경향을 비난하던 반마키아벨리즘 사이에서 야기되는 상호모순을 시대의 흐름속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로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논의들은 30년 전쟁을 고비로 서서히 쇠퇴하였는데 그것은 종교전쟁의 마감으로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논의의 첨예성이 무디어졌기 때문이지 마키아벨리즘의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상실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7. 맺음말
마키아벨리는 현실적인 정치관으로 강력한 군주에 의한 조속한 통일과 안정을 꿈꾸었던 정치가이다. 그에겐 상아탑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정치 일선에 뛰어들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고, 더 나아가 자신이 최상의 정치 제도라 믿은 통일되고 안정적인 공화정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과격한 현실주의 정치 덕목은 대부분 인민에 대한 신뢰를 최고 상위 덕목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공화정은 현재 우리가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그는 공화정이 인민이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라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자의 정치력으로 인민들을 속일 수도 있고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는 말로 그들을 폄하한 셈이다. 결국 인민에게 자유를 주는 권력자, 또는 권력 집단은 있어도,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는 인민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그가 지금부터 500년 전의 세상을, 그것도 극심한 혼란의 시기를 살았던 인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그는 500년 후를 예측할 수 없었다. 그가 주창한 '외양'의 정치 사상은 논자의 사후에야 빛을 발할 수 있었지만 그 빛이 너무나 크고 왜곡되어, 한편으로 무수한 후대 권력자들의 정치선동, 국민기만, 우민정책 등을 부추기고 정당화하는 대변자 역할을 하고 말았다.

추천자료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4.02.27
  • 저작시기2014.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0630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