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1인집권체제 수립과정과 절대권력 장악시기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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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일성 1인집권체제 수립과정과 절대권력 장악시기의 재조명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사 방향……………………………………………………………3

2. 김일성의 1인 독재체제 구축 과정………………………………4
 가. 소련의 위성통치하의 김일성의 등장
 나. 6.25전쟁을 통한 경쟁자 숙청과 권력강화
 다. 주체개념의 등장과 사회주의의 건설
 라. 8월 종파사건을 통한 절대권력장악
 마. 갑산파 숙청

3. 김일성의 1인 독재체제 수립시기의 재조명 ……………………12

본문내용

하기는 하였으나 김일성 권력에 도전하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김일성 1인집권체제 확립시기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3. 김일성의 1인 독재체제 수립시기의 재조명
상기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67년 갑산파 숙청으로 김일성 1인 절대권력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견해에 대하여 이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해방이후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 장군 환영 평양시 군중대회”를 통하여 북한 인민대중에 나타난 김일성은 당시 국내의 지지기반이 취약하여 소련의 꼭뚜각시 역할이라는 제한된 역할에 불과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나 항일투쟁 경력으로 인하여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았으며 소련을 지지기반으로 주요 계파와의 연합정권의 구도속에서도 경쟁자들보다는 한걸음 앞서 가는 실력자로 자리 잡았던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당시의 김일성의 위상을 입증할 수 있는 사실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추론이 가능한 데 1946년 1월 17일 맹원이 500만명에 달하는 북한 최대의 조직인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의 결성, 1946년 9월15일에는 김일성 종합대학 개교,
1947년 5월 7일 김일성대학연구원 개원하였으며, 조선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에서 초대수상으로 선출되어 1948년 9월 9일에는 초대 수상에 취임하기도 한다.
또한, 김일성과 함께 북한권력의 양대축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헌영이 1952년 “김일성 탄생 40주년에 즈음하여” 라는 기고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김일성과 박헌영의 역학관계는 김일성이 박헌영에 비해 훨씬 우월한 지위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1952년의 김일성 기념관 건립(만경대, 보천보)과 김일성 고급중학교 건립(혜산진), 1953년에는 김일성에게 「원수」칭호가 수여되었으며, 6.25전쟁 직후인 동년 7월 28일에는 『공화국 영웅칭호 및 국기훈장 1급』수여받는 등 북한권력의 명실상부한 1인자 자리에 오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1954년 평양시 남산 동쪽 기슭에 김일성 광장 건설되며, 50년대 후반의 예술작품과 문학작품에서 두만강, 영광의 땅 보천보 등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활동을 주제로 한 작품이 등장하여 권력장악은 물론 인민대중을 대상으로 자신의 우상화작업을 착수할 만큼 50년대 후반의 김일성은 북한의 절대권력을 장악하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김일성이 북한체제에서 명실상부한 권력을 장악하였다는 점은 전술한 바와 같이 1955년 12월 28일 김일성이 당 선전선동 일꾼들 앞에서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연설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연설문 내용에는 기존의 경쟁자였던 남로당계의 대표인물인 박헌영, 소련파의 대표격인 허가이와 함께 연안계 지도자인 박창익 등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을 함으로써 실권장악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북한체제 내에는 김일성의 권력에 도전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북한체제에서의 김일성의 1인집권체제 구축 과정을 정리하면 크게 4단계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단계는 해방후부터 6.25전쟁 발발까지의 시기는 김일성 중심의 계파별 연합정권을 형성한 시기로 권력의 분산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진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둘째단계는, 6.25전쟁기간중 경쟁자들을 숙청함으로써 북한체제의 권력중심이 김일성에게로 기울어진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셋째단계는 전후복구 작업과 사회주의화 추진, 55년 12월 주체노선을 대내외에 천명은 김일성이 북한체제에서 실질적인 절대권력을 장악한 시기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넷째단계는 김일성의 절대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한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김일성은 북한체제 내에서의 잠재적인 경쟁후보군을 숙청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절대권력을 완성한 시기로 분류할 수 있겠다.
8월 종파사건은 김일성이 주체노선을 천명한 이후 위기의식을 느낀 연안파와 소련파가 연합하여 소련의 간접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김일성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건이었으나, 김일성에 대적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생사를 건 마지막 저항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북한역사상 김일성의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한 유일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8월 종파사건 이후에도 갑산파 숙청이 있었으나, 갑산파 숙청은 김일성의 권력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기 보다는 김일성의 정권을 지지하던 기득권 계층간의 2인자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충성경쟁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며 김일성의 절대권력 확립은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종료된 것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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